[뉴스프리존]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토론을 둘러싼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간 극한대립이 17일 봉합수순으로 들어섰다. 당 최고위원회가 오는 18일로 예정된 후보간 정책토론회를 취소하고 25일 토론회도 정견발표회로 대체하기로 뜻을 모으면서다. 관심을 모은 선관위 출범은 오는 23일에서 26일로 늦췄다.
그동안 이 대표와 윤 후보간 경준위 토론 참가를 둘러싸고 극한대립 속에 대체로 김기현 원내대표가 제시한 절충안을 최고위가 수용한 모양새지만, 선관위원장 인선 문제를 뇌관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절반의 봉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로서는 자신이 밀었던 경준위 토론회가 반쪽이 나고, 당대표 권한인 선관위원장 인선도 반발에 부딪히자 회의 시작전 발언(모두)도 생략하는 등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일부 언론은 ‘이준석 리더십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과연 위기일까?
이를 보면 언론도 국민의힘도, 범야권 지지율 1위라는 윤 후보도 ‘이준석 대표’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지난 6월 11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0선에 30대 젊은 정치인인 이준석 후보가 당선됐다. 보수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을 기반하지 않고 계파없이 단기필마로 선거를 치뤘다. 인맥과 자금에 의존하지 않은 그의 가장 큰 선거운동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였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2030세대와 적극 소통, 그동안 국민의힘에서 한번도 볼 수 없던 2030세대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승부의 전환점이 된 것은 보수의 한복판이자 박근혜의 정치적 아성인 대구에서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며 과거와 결별하자고 선언한 그때였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과거 아닌 미래를 호소한 30대의 이준석 뿐 아니라 그가 가진 중도확장력, 그리고 상품성에 표를 던졌다. 이를 보면 이 대표는 영리하면서 대중의 정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 등장의 의미를 가장 높이 평가한 것은 홍준표 후보이다. 홍 후보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해 윤석열 후보와 캠프를 비판하면서 "줄 세우기로 대세를 장악하려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분들을 본다"며 "국민과 당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그 줄은 모두 의미 없는 줄서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분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난 당 대표 선거가 그랬다"라며, 대중적 지지없는 세력은 허상임을 꼬집우면서 이 대표의 등장을 국민과 당원들의 지지임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이 대표는 역대 어느 당 대표보다 몸이 가벼운 사람이다. 계파가 없으니 챙겨줄 사람이 없고, 자력으로 당선됐으니 빚을 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정치에 가장 기준이 되는 것은 정당 내부의 관행도 소모적인 계파정치가 아닌 효율성과 가성비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국민의당과의 협상과정이다.
이 대표에게 있어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은 ‘계륵(닭갈비)’같은 존재이다. 대선을 앞두고 당 대 당 합당은 레토릭(수사)일 뿐이고, 합당한다고 해도 안 대표측 요구사항만 늘어나지 큰 이익도 없다. 이 대표 입장에서 거대 양당정치 하에서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은 흡수의 대상이지 협상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안 대표측도 이를 알면서도 협상결렬을 이 대표에게 미루는 측면이다.
이 대표의 당면 과제는 국민의힘 대권후보를 전력지원, 대권을 찾아오는 일이다.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후보 포함 13명의 대선주자가 있다. 대표 입장에서는 공정한 경선관리가 최우선이고, 후보들의 역량을 극대화 하면서도 결국은 이길 후보를 만드는 것에 있다. 그러나 방식은 종래의 ‘여의도 문법’이 아닌 새로운 방식에 있다.
이 대표가 최근 강조하는 것은 ‘5% 패배론’이다.
대선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지역 분할 구도보다는 세대 공략을 강조한다. 이 대표는 "영남 몰표, 충청·강원·수도권에서 선전해서 이긴다는 전략으로 가면 질 것이고, 60대 이상 전통적 지지층에 20·30세대의 지지를 더 하면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20·30세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 방식으로 지난 4.7 서울 부산의 재보궐선거, 6.11 국민의힘 당대표에서 이긴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윤 후보는 출마선언 전 ‘여의도’ 방식을 배제하고 국민에 직접 다가서면서 제3지대를 키워 그 힘으로 국민의힘을 주도한다는 전략이었다. 높은 지지율은 가장 큰 힘이었고, 유효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1일 1실언’에 가까운 행보로 인해 지지율이 급락, 비상이 걸린 캠프로서는 전통방식의 선거 외로는 생각할 여지가 없다. 전격입당 이후 지도부 ‘패싱’은 대세론을 앞세운 주도권 확보전이었다.
윤 후보 방식의 낙후성을 간파한 이 대표는 ‘토론의 장’으로 윤 후보를 끌어들이고 공정관리라는 이름으로 압박한다. 후보간 체급도 다르고 아직 토론회에 익숙하지 않은 윤 후보측은 절차와 당헌상의 문제를 들어 토론회를 거부한다. 경준위를 통한 정책토론회는 “정책과 정견을 국민과 당원에게 알릴 기회”라는 명분을 쥔 이 대표에게 밀린 윤 캠프측에서 ‘탄핵’을 언급한 것은 ‘힘의 우위’를 과시한 것이고, 이 대표에 대한 ‘역압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홍준표 후보나 유승민 후보 등에게 역공만 받았을 뿐이고, “토론에 자신없으면 후보에서 사퇴하라”는 조롱만 받았을 뿐이다.
