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무력함과 '여야 합의'만 기계적으로 외치는 박병석 국회의장으로 인해 결국 언론개혁 법안마저도 또 표류하게 됐다. 현재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당초 발의됐던 법안에 비해 국민의힘 요구에 맞춰 대폭 수정한 법안임에도 결국 이마저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 체제에서도 "2월 안에는 언론개혁법안 처리하겠다"고 공언하더니 결국 말만 하고 끝냈는데, 이번에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의석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30일 페이스북에서 '언론중재법 처리 무산을 개탄한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언론중재법 처리가 무산됐다"고 탄식했다. 여야는 지난 29일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을 재논의하기로 했고, 위원회엔 여야 9명씩 총 18인으로 구성되며 활동 기한은 올해 말일인 12월 31일까지다.
사실상 연내 처리는 불가능해진 것이고 또 언론중재법에 대한 처리 시한도 못박지 않았다. 여기에 내년 3월 초가 대선이기에 내년 초에 국회에서 처리할 만한 여유도 없다. 결국 특별위원회는 그저 '껍데기'만 남은 셈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모양은 12월 말로 처리 시한이 연기된 것으로 하고 있지만, 그간 국회의 관행과 행태로 본다면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며 "불행하게도 여당이 언론과 야당의 협박에 굴복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추이매 전 장관은 "언론자유는 확고한 기본으로 하되 최소한도의 국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합의는 이미 이루어졌다"며 "언론의 악의적 왜곡 및 허위보도가 횡행하고 있으며, 언론은 이미 그에 대한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즉 한국의 언론 신뢰도가 OECD 국가들 중 최하위를 맴도는 것만 보더라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어서다.
추미애 전 장관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러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명백한 허위보도 중에서 악의성이 특히 두드러진 세 개의 보도 유형만을 골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야당은 마치 그 세 개의 유형 외에도 모든 보도 행위가 징벌적 손배의 대상이 되어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거기에 야당은 부화뇌동하고 여당은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질타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이로써 피해자를 구제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언론의 극악무도한 행태에 경종이라도 울려주기를 바랬던 국민의 여망은 다시 한 번 물거품이 돼버렸다"고 거듭 개탄했다. 그는 "이번 민주당 경선이 더더욱 중요하다. 국민 여러분은 경선에서 보다 확실한 개혁후보를 선출함으로써 당과 국회에 명령해야 한다. 국민이 요구하고 국민이 필요로 하는 개혁법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민의 뜻을 따르도록 명령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추미애 전 장관을 지지하는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어떻게 이렇게 예상을 한 치도 못 넘지 않을까"라며 "언론개혁의 문고리를 만지작 거리더니 결국 놓고 말았다"고 민주당을 질타했다.
김민웅 교수도 "개혁은 무엇보다도 기세로 하는 것"이라며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이미 반개혁"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선거는 개혁과제를 최대치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런데 문전 골 포기다. 내용도 누더기로 만들더니 후퇴를 공식화했다"고 질타했다.
김민웅 교수는 '사회적 합의'를 들먹이는 정치권에 "이미 합의는 완료되었다"며 "언론개혁은 이 시대의 대주제다. 언론자유로 위장한 언론의 폭행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희생을 겪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시민의 기본권을 함부로 능멸하고 짓밟고 있는 것을 눈뜨고 그대로 계속 당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따져물었다.
김민웅 교수는 "강력한 개혁정치가 아니고서는 언론개혁은 아득하다"며 "민주당을 개혁 원위치로 가게 만드는 힘, 그걸 복원하지 못하면 우리는 개혁정치가 이런 저런 구실로 한없이 후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더욱 힘차게 개혁, 오직 그 길 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민주당이 공개한 수정안도 본래 원안보다 대폭 후퇴한 것이다. 손해액의 구체적인 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울 경우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 1만분의 1에서 1천분의 1을 곱한 금액 등을 고려한다는 원안의 조항을 '언론사 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 고려하여’로 수정했다. 피해액 추산 방식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모호한 조항이 들어가면서, 법원에서 임의로 해석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기자 개인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던 원안 조항이 삭제됐고, 기사 열람차단청구권과 관련해 열람차단이 청구된 기사에 해당 사실이 있었음을 표시하도록 한 조항도 삭제됐다. 정정보도의 경우 당초 법안에서는 원래 기사와 같은 위치·분량·시간으로 보도하도록 했으나, 이마저도 ‘2분의 1 이상’으로 완화됐다. 그만큼 많이 본래 취지에서 후퇴한 법안도 결국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은 29일까지 의견접근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정안을 상정, 단독처리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최고위와 의원총회 등 내부 마라톤 논의를 거쳐 결국 또 후퇴한 것이다. 이날 민주당 22명의 의원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내며 토론을 이어갔는데, 이 중 절반 가량이 반대 토론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전해졌다.
언론개혁에 대한 초기 찬성여론이 한때 80%를 찍었을 정도로 시민적 열망이 높았음에도, 이해당사자인 언론-언론단체들과 야당의 반발에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국민의힘과 핵심 쟁점인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기사열람차단청구권을 놓고 평행선만 긋다가 '빈손'으로 마무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