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한 것을 허하게 보인다.
이 말은 ‘초려경략‧권6’ ‘허실’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나온다.
허실은 나한테 달려있음으로 적의 오판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점이 있으면서도 일부러 튼튼한 것처럼 보이고, 튼튼하면서도 일부러 허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허점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어 적으로 하여 튼튼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또 튼튼한 모습을 그대로 튼튼하게 보임으로써 적으로 하여 내 쪽에 혹 허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허이허지’의 계략은 본래 있는 허점을 그대로 드러내어, 적으로 하여 오히려 내 쪽에서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드는 계략이다. 비록 역사적으로 입증되지는 못했지만,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는 이 계략을 운용하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219년 봄,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장안으로부터 사곡(斜谷)을 지나 한중(漢中)으로 곧장 쳐들어갔다. 유비는 험준한 곳에 의지하여 수비에 치중하면서 맞붙어 싸우지 않았다. 한번은 조조의 병사들이 북산 아래에서 식량을 운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황충이 식량을 빼앗으러 병사를 이끌고 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조운(趙雲-조자룡)은 날랜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적을 정찰하다가 공교롭게도 조조의 대군과 맞닥뜨렸다. 좁은 길에서 양군이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에서 조운은 임기응변으로 급히 기병을 움직여 주동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는 싸우면서 물러나고 싸우면서 물러나는 것을 반복했다.
조조의 군대는 조운의 군영 코앞까지 추격해왔다. 자신의 군영까지 몰린 조운은 지금의 병력으로는 조조 군대를 당해내기 힘들다고 판단, 영루로 후퇴하여 ‘문을 활짝 열어놓고 깃발을 내리고 북 치기를 멈추었다.’ 조조의 군사들은 ‘복병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물러가 버렸다.’
이때 조운은 병사들에게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게 하고는, 강력한 활로 적을 향해 발사하면서 복병이 뛰쳐나오는 것처럼 위장했다. 조조의 군대는 깜짝 놀라 황급히 도주하다가 서로를 밟고 밟히는 등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다. 이튿날, 유비가 조자룡의 군영을 순시하러 왔다가 전날 작전을 보고받고는, “조자룡의 담이 실로 크구나. 그 몸 전체가 대담 그 자체로구나!” 하며 감탄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을 맞아 싸우던 소련군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온다. 어느 날 밤, 소련군 폭격기 한 대가 독일 군 비행장에 추락했다. 불길이 치솟는 비행기를 향해 독일 군들이 달려왔다. 소련 군 조종사는 낙하산을 이용해 탈출하는데, 성공했으나 공교롭게도 독일 군 비행장 안에 덜어지고 말았다.
‘자! 이제 어떻게 적의 소굴에서 빠져나간다?’
생각에 잠겼던 소련군 조종사는 순간적으로, 불빛이 환한 전방은 비행기가 줄지어 정착해 있어서 끊임없이 사람 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나 반대쪽은 어둡고 조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곰곰이 분석해 보았다. 어둡고 적막한 곳은 미지의 장소이기 때문에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대담하고 침착하게 적의 비행 승무원들이 머무르고 있는 작은 건물을 지나 환한 대낮과 같이 밝은 전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독일군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행하는 승무원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조종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마 그 조종사는 어딘가에서 꾸물거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소련군 조종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용감하게 비행기에 올라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엔진이 돌아가자 비행기가 높이 날아올랐다. 비행장의 소란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뒷좌석에 앉은 승무원 중 그 누구도 이 소련군 조종사를 의심하지 않았다. 날이 밝을 무렵, 소련군 조종사는 독일군 비행기를 몰고 자기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