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형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예전에 용병을 잘한다고 하면,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도록 준비를 하고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고, 내가 적을 이기는 것은 적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할 수 있으나, 내가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적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이기는 것을 미리 알 수는 있으나 이길 수 있게 만들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군대는 먼저 자신을 정비하고 약점을 극복하는 등 준비를 잘하여 적이 나를 이길 수 없는 형세를 만든다. 그런 다음 적을 이길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거나 포착한다. 즉, 먼저 패할 수 없는 자신의 기반을 닦은 후에 적의 허점이나 틈을 찾아 싸우면 승리한다는 말이다.
‘구당서(舊唐書)’ ‘태종본기(太宗本紀)’의 기록을 보도록 하자. 618년,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서진(西秦)의 설인고(薛仁杲)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이세민의 군대는 고척성(高摭城-지금의 섬서성 장무현 북쪽)에 이르렀다. 설인고는 대장 종나후(宗羅喉)를 보내 막도록 했다. 그는 몇 차례 당군에게 도전했다. 이세민의 부하 장수들은 모두 응전할 것을 주장했으나 이세민은 도무지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엄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조금 전에 한 차례 패하는 바람에 사기가 떨어져 있고, 적은 승리에 취해 오만하게 우리를 깔보고, 있는 상황이다. 적이 교만해져 있을 때 우리가 분발하면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적을 물리칠 수 있다. 그러니 감히 출전하자고 하는 자가 있으면 군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두, 군대는 60일 이상을 대치했다. 설인고의 군대는 양식이 다 떨어졌고, 당군에 투항하는 병사들도 늘어갔다. 이세민은 적군의 마음이 흩어져 있음을 간파하고, 기회를 놓칠세라 장군 양실(梁實)을 천수원(淺水原-지금의 섬서성 장무현 동북)으로 보내, 진을 쳐서 적을 유인하도록 했다. 과연 종나후는 유인 작전에 걸려들었다. 그는 정예군을 모조리 동원해서 양실을 향해 공격했다. 양실은 굳게 버텼다. 종나후가 며칠 동안 계속 공격을 가했지만, 양실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세민은 이제 적이 지쳤을 것이라고 판단, 총공격 명령을 내렸고 종나후는 참패했다.
이 전례는 ‘이대적가승’이 결코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적극적인 전략 사상임을 입증해 주는 본보기다. 손자는 위에 인용한 대목에 뒤이어서 “따라서 싸움을 잘하는 자는 패하지 않을 위치에 굳게 서서 적의 패배를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먼저 ‘자신을 보전’하고 패할 수 없는 위치에 선 다음 틈을 타서 적을 격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에 달려있고, 내가 적을 이기는 것은 적에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려면 주관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도를 닦고 법을 지키는 것, 이것이 승패의 정치다. 적의 틈을 뚫으려면 적에게 뚫을 만한 틈이 있어야 하듯이, 적을 유인하려면 적이 걸려들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투에 능한 자는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지만, 나는 적을 이용해 승리를 거둔다. 왜냐하면 ‘필승’은 자기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도 달려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 쌍방은 모두 주관적 능동성을 고도로 발휘하려고 예를 써야지 적을 어리석은 존재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나 고명한 장수는 여러 가지 수단을 펼쳐 적으로 하여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게 만든다. 적의 약점과 잘못을 발견하고 이용한 후에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
‘백전기법’ ‘수전(守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싸움에서 이른바 지키는 자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아는 자를 말한다. 자신에게 아직 승리할 만한 근거가 없는 것을 아는 자는 더욱 굳게 지킬 것이다. 적을 이길만한 근거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군을 출동시켜 공격하면 승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적가승’은 주관적 능동성에 의존하여,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하고 적시에 적의 약점과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면, 승리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