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국민의힘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부동산 전수조사로 법령 위반 의혹을 받는 12명의 의원 중 한무경 의원(비례)을 제명하고 강기윤·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 의원 등 5명에게 탈당권유를 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사 이후 ‘엄정대처’를 공언한 이준석 대표는 어정쩡한 징계로 리더십 타격을, 투기의혹 의원 5명이 참가한 윤석열 캠프는 쑥대밭이 됐다.
이준석 대표는 24일 오후 긴급최고위 후 기자들과 만나 "강기윤·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한무경 의원의 경우 최고위원에서 만장일치로 뜻을 모아 탈당과 함께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의혹이 제기된 윤희숙·김승수·안병길·송석준·박대수·배준영 의원 등 6명은 충분히 소명됐다고 판단, 징계에서 제외됐다. 안병길·윤희숙·송석준 의원에 대해선 "해당 부동산이 본인 소유도 아니고 본인이 행위에 개입한 바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또 "김승수·박대수·배준영 의원의 경우 토지의 취득경위가 소명됐고 이미 매각됐거나 즉각 처분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공언한대로 강경 대응을 주장했지만 최고위원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수위를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일괄 탈당처리를 주장했으나 김재원 최고위원 등이 권익위 자료를 보고 소명 절차부터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도부는 협의 끝에 절반만 징계하는 ‘타협안’을 선택한 셈이다.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장시간에 걸친 논의와 당사자 소명 절차를 통해 권익위 통보내용을 바탕으로 마음 아픈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조치는 권익위에서 법령 위반 의혹이 있다고 한 12명이 발표되자마자 전원에게 해명 기회없이 전격탈당을 권유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대비된다.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대선 경선이 본격화 되는 시점에서 윤석열 후보와 '녹취록' '정리 발언' 공방으로 리더십에 상처가 난 이 대표가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민주당과 달리 당사자들의 소명부터 들은 것도 일괄적으로 탈당을 압박할 경우 이들의 저항에 따른 자중지란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윤 후보 캠프에 참가한 의원이 5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징계 강행은 또다른 분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대표가 ‘셀프 면죄’, ‘용두사미’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더 이상의 당내 갈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타협책에 대해 의외로 힘을 실어준 것은 민주당이다.
전날 권익위 발표 이후 국민의힘에 “엄정한 조처”를 하라고 압박했던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의 신속한 결정과 조치를 존중한다”고 밝혀 이 대표의 선택에 부담을 줄여주었다. 이소영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이 소속 국회의원 12명의 위법한 부동산 보유·거래 의혹에 대해 즉각적인 판단과 조치를 취했다”며 “이번 계기를 통해 국민 앞에 부끄럼 없는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정의당은 "권익위는 당사자의 소명을 듣고 조사한 결과에 따라 경찰 수사로 넘겼다"며 "그럼에도 당에서 자체 소명을 듣고 문제없다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번 권익위 조사로 가장 타격을 받는 대선후보는 윤석열 후보이다.
현역 의원의 참가가 가장 많은 이유도 있지만 투기의혹 12명중 송석준 부동산정책본부장, 이철규 조직본부장, 한무경 산업정책본부장, 정찬민 국민소통위원장, 안병길 홍보본부장 등 5명이 윤석열 캠프에서 본부장 직책을 맡고 있다. 캠프는 졸지에 쑥대밭이 됐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맹공한 윤 후보로서는 머쓱하게 됐다.
탈당 요청을 받은 의원 세 명 가운데 한무경, 정찬민 의원은 스스로 직책에서 물러나기로 했고, 이철규 의원은 당에 추가 해명 기회를 요청해 그 절차 동안 기다려주기로 했다.
이 가운데 송석준 의원과 안병길 의원은 최고위에서 투기 관련성이 없다고 소명이 됐는데, 안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관계를 불문하고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과 캠프에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송석준 본부장도 같은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캠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윤 후보는 줄곧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왔기 때문에 이른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지난달 29일 연합뉴스TV에 나와 “부동산 관련법을 26번이나 고치고 이러는데 지금 임기 4년차에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하고 있는건 이해가 안되는 면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윤 캠프 관련 의원이 많자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송석준 '부동산정책본부장'이라 쓰고 교묘하게 부동산투기하는 본부장으로, 안병길 '홍보본부장'이라 쓰고 부동산 투기 의혹보도 방어본부장으로 읽어야 한다"며 "국민에게 사죄하고 캠프 해체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권익위 조사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대선 후보이기도 한 윤희숙 의원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해 7월 30일 민주당의 임대차보호3법 통과를 앞두고 대정부 질문에 나와 "오늘 표결된 주택임대차법에 대해 말하려고 나왔고,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며 "표결된 법안을 보면 제가 든 생각은 4년 후 꼼짝없이 월세로 들어가게 됐구나, 그게 제 고민"이라고 밝히면서 초선 의원에서 일약 주목받는 의원으로 발돋음 했다. 특히 윤 의원의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와 여당에서조차 연설을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을 정도였다.