‘탄핵’ 발언으로 수세에 몰린 윤 후보측은 ‘탄핵 양해’ 발언에 대한 이 대표측의 ‘녹취록 유출’과 과거 이 대표가 원희룡 지사에게 “윤 후보는 토론회 두 번이면 정리된다”라는 발언으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현재 이 대표와 윤 후보간 대립은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치킨 게임(chicken game)’처럼 폭주 중이다.
윤 후보측의 대대적인 공세와 친윤(親尹)계 최고위원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먼저 ‘녹취록 유출’에 대해서는 “‘녹취록’ 자체가 없다”며 일축했다. 사실 이 사안도 윤 캠프측 ‘탄핵’ 발언에 대해 윤 후보와 이 대표간 전화통화에서 ‘사과’나 ‘유감’ 등의 표현이 있었느냐의 문제였지 심각한 사안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맥락은 윤 후보가 기자들에겐 ‘유감’을 표명하면서 이 대표에겐 ‘양해’를 구한 사실의 확인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 대표와 윤 후보간 가장 큰 갈등은 17일 오전, 최고회의 직전에 열린 원희룡 후보의 발언에서 나왔다.
원 후보는 이 대표와의 대화에서 (이 대표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고 언급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가뜩이나 이 대표가 윤 후보에 적대적이라는 분위기와 어울려 불이 붙었다. 친윤 입장인 김재원 최고위원이 최고회의에서 대표의 공정성을 문제 삼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과적으로 와전된 내용으로 밝혀졌다.
이 대표는 17일 국회방송 인터뷰에서 원 후보의 주장에 대해 "(윤석열) 캠프와의 갈등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 중에서 곧 그런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후보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면 주어가 윤 전 총장이었다고 확실히 답하라"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이 대표는 정치 입문 10년차이지만 대부분 방송토론에서 야당측 패널로 막강한 ‘입담’을 과시했다. 이 경력이 정치의 큰 자산이기도 하다.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짧은 문장과 간결한 표현으로 이른바 야권에선 ‘전투력 최강’의 패널이다. 한마디로 약점을 잡힐 발언을 많이 하지 않은 정치인이다.
지도부 ‘패싱’부터 경준위 토론회 공방, 윤 캠프측의 ‘탄핵’ 발언, 녹취록 유출 공방, 그리고 마지막 ‘윤석열 정리’ 발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권탈환이 지상과제인 국민의힘에서 당 대표와 지지율 1위 후보간 주도권 다툼에서 파생된 사안들이고 양측의 첨예한 대립을 의미한다. 당 대표는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대표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유력 후보는 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후보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분열은 공멸이기에 갈등은 봉합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협력체제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대표와 윤 후보측의 대립구도는 종래 정당구조와는 확연히 다른데서 기인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젊은 정치인 이 대표는 계파가 없다. 친이와 친박이 몰락한 국민의힘은 지금 어떤 면에서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이 없다. 윤 후보측은 바로 이점에서 대권과 당권을 노리고 있다. 이 대표 불신임도, 탄핵 발언도 이런 움직임의 연장인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갈림은 선거운동 방식이다.
이 대표는 ‘5% 패배론’에서 지역 분할 구도보다는 세대 공략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줄세우기’ 같은 세를 모으는 것이 아닌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토론을 통해 접촉면을 넓히고, 2030세대의 지지를 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윤 후보측도 이같은 흐름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 출마선언 이후 구체적인 비전이나 정책없이 ‘문재인 때리기’만 보여주고 ‘1일 1실언’으로 말실수에 전전긍긍하면서 토론회를 기피하기 위해 이 대표를 압박하는 윤 후보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윤 후보측은 18일 최고위원회를 통해 토론회를 무산시키면서 이 대표 ‘리더십’에 타격을 가했다고 자평할 수 있다. 대선후보로 수많은 토론과 무한검증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당내 후보간 토론회에 갖은 이유를 달고 불참한 것에 대해 이미 ‘토론기피증’, ‘토론불참러’라는 오명을 뒤집어 뒤집어 쓴 이후다. 이 대표가 의도하지 않은 프레임에 스스로 갖힌 꼴이다. 윤 후보가 앞으로 토론회에서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고, 말실수 하나라도 있으면 논란만 커지는 구도를 스스로 만들어 낸 셈이다.
이 대표와 윤 후보간의 브레이크 없는 ‘치킨 게임’은 당장 연기된 선관위원장 선출부터 앞으로 당내 경선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2030세대의 아이콘이자 상품성이 큰 이 대표는 아쉬울 것이 없는 상태다. 이 대표 활용도 못하는 윤 후보측의 대선전략이 가능할까?
17일 대선 출마선언을 한 당내 유력주자인 홍준표 의원은 출마 회견 후 기자들에게 "저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는 26년 만에 처음"이라며 "토론 안 하려고 당 대표를 흔드는 건 참 딱하다고 생각한다"고 윤 후보를 비판했다.
토론 안하려고 당 대표와 싸우는 범야권 지지율 1위 대선후보, 지금 윤 후보의 현 주소이다. 조금 더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