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심각한 무지함을 잇달아 드러내며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 광복절 서울 효창공원을 찾아 윤봉길 의사의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술 한 잔을 부어 놓아라"고 한 유언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술은 안중근 의사의 영정 앞에서 올리는 모습을 SNS에 공개했다. 지난달에는 부산 민주공원을 찾아 '6월 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보면서 뜬금없이 '부마항쟁'을 거론해 심각한 무지함을 드러냈다.
한국인이라면 거의 다 알 수밖에 없을 근현대사 상식임에도, 5천여만 시민을 대표하겠다며 대선주자로 나온 윤석열 전 총장이 이처럼 상식과 크게 동떨어진 모습을 연이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16일 페이스북에서 이같은 윤석열 전 총장의 행동을 언급하며 "친일 모리배를 비난하는 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 역사에 무식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한 네티즌의 댓글을 소개하며 "댓글의 재치"라고 했다. 해당 네티즌은 "윤봉길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순국한 게 부마항쟁"이라며 윤석열 전 총장을 비꼬았다.
이같은 구설수에 윤석열 전 총장 측은 "안중근 의사 사진은 이날 현장에서 촬영한 수많은 사진 중 한 장이며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은 해당 사진의 내용이 아닌 전체 당일 행보에 대한 글"이라며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판단해 게시글을 수정했다. 전체 사진과 글을 보면 후보의 광복절 행보에 대한 의미를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 출마선언 이후 그의 입으로 낳은 상식 밖 구설수가 수도 없이 많은 만큼, 궁색한 변명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처럼 근현대사에 무지한 모습은 과거 박근혜에게서도 쉽게 발견됐었다. 2012년 9월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근혜는 MBC 라디오 방송에서 지난 75년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해 파문을 일으켰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벌어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역대 최악의 간첩조작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세계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꼽힌 현대사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도예종·여정남·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 등 8인은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지 불과 18시간만에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들에겐 재심이나 어떠한 변론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유신정권은 이들이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흔적을 은폐하겠다며, 이들의 주검까지 탈취하는 만행마저 저질렀다. 여기에 남겨진 이들의 가족들마저 '연좌제'로 인해 오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었다. 당시 희생됐던 이들은 32년이나 지나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개이니,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망언을 하며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것이다.
박근혜는 박근혜 정권 말기였던 2016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장소를 잘못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박근혜는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했는데,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곳은 '뤼순 감옥'이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다.
이처럼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사람이든,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마한 사람이든 기초적 근현대사 상식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보여줬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지난 2016년 5월 아이돌그룹 AOA 멤버 설현·지민의 소위 '긴또깡 사건'이다. 당시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의 ‘채널AOA’라는 프로그램에서 설현과 지민은 유명 인물들의 사진을 보고 답을 찾아야 하는 퀴즈를 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도중 지민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안창호 선생님 맞아요?"라고 제작진에 묻는다. 그러자 제작진은 '이토 히로부미'라는 결정적 힌트를 던져준다.
그러나 지민은 "긴또깡?"이라고 뜬금없이 물었다. 잘 알려진 대로 긴도깡은 김두한의 일본식 표현이다. 지민은 '이토 히로부미'라고 재차 제작진이 얘기해줘도 "이또 호로모미?"라고 하는 등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설현은 스마트폰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검색했다. 결국 이들은 한참 뒤에서야 '안중근' 답을 적었다. 이렇게 무지하면서도 장난을 치는 모습이 공개되자 시청자들의 비난과 항의가 쏟아졌다.
이들이 소위 '폭풍 까임'의 대상이 되자 언론들도 '어뷰징(인기 검색어를 제목에 노출시켜 온라인 클릭수를 높이기 위한 수법)' 경쟁을 쏟아냈는데, '안중근' '설현' '지민' 등의 키워드로 의미없는 수많은 기사들을 송고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이들은 공식입장문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사에 대해서 진중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있다"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는 연예인으로서 오히려 장난스러운 자세로 많은 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런 사과에도 여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고, 당시 잘 나갔던 인기 아이돌 그룹이었던 AOA는 그 이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시민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의 경우 이같은 구설이 터질 경우,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내리막길을 걷곤 한다. 일부 아이돌 가수의 역사의식 관련 구설은 이후에도 가끔씩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건 공적인 문제와는 결을 달리하는, 사적 문제라 할 수 있다.
반면 정치인의 경우 명백히 시민들 삶과 관련된 공적인 일을 담당하기에, 기초적 상식조차 부재하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윤석열 전 총장의 경우 5천만이 넘는 국민들의 대표 역할을 하겠다며 나선 후보라는 점이다.
이런 무지함이 대외적으로 알려질 경우 나라의 위상과 이미지도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 또 기초적인 상식조차 부재한 사람이 국가를 지휘할 경우, 비상식적인 일이 반드시 무더기로 터질 거라는 걱정을 시민들이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부끄러움은 시민들이 다 짊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기초적인 역사 상식마저 부재한 모습을 질타하는 언론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언론의 이중적 행태를 보면 과거 설현과 지민의 경우 지나칠 정도의 비난을 받은 셈이고, 더 나아가 억울함까지 느낄 수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