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주자인 김두관 의원이 26일 전북 지역 순회경선이 끝난 직후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사퇴 직후 선두인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호소하며, 자신의 공약인 '자치분권' 꿈을 이재명 지사에 넘긴다고 밝혔다. 경선 중도 사퇴는 정세균 전 총리에 이어 두 번째다.
김두관 의원은 이날 입장문에서 "이제 길고 긴 여행을 마칠 때가 된 것 같다. 오늘부로 경선후보를 사퇴한다"고 밝히며 "36살 남해군수 때부터 꿈꾸었던, 지방이 잘 사는 나라를 목 놓아 외쳤지만, 국민여러분의 많은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지방분권 동지들의 목소리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밝혔다.
김두관 의원은 "끝까지 완주하자는 분도 계셨고 다음 주 부울경 경선까지는 마치자는 분도 계셨다"면서도 "저의 완주보다 백 배 천 배 더 중요한 것이 정권 재창출이다. 오로지 그것 하나 때문에 사퇴한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김두관 의원은 "정권을 되찾기 위한 야권의 공세는 날로 강해지고 있다"며 "앞으로 대장동을 훨씬 뛰어넘는 상상을 초월한 가짜뉴스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런데 하나로 뭉쳐야 할 우리의 원팀은 갈수록 갈라지고 있다. 이대로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면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대장동 건과 관련해 이낙연 전 대표 측에선 다른 후보들과는 대조적으로 언론에 편승해 이재명 지사를 향한 줄곧 '네거티브' 공세를 펴왔다. 이런 과정이 검찰과 국민의힘 커넥션 파문으로 커졌을 '윤석열 게이트(고발 사주 파문)'가 추석 연휴에 떠오르지 않는 배경 중 하나가 된 것은 분명해서다.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게이트'를 언론과 함께 '물타기'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선 '원 팀'이 되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두관 의원은 "우리의 전략은 첫째는 단결, 둘째는 원팀"이라며 "힘을 합쳐도 이기기 쉽지 않다. 그런데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이래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당의 단결과 승리를 위해 이재명 후보가 과반 이상의 득표로 결선 없이 후보를 확정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릴 높였다.
김두관 의원은 이재명 지사에 대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할 유능한 지도자이고, 현실적으로 야권의 도전을 이겨낼 유일한 후보"라며 "저의 평생 꿈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염원인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가장 잘 실천할 후보이기도 하다"고 극찬했다. 그는 "이제 저의 자치분권 꿈을 이재명 후보에게 넘긴다. 비록 패자의 공약이지만 잘 이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김두관 의원은 당원과 시민들을 향해 "이재명 후보에게 힘을 주시라. 과반 이상 압도적 지지를 보내 주시라"며 "하나된 민주당을 만들고 4기 민주정부를 튼튼히 세워주시라. 저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전했다.
김두관 의원은 이날 전북 순회 경선까지 포함, 누적 득표 수 4411표(0.68%)로 5위를 기록 중이었다. 그는 지난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대선 도전의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정권 재창출을 호소하면서도 이재명 지사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낸 것이다.
이장→군수→장관→도지사→국회의원, 최근 '윤석열 탄핵' 여론에 앞장서기까지
김두관 의원의 지난 이력을 보면, 굉장히 독특한 점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 재야단체인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간사로 일하던 중 직선제 개헌투쟁 집회를 주도하다 투옥됐다. 그는 출감 후 고향인 남해군으로 돌아와 88년 13대 총선에 민중당 후보(경남 남해·하동군)에 출마했다가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그는 그 직후 서른의 나이에 고향마을 이장을 하면서 농민의 삶이 무엇인지 체득하기 시작했다.
