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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
오피니언

[이정랑 칼럼]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

이정랑 (논설위원, 중국고전 평론) 기자 j6439@naver.com 입력 2021/10/10 12:55 수정 2021.10.12 17:28

밝을 때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고
어두울 때에 진창을 건넌다.

이 계책은 정면공격을 하는 척하거나 움직이는 척하는 양공(陽攻) 또는 이른바 양동(陽動)으로 적을 현혹시켜 공격노선과 돌파 지점을 위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만 작전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사기』 ‘회음후열전’과 ‘자치통감’ ‘한기(漢紀)’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진(秦)나라가 막 무너지자 항우(項羽)는 파(巴)‧촉(蜀)과 한중(漢中-지금의 산서성 서남 산지) 등의 세 곳의 군을 유방(劉邦)에게 주어 항왕(漢王)으로 봉하고 한중의 남정(南鄭)을 도읍으로 삼도록 했다. 항우는 이처럼 유방을 한쪽으로 치우친 산간지방에 가두어 놓고 관중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에서 항복해온 장수 장한(章邯)‧사마흔(司馬欣)‧동예(董翳)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유방이 동쪽으로 세력을 뻗쳐나갈 수 있는 출로를 차단했다. 항우는 스스로 초패왕(楚覇王)이라 칭하고 아홉 군을 차지하는 한편, 장강 중‧하류와 해하(垓下) 유역 일대의 넓고 비옥한 땅을 점령하고 팽성(彭城-지금의 강소성 서주)을 도성으로 삼았다.

천하를 독차지하고 싶은 큰 야심을 가진 유방으로서는 항우의 속셈이 마땅할 리 없었다. 또 다른 장수들도 자신들에게 나누어진 좁은 땅덩어리가 불만이었다. 그러나 항우의 위세에 눌려 감히 대놓고 반항하지 못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지역으로 부임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방도 어쩔 수 없이 병사를 이끌고 서쪽을 거슬러 올라 남정으로 갔다. 유방은 장량(張良)의 계책을 받아들여 지나온 수백 리 잔도(棧道)를 모조리 불태워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다. 잔도란 험준한 절벽에 나무로 만들어놓은 길을 말한다. 잔도를 불태워버린 목적은 방어에 유리하도록 하자는데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항우를 현혹하자는데 있었다. 즉, 유방이 자신의 근거지에서 더, 이상 밖으로 나올 의사가 없다는 것을 항우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에 대한 경계를 늦추자는 것이다.

남정에 도착한 유방은 부장들 중에 출중한 군사 이론가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바로 유명한 한신(韓信)이었다. 유방은 한신을 대장으로 삼아 그에게 동쪽으로 세력을 뻗쳐 천하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근거지와 그에 따른 군사 작전을 마련할 것을 부탁했다.

한신의 첫 단계 계획은 먼저 관중을 차지하여 동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초를 멸망시킬 근거지를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병사 수백 명을 보내 지난번 불태워버린 잔도를 복구하도록 했다. 이때 관중 서부 지구를 지키고 있던 장한은 이 소식을 듣자 그들을 크게 비웃었다. 

“그러게 누가 너희들더러 잔도를 불태우라고 했더냐? 그게 얼마나 큰일인 데 겨우 병사 몇백이 달려들다니, 어느 세월에 다 복구하겠는가?”라면서 장한은 유방과 한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장한은 급한 보고를 받게 된다. 유방의 대군이 이미 관중에 들어와 진창(陳倉-지금의 보계현 동쪽)을 점령했으며, 그곳 장수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장한은 이 보고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자 허둥지둥 전열을 가다듬어 방어를 서둘렀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장한은 자살을 강요받았고, 관중 동쪽을 지키던 사마흔과 북부의 동예도 잇달아 항복했다. 이른바 ‘삼진(三秦)’으로 불리던 관중 지구는 이렇듯 순식간에 유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원래 한신은 표면적으로 잔도를 복구하여 그곳을 통해 출격하려는 태세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유방이 이끄는 주력군으로 하여 몰래 작은 길을 따라 진창을 습격하게 하여 장한이 대비하지 않은 틈을 타 승리를 거머쥔 것이었다. 이것이 ‘겉으로는 잔도를 복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을 건넌다’는 뜻의 ‘명수잔도, 암도진창’이라는 고사가 유래하게 된 배경이다.

‘명(明)’과 암(暗)‘은 용병의 ’기정(奇正)‘ 관계를 반영한다. 정상적인 용병 원칙에 따라 적이 내 쪽의 행동을 판단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출기제승(出奇制勝)‘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암도진창‘은 적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명수잔도‘가 있어야 가능하다.

1944년, 미‧영 연합군이 성공적으로 노르망디에 상륙한 것은 현대적 조건에서 이루어진 ‘명수잔도, 암도진창’의 본보기였다. 정상적인 상황에 따른다면, 영국 동남부로부터 칼레 해협을 건너 맞은편 프랑스의 파드 칼레 지구로 상륙하는 것이 영국 남부에서 영국 해협을 건너 노르망디에 상륙하는 것보다 거리도 짧고 운송도 편리했으며, 또 공군의 지원을 받기도 쉬운 이상적인 공격노선이었다. 따라서 독일군은 주 방어력을 칼레 지구에 집중시켜 놓고 있었다. 

연합군은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가짜 진지를 설치했다. 즉, 깔레 맞은편 잉글랜드 동부에다 미군 ‘제1사단을 가짜로 만든 다음, 무전망도 설치하고 아울러 조지 S 패튼을 군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가짜 정보도 흘렸다. 독일군은 이 부대를 상륙작전을 준비하는 주력으로 오인했다. 연합군은 영국 동남부 각 항구와 탬즈강 하구에 함대를 상륙시켜 가짜로 각종 물자와 기재 등을 대량으로 선적하는 활동까지 벌였다. 그리고 칼레 지구에 맹렬한 포격을 퍼부은, 반면 노르망디에는 일상적인 포격만 퍼부어 독일군의 착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연합군은 돌발적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연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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