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부과를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을 두고 지난달 30일 밤 MBC '100분 토론'이 예정돼 있었다. 이날 방송에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김승원 의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최형두 의원이 토론자로 출연 예정이었다.
그러나 생방송 불과 40분전, 이준석 대표가 돌연 '불참' 입장을 전달했다. 예정돼 있던 방송을 일방적으로 '펑크'낸 셈이다. 국민의힘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강행을 불참 사유로 들었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협상 결과와 관계없이 출연하겠다던 당초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무책임과 오만한 태도가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
실제 이준석 대표는 생방송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월요일에 송영길 대표님과 언론중재법 관련해서 백분토론 나간다. 언론인 출신의 최형두 의원님과 함께 나가게 되어서 든든하다"며 출연 공지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돌연 펑크를 낸 셈이다.
특히 31일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이준석 대표가 국회 출입기자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더욱 '오만한' 태도가 구설에 올랐다. 그는 "협상 결과가 나오는 것 보고 토론 불발로 판을 키워야지"라고 했으며, 또 '방송이 불발되면 MBC는 뭘 방송하느냐'는 질문에는 "동물의 왕국“이라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31일 성명서에서 "제1야당 대표가 예정돼 있던 TV 생방송 토론을 방송 직전에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이 대표는 심지어 자신이 방송 펑크를 내면서 생기게 될 방송시간 공백에 대해 ‘동물의 왕국’이나 틀면 된다고 답했다. 거대 공당의 대표가 수백만 시청자와의 약속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 그 저열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질타했다.
MBC본부는 "토론 불발로 판을 키워야 한다" "(방송 불발되면)동물의 왕국"이라고 한 이준석 대표를 향해 "공영방송 토론프로그램을 저열한 정치적 도구와 협상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자인했다"며 "토론을 기다렸을 시청자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모독했다"고 구탄했다.
MBC본부는 "이준석 대표가 보인 오만한 행태는 방송사 제작진을 상대로 한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준석 대표의 머릿속에는 정치 공학적 사고 외에는 국민도, 신의도, 최소한의 예의조차도 들어있지 않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거듭 규탄하며 공개 사죄를 촉구했다.
이준석 대표가 박근혜 비대위 시절 비대위원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 지도 거의 만 10년이 되어 간다. 그는 정치 관련 프로는 물론, 예능 프로에도 자주 출연하는 등 왕성한 방송 활동을 통해 자신의 친근한 이미지를 시민들에 구축해왔다. 그만큼 방송과 언론의 혜택을 꽤 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이준석 대표의 '페미니즘 비판' 발언들이 소위 '20대 남성'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에 힘입어 결국 국민의힘의 당대표로 선출된 것도 언론과 방송의 도움 아니었으면 사실상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이준석 대표가 이처럼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돌연 생방송 직전 '펑크'를 내는 무책임과 오만한 태도를 보이면서 파장이 더욱 커진 것이다. 실제 연예인의 경우 생방송이나 출연 작품 등을 돌연 펑크낸다면, '무책임하다'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가 어려우며 큰 이미지 실추도 각오해야 한다. 특히 공인인 정치인이라면 연예인보다 '약속'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할 의무가 있다.
결국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청자 및 방송사와의 약속을 오롯이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헌법상 가치인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해량 바란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동물의 왕국'이라고 표현한 그의 무책임한 태도에 구설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