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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33년 악연, 이해찬과 김종인의 마지막 승부

이창은 기자 editor@newsfreezone.co.kr 입력 2021/08/20 01:13 수정 2021.08.20 11:05
이해찬, 황교익 사태 직접 나서, 국힘 ‘어른없어 지리멸렬’ 김종인 소환

[뉴스프리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후보간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지난 2020년 21대 4·15 총선을 진두지휘한 이해찬 전 대표와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19일 이른바 ‘갑툭튀’(갑자기 특 튀어나온다는 뜻)로 소환됐다. 

지난 총선 압승을 이끈 이 전 대표는 선거 막판 건강이 급속히 안좋아져 선거업무는 공동선대위원장인 이낙연 전 대표에게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총선 후 파란만장한 40여년의 정치를 마감, 은퇴했다. 그후 언론에 나오지 않았고, 가장 최근의 소식은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 지사 캠프의 좌장으로 옮겼다는 정도였다. 

이 전 대표는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간 갈등의 핵이었던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인 황교익 맛 칼럼리스트 문제에 직접 해결사로 나선 걸로 알려졌다. 

이해찬계로 알려진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해찬 전 대표의 말을 대신 전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황교익씨는 문재인정부 탄생에 기여한 분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승리에 여러모로 기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로 마음이 많이 상했으리라 생각한다”며 “정치인들을 대신해 원로인 내가(이해찬이) 대신 위로를 드리겠다. 너그럽게 마음 푸시고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앞으로도 늘 함께 해 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형식은 위로이지만 황교익 사장 후보에게 자진 사퇴를 권한 것으로 추정된다.

황교익 사장 후보 건은 ‘명낙대전’의 뜨거운 감자였다. 지명권을 가진 이 지사가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로 지명하자 이 전 대표 캠프에서는 “‘오사카관광공사’에 어울릴 분” 등으로 폄하했고, 이 발언에 발끈한 황 사장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의 정치생명을 끊겠다”는 등의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네가티브 공세 이상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이 전 대표가 직접 나선 것은 사안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 재빠른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해찬 전 대표가 나서기 직전, 이낙연 전 대표가 직접 나서 캠프 인사가 ‘친일 프레임’을 씌운 것에 대해 사과를 표명, 사태 수습이 어느 정도 진행된 점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입장이 곤란한 이 지사를 대신, 사태를 수습한 녹슬지 않은 감각과 영향력을 과시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등장은 더 극적이다.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젊은 당 대표와 범야권 지지율 1위인 윤석열 후보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제주도지사를 사퇴하고 경선에 뛰어든 원희룡 후보가 이른바 이 대표가  ‘윤석열은 정리된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됐다. 해명과 반박, 진실공방 속 당 대표를 미는 쪽과 유력 대권주자인 윤 후보에 가세하는 사람들로 당이 나뉘어져 어수선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은 1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갈등을 잘 조정하고 화합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의사를 좀 더 많이 표현하는 상황이 과거 대표들과 다른 측면이 있다”며 이 대표가 청년 세대들과 소통에 있어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 대표에게) 익숙하지 않은 많은 분들에게는 어색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최고위원은 “당에 어른이 필요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번 대선을 치렀으면 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는데 최근에 오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며 “당을 조정할 분이 없다는 것을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너무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이 대표의 리더십이 더이상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우회적 비판도 있지만, 정치판의 속성상 원로가 있어야 함을 역설한 측면이기도 한다. 이어진 “이제 어른을 모셔와서 좀 앉혀놓고 호통을 듣더라도 그게 훨씬 낫겠다”라는 것은 젊은 이 대표가 나이 많은 후보와의 관계설정이 어긋날 경우 당이 지리멸렬해 지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김 최고위원 개인적 생각이지만 내년 3월의 대선, 이어지는 6월의 지방선거를 젊은 이준석 대표에게 일임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든 김 전 위원장(같은 원로의) 복귀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19일 언론에 나란히 등장하고 소환된 이해찬 전 대표와 김종인 전 위원장은 자타공인 ‘킹메이커’이자 ‘선거의 제왕(이해찬)’, 여야 정치인의 특급멘토(김종인)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두 사람 다 자신이 몸담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가장 어렵고 곤란할 때 나타난 것 자체가 ‘특급소방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30여 년의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더 모으고 있다.  

1988년 13대 총선, 서울 관악을에서 만난 두 사람의 악연은 33년째 이어지고 있다. 킹메이커의 계보를 잇는 두 사람, 최후의 승자는 누가될 것인가? 내년 대선의 또다른 관전포인트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자료사진)
1988년 13대 총선, 서울 관악을에서 만난 두 사람의 악연은 33년째 이어지고 있다. 킹메이커의 계보를 잇는 두 사람, 최후의 승자는 누가될 것인가? 내년 대선의 또다른 관전포인트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자료사진)

두 사람이 처음 선거에서 맞붙은 것은 1988년 13대 총선 관악을 선거였다. 1노3김의 대선이 끝나고 국회의원 선거가 소선구제로 바뀐 13대 총선은 정당마다 사활을 건 총선이자, 후보도 1등만 당선되는 첫 선거였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 후보로 나섰다. 독일 유학, 경제학박사, 서강대 교수 출신에 제11, 12대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 노태우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 등 이력도 화려했을뿐더러 무엇보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명문가 출신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선거 공보물에서 "경제민주화 완결을 위해, 관악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할 인물"이라고 밝혔다. 당시에도 '사회보장과 재분배 확장에 관여', '서민을 대변해 경제민주화 완결'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같은 지역구에서 야당인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당시 36살의 '청년 정치인'이던 이 전 대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 부위원장 등 민주화 운동 관련 경력을 대표 경력으로 기재했다.