김두관 의원은 또 90년 남해군에서 지역신문인 '남해신문'을 창간하는 데 앞장섰으며, 해당 신문의 발행·편집인을 맡았었다. 당시 남해신문은 군민이 신문사 주주가 되는 방식(1주당 5천원)으로 공모해 창간, 즉 외부로부터 오는 간섭을 차단했다. 그는 당시 발로 뛰면서 신문을 손수 주민들에게 배달하기도 했었다.
김두관 의원은 그렇게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95년 지방선거에 남해군수(무소속 후보)로 출마, 여당 후보를 누르고 첫 민선 남해군수로 당선됐다. 당시 최연소 지방자치단체장(만 36세)이었는데 현재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장 출신 군수라는 점도 이례적이다.
김두관 의원은 당시 남해군수로 취임한 뒤 군청과 지역신문과의 유착관계를 끊는 파격적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그는 △기자들에게 주는 홍보사례비 금지 △군 예산에서의 신문 구입항목 삭제 △군청 내 기자실 폐쇄 등 세 가지 조치를 발표했다. 특히 기자실 폐쇄 조치의 경우, 당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치였으며 이는 지금으로도 파격적 조치라 할 수 있다.
당시 조치로 김두관 의원은 지역언론들에게 '융단폭격'을 맞았으나 그의 과감한 결정은 옳았음이 증명됐다. 그는 98년 지방선거에서도 남해군수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출마할 계획이었으나,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했다가 큰 차이로 낙선했다. 당시엔 지금보다 지역주의의 벽이 훨씬 높았던 때다.
김두관 의원은 이 떄의 인연으로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았으며, 지역주의 타파와 학력파괴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18대 총선(경남 남해·하동군)에서도 접전 끝에 낙선했다. 또 2006년 경남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하는 등 지역주의에 막혀 4번 연속 낙선이라는 아픔을 겪는다.
김두관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듬해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야권 단일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 이달곤 당시 한나라당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후 그는 민주당에 복당했고,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김두관 의원은 2012년 7월 18대 대선 출마선언을 하며 민주통합당 대선경선에 참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퇴하지 않아도 될 경남지사직에서 물러나는 흑역사를 남겼다. 그는 당내 경선에서 3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결국 야인으로 돌아갔다.
김두관 의원은 경남지사에서 사퇴한지 2년 뒤인 2014년 7월 재보궐선거 당시 자신과 인연이 없는 경기 김포시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김포시갑 지역구)에선 당선되며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4년 뒤인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기존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고 경남 양산시을 지역구에 출마해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해 말 윤석열 당시 총장에 대한 국회 탄핵을 앞장서 외치며, 민주당 모든 의원들에게 "윤석열 탄핵에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엔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처분마저 법원에 의해 해제되고 만 시기였다.
김두관 의원은 당시 서한에서 "권력기관 개혁은 우리 민주당에게 부여한 국민의 명령이며 역사의 책무"라며 "이런 이유로 우리는 (윤석열)탄핵과 제도개혁을 함께 해야 한다. 어느 하나는 옳고 어느 하나는 틀린게 아니다. 170석이 넘는 민주당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이낙연 전 대표 체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윤석열 전 총장을 유력 대선후보로 키워준 셈이 됐다. 결국 지난해 말 김두관 의원의 생각은 충분히 옳았던 것이다.
