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승 광복회 고문 변호사 "윤서인 같은 부류, 어떻게 몰락하는지 보여줄 것"
[정현숙 기자]= 광복회 고문인 정철승 변호사는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윤서인 공익소송 공지 후 불과 하루 만에 700여분이 참여해주셨다"라며 "서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끝까지 함께 갑시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극우 성향의 만화가 윤서인 씨는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을 직접 영접하는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포스팅해 사후 78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홍 장군과 문 대통령을 문씨라며 싸잡아 모욕했다.
??? 홍범도는 그냥 공산주의 투사 아니냐?
저기다 태극기는 왜 두르지?
홍범도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한 일이 도대체 뭔데?
평생 공산주의밖에 모르던 소련 공산당원을 대전 현충원에다 묻는 문씨 미쳤네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 전사한 호국영령들 제대로 능욕 당함
이대로 백선엽 같은 인물들 파묘하고
홍범도 같은 인물들 파묻다보면
대전현충원이 공산주의 혁명열사릉으로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겠네
정철승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씨의 이같은 글을 게시하고 "이제 공익소송을 변호사의 수익모델 중 하나로 만들어 봐야겠다"라며 윤서인 씨에 대한 공익소송을 예고했다. 윤 씨는 지난 2월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모독한 혐의로도 정 변호사의 송사에 걸렸다.
공익소송을 진행한다는 글을 올리자 마자 동참의 뜻을 밝힌 응원글이 쇄도하자 정 변호사는 "윤서인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밝혔다. 공익소송은 국가나 단체 등이 피해자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 뒤 배상 판결이 나면, 배상 받은 금액을 피해자들에게 분배하는 제도다.
정 변호사는 윤 씨에 대한 공익소송 등의 사유로 "홍범도 장군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과 더불어 '홍 장군의 현충원 안장이 백선엽 같은 호국영령을 능욕한 것'이라며 역사적, 사회적 정의 전도"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제 윤서인같은 자들이 역사적 사회적 정의를 전도시키고 공분을 자아내는 언동을 자행하여 유명세를 타고 경제적 이익을 얻는 '악의 인센티브'를 끊어서, 그런 언동은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과 형사처벌의 리스크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다"라며 1인당 5만 원의 공익소송 참여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홍범도 장군( 및 문재인 대통령 등)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 등을 자행한 윤서인에 대해 참가자 1인당 50만원씩의 위자료를 청구하고, (고소권자인 유가족들의 동의가 있을 경우) 형사고소까지 제기하는 공익소송을 하고자 한다"라고 했다.
정 변호사가 '공익소송을 진행한다'는 글을 올린 첫날 그의 페이스북에는 5만원 이체 확인증과 76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악의 인센티브를 끊어주시길! 꼭" "온 가족 모두 참여한다", "윤서인을 단단히 혼내야 한다" "정 변호사님 뒤에 있는 천군만마의 존재가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 등의 응원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정 변호사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윤서인처럼 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시범케이스로 만들려 한다"라면서 "윤서인 같은 부류들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몰락하고 파멸할 수 있는지를 이번 공익소송을 통해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몇 백 명 정도만 해도 큰 성과라 생각했는데 이 상태라면 이번주 안에 공익소송 참여자가 1000명이 넘을 것 같다"면서 "솔직히 몇 천 원도 아니고 (공익소송에 참여하려면) 5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줄을 잇는다. 윤서인을 혼내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씨가 잇따른 소송에도 계속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정 변호사는 "윤서인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윤서인의 밥줄이 되는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윤서인은 이들에게 무언가를 계속 보여줘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니 이런 몰지각한 발언들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윤 씨가 홍 장군을 소련공산당원, 공산주의자로 지칭한 것을 두고 페이스북에서 "홍범도 장군이 1927년 볼세비키당에 입당한 사실을 두고 위와 같은 망언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당시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아 일본 제국주의와 무장투쟁을 벌이기 위한 부득이한 일이었을 것이고, 홍 장군이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을 비롯한 소련 공산당 활동에 적극 관여했다는 기록은 없다"라고 했다.
이어 "오히려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과의 무장투쟁 중에 아내와 두 아들 등 전 가족을 잃은 크나 큰 비극을 겪었고,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머나 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한 후 1943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하실 때까지 외롭고 불우한 말년을 보내셨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볼세비키당 입당사실 하나를 갖고 위대한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을 능멸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관심을 끌어보려던 윤서인이가 간과한 사실은 윤서인이가 숭앙하는 박정희씨가 1962년 대통령이 되자마자 훈장(대통령장)을 추서한 독립유공자가 바로 홍범도 장군이라는 사실이다("1998.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홍 장군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뒤엔 광복 2년 전인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에서 경비 업무를 보다가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정 변호사의 말대로 1962년 박정희 정권은 홍 장군에게 독립유공자 3급 훈장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광복절을 맞아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한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홍 장군에게 독립유공자 1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홍 장군의 유해는 18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다.
행동하는 의원 모임 처럼회- 유종성-
어찌 일시의 공으로 '천추의 죄'를 가리리오.
백선엽은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폭탄으로 참살한 왜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얼마나 존경해마지 않았든지 창씨개명하여 제 이름으로 삼아 승계하고, 박정희처럼 교편을 내던지고 자원하여 왜군 장교가 되어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백씨가 해방후 6.25 참전한 공은 잠시나마 한때의 공이요. 민족이 불운할때 민족반역을 일삼은 허물은 만고의 죄가 아니겠는가!
어찌 일시의 공으로 천추의 죄를 가리리오. 참회없이 백씨가 사는동안 누린 부귀공명은 한때 참전한 공에 대한 보상으로도 과분할 정도로 충분했다. 어찌 죽어서까지 그를 추념하며 받들리오.
백선엽을 현충원에서 당장 파묘하는 것이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