교수와 학생운동권 대부의 대결, 선거 결과는 31.1%의 지지를 얻은 이 전 대표가 27.1%에 그친 김 전 위원장을 제치고 당선됐다. 이 전 대표는 이 승리를 발판으로 훗날 7선 의원에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여당 대표 등 대통령만 빼고는 다 경험한 정치인으로 성장한다. 

이해찬 전 대표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사람의 대통령 당선을 이끌며 이른바 최고의 선거 기획자로 선거마다 큰 역할을 했다.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다면, 민주당에서는 이 전 대표를 ‘선거의 제왕’으로 부른다.

여담으로 경제민주화 전도사였고, 재벌개혁을 염두에 둔 김종인 전 위원장이 당선되서 큰 정치인으로 성장했으면 한국 정치사도 달라졌을 거라는 평가도 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해찬 전 대표의 승리였지만, 정치인으로 두 사람의 악연이 시작되는 계기도 됐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2011년 12월 중도 확장을 노린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박근혜 대선 캠프에 영입돼 경제민주화 공약 설계를 맡기도 했다. 당시 27살의 비대위원으로 영입된 이준석 대표와의 인연이 이때 시작됐고, 이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을 박근혜 정부의 정도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이회창, 이한구 등으로부터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는 좌클릭, 포퓰리즘이라는 공격을 받으며 당내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고, 이어 박근혜가 집권하자마자 소외당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은 바로 폐기됐다. 이 일로 김 전 위원장은 반 은퇴 상태였다. 

실의에 찬 김 전 위원장을 소환한 것은 적장이었던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문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의 능력을 높이 사 2016년 1월 20대 총선의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했고, 2월부터 더불어민주당의 수장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9년간 패배만 거듭해 빈사상태에 빠져 있었고,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당’을 만들어 분당하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러나 문 대표의 승부수가 통해 20대 총선에서 많은 표를 얻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특정계파의 의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공천 컷오프나 민주당이 우세한 지역에 측근을 공천했다가 패배하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

바로 20대 총선에서 두 사람의 두 번째 만남은 악연으로 끝났다. 

공천권을 쥔 김 전 위원장은 개혁공천이란 이름으로 민주당의 오랜 중진들을 쳐냈는데 1순위가 바로 이해찬 전 대표였다. '공천 학살'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물갈이'에 나섰고 절정은 당시 당내 주류세력이던 '친노(親盧)' 그룹의 좌장, 이해찬 의원의 '컷오프'였다. 당연히 김 전 위원장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 전 대표는 강력 반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자신의 고향 근처이자 자신이 만들다시피한 세종시에서 출마, 4만6,187표, 43.7%의 득표율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보란듯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김 전 위원장은 2017년 3월, "경제민주화 법안 등 개혁입법 처리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을 느꼈다"면서 민주당 입성 13개월 만에 탈당했다. '돌아온' 이해찬 의원은 2018년 8월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해찬 대표와 김종인 전 위원장의 세 번째 만남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 ‘사령탑’으로 정면승부였다. 박근혜 탄핵으로 지리멸렬한 미래통합당은 결국 특급소방수로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 이후 대선을 치른 후라서 승부는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고, 무엇보다 코로나 위기 상황이라 집권여당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어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이라는 헌정사상 최다의석 확보, 미래통합당은 간신히 개헌저지선이라는 103석에 그쳐 참패했다. 

참패를 했어도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합류한 것은 투표 14일전이라 사실상 역할이 없었고, 이후 당 수습을 맡아 1년 후 4·7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체면은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이제 21대, 내년 3월에 벌어지는 대선은 어쩌면 두 사람의 마지막 승부일 것이다.

1940년생인 김 전 위원장은 이제 한국나이로 82세, 아직은 정정하다. 52년생인 이해찬 전 대표는 70세이지만, 지난 총선 막판에 건강이 악화됐는데 학생운동 시절 고문후유증으로 알려졌다. 연령이나 물리적으로 내년 대선은 두 사람의 마지막 승부라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여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지사 캠프의 좌장인 이 전 대표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아직은 국민의힘 지도부나 특정 후보와 연결되진 않았지만, 대선 국면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할 거라는 것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젊지만 경험이 적은 이준석 대표 단독으로 대선을 끌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지만 19일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무릎사죄'에 이어 1년만에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을 참배했다. 지난 4·7 재보선 이후 김종인 비대위 지도부 체제가 막을 내렸지만, 국민의힘의 약한 고리 중 하나인 동서화합의 광폭 행보를 보인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호남행, 신발끈을 다시 맨다는 신호 아닐까? 

두 사람의 마지막 승부는 내년 대선의 또다른 관전포인트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뒤를 이어 민주정부 4기를 완성하려는 이해찬,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김종인.

내년 대선에서 진짜 ‘킹메이커’는 누가 될 것인지, 더 지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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