이재명, 전북 경선 54% 압승 "김두관 충정, 무겁게 받아 안겠다" [정현숙 기자]=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로 나섰던 김두관 의원이 전날 전북 경선 직후 "당원여러분, 국민여러분, 이재명 후보에게 힘을 주십시오. 과반 이상 압도적 지지를 보내 주십시오”라며 이 후보 지지 선언을 하면서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김 의원은 26일 경선이 열린 전북 완주군 우석대학교에서 “저는 오늘부로 경선 후보를 사퇴한다”라며 “원팀, 4기 민주정부를 반드시 세워야 한다. 오로지 그것 하나 때문에 사퇴한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 당의 단결과 승리를 위해 이재명 후보가 과반 이상의 득표로 결선 없이 후보를 확정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 지사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오후 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이제 길고 긴 여행을 마칠 때가 된 것 같다. 저는 오늘부로 경선후보를 사퇴한다"라며 "36살 남해군수 때부터 꿈꾸었던, 지방이 잘 사는 나라를 목놓아 외쳤지만, 국민여러분의 많은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다. 제가 우리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경선 현장마다 찾아와서 격려해 주신 지지자 여러분께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라고 지지자들에게 인사했다. 김 의원은 "끝까지 완주하자는 분도 계셨고 다음 주 부울경 경선까지는 마치자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저는 사퇴를 결심했다"라며 "저의 완주보다 백 배 천 배 더 중요한 것이 정권 재창출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것 하나 때문에 사퇴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권을 되찾기 위한 야권의 공세는 날로 강해지고 있다"라며 "앞으로 대장동을 훨씬 뛰어넘는 상상을 초월한 가짜뉴스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런데 하나로 뭉쳐야 할 우리의 원팀은 갈수록 갈라지고 있다. 이대로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면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우리의 전략은 첫째는 단결, 둘째는 원팀이다. 힘을 합쳐도 이기기 쉽지 않다"라며 "그런데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이래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우리당의 단결과 승리를 위해 이재명 후보가 과반 이상의 득표로 결선 없이 후보를 확정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재명 후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할 유능한 지도자"라며 "현실적으로 야권의 도전을 이겨낼 유일한 후보다. 저의 평생 꿈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염원인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가장 잘 실천할 후보이기도 하다. 이제 저의 자치분권 꿈을 이재명 후보에게 넘긴다. 비록 패자의 공약이지만 잘 이어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다. 이날 전북에서 압승을 거둔 이재명 후보는 김두관 의원이 사퇴하고 자신을 지지한데 대해 "충정을 무겁게 받아 안겠다"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전북 경선 직후 김 의원의 지지선언과 경선 후보 사퇴선언을 두고 "안타깝고, 감사한 마음이 교차하고 한편으로는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저의 완주보다 백 배 천 배 더 중요한 것이 정권 재창출이다', '우리의 전략은 첫째는 단결, 둘째는 원팀이다' 선당후사의 참모습을 김두관 후보님에게서 본다"라면서 "기득권 적폐 세력과의 최후의 대회전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단결하고 단단한 원팀이 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김두관 후보의 큰 결단이 우리 당을 더욱 단단한 원팀으로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라 믿으며 원팀이 되어 반드시 정권 재창출하라는 당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후보는 "김두관 후보의 평생 꿈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염원인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이재명이 더 책임감 가지고 노력할 것이며 김두관 후보 몫까지 더 열심히 뛰겠다"라고 약속했다. 이날 광주·전남 지역에서 이낙연 후보에게 1위 자리를 뺏겼던 이재명 후보는 전북 경선에선 과반 득표로 다시 1위를 탈환했다. 전체 선거인단 216만 명 중 95만 명에 대한 경선이 끝나 반환점에 도달한 현재까지 누적 득표율은 이재명 후보 53.01%, 이낙연 후보 34.48%를 얻었다. 이어 추미애 후보가 10.60%, 박용진 후보가 1.23%로 뒤를 잇고 있다. ‘호남대전’에서 사실상 이재명 후보에게 패한 이낙연 후보는 2차 슈퍼위크를 포함한 남은 경선에서 모두 선전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면서 이 후보의 대세론이 굳혀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대선후보 '전북' 경선 결과] [누적] 1. 이재명 22,276표 54.55% 1. 이재명 341,858표 53.01% 2. 이낙연 15,715표 38.48% 2. 이낙연 222,353표 34.48% 3. 추미애 2,127표 5.21% 3. 추미애 68,362표 10.60% 4. 박용진 512표 1.25% 4. 박용진 7,946표 1.23% 5. 김두관 208표 0.51% 5. 김두관 4,411표 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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