이런 윤 의원이 부동산 투기·위법 의혹 명단에 포함되자 큰 충격과 함께 ‘임차인’이란 표현이 소환되고 있다. 원래 윤 의원은 강북에 주택이 있었고, 직장인 세종시에 아파트가 있는 등 2주택자였지만,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면서 세종시 아파트는 처분했다. 대신 출마지역인 서초구에 전세를 구했는데 작년 시세로 8억원에 달했다. 따라서 다주택자는 아니지만 주택 소유로 임대인이면서 고급아파트 ‘임차인’이기도 했는데 ‘임차인’만 강조해서 ‘서민 코스프레’를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물론 이번 권익위 조사에 의하면 윤 의원 본인이 아닌 아버지의 세종시 전의면 일대 농지취득과 주민등록법 위반 항목이다. 따라서 윤 의원이 소유하거나 농지구입에 개입하지 않아 당 소명절차를 밟아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임차인’이란 연설로 주목을 받고, 그 힘으로 대선 후보까지 진출한 윤 의원으로선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윤 의원은 당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25일 대선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권익위 조사에서 의석 102석(조사당시, 현 104석) 중 12명이 나온 것을 가지고 국민의힘에서는 더불어민주당 12명과 숫자를 맞출려고 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 조사 당시 174석 중 12명이 나온 비율로 따지면 국민의힘은 20명 규모였다. 의석수 대비 비율로 따지면 국민의힘이 상당히 높게 나온 것이다.
사실 이번 권익위 조사에서는 중진 의원들을 볼 수 없었다. 국민의힘 아성인 강남3구 관련 부동산 투기의혹도 나온 것이 없다. 특히 3기 신도시 관련 의원이 없다는 것도 당 조치가 빠른 이유 중 하나였다. 반면 국민의힘 내부에서 조차 권익위 조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7 서울·부산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 대구 남구중구가 지역구인 곽상도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투표를 하고 인증샷을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역구에 사는 집이 아닌 서울, 그것도 송파구 장미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올렸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SH도시공사 사장후보로 지명된 부동산 전문가 김현아 전 의원의 자진사퇴 소동은 지금 국민의힘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지난 7월 5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의 주택문제 해결 차원에서 부동산 전문가라는 김 전 의원을 SH사장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거치면서 김 전 의원이 서울에 두 채, 부산에 두 채를 보유한 4주택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격 논란이 일었고, 부동산 4채를 보유한 후보자가 서민 정책을 펴는 SH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겠냐는 지적에 대해 김 전 의원은 "제 연배상 지금보다 내 집 마련이 쉬웠고, 주택 가격이 오르며 자산이 늘어나는 등 일종의 '시대적 특혜' 를 입었다"고 답변, 아예 불을 질러버렸다.
후보자 자질 논란이 크게 불거지고 여론이 싸늘하자 김 전 의원은 지난달 29일 '시대적 특혜'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한편 부산의 아파트 및 오피스텔을 이른 시일 내에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론이 돌아선 것은 2020년 7월 당시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의 다주택 보유를 비판하며 “서울 반포의 집 대신 청주의 집을 파는, 어처구니 없는, 정말 코미디와 같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며 조롱에 가까운 논평에 대한 분노였다. 여론의 역풍에 같은 당 홍준표 의원마저 지명철회를 요구, 김 전 의원은 결국 자진사퇴했다.
만약 지난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당선돼서 지금 국민의힘 국회의원이었다면 권익위 조사에 걸렸을지 아니면 빠져나갔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김 전 의원이 부동산 4채 보유 보다 여론이 안좋았던 것은 청와대와 민주당에 대한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행위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이제 부동산 폭탄은 국민의힘으로 넘어왔다.
엄정대처를 통해 민주당과 차별화를 노리며 ‘여의도식 정치’와 다른 것을 보여 주려 했던 이준석 대표는 ‘여의도 정치’에 칼을 빼다 말았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 최대 약점이라할 부동산 정책에 맹공을 퍼부었지만 현역 의원이자 캠프 핵심 본부장들이 줄줄이 연루되어 이미지만 잔뜩 구기게 됐다.
부동산 문제에 대처하는 이 대표와 윤 후보의 행보를 더 지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