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이재명 경기지사가 선출된 일은 한국의 정치사에서 매우 이례적 사건으로 꼽힐 수밖에 없다.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의원, 청와대, 중앙정부 등의 경험 없이 대선주자로 오른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스스로를 '변방사또'라고 표현했던 이재명 지사는 민주당에선 부대변인 이력만 있을 정도로 당내에서 요직을 맡아본 경험도 없다.
이재명 지사의 인생을 돌아보면 '비주류 중 비주류'로 불리우며 기득권 세력에게 공격당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도 더 '비주류'에 속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졸' 출신(부산상고 졸업)이라는 이유로 '엘리트'를 자처하는 기득권 세력에게 수없이 공격을 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앞에서 '대학 학번'을 따져 묻던 건방진 검사가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매우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인해 초등학교 이후 중·고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치뤘다.
'학벌' '인맥' '파벌' 등이 여전히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의 이재명 지사의 대선후보 선출은 기존 정치계에도 큰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에서는 여전히 '누구와 친하다' '어느 요직을 거쳤다' '학벌이 어떻다' '출신 지역이 어디다' 등이 여전히 중시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을 받으면서 한국 정치도 일본처럼 '계파 정치'라는 틀에서 오랜 세월 좌지우지됐다.
일제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군사독재정권이 하던 각종 행위들, 그리고 이른바 '보스' 중심으로 움직이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치'는 대표적 '일제 잔재'로 꼽힌다. 이는 실력·능력·전문성 등으로 당내 주요직책이나 정부 주요직책을 맡는 것이 아닌, 이른바 '계파 안배' '지역 안배' '누구 측근' 등으로 직을 '나눠먹기'하는 고약한 관행이 한국 정치에 여전히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요직을 나눠먹기할 경우, 그 요직에 앉은 인사는 '내가 그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내겠다'가 아닌 그 요직이라는 간판에만 집착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자신의 '스펙 쌓기'와 '의전 집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공익을 위한 성과는 거의 내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복지부동'만하거나 시민 여론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내려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곧 '인사 참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윤석열·홍준표·유승민·이준석 등과도 '대조' 이유는?
그러나 '흙수저 중 흙수저' 출신인 이재명 지사는 기존의 '학벌' '인맥' '파벌' 등이라는 문법에서 벗어나 성남시장, 경기지사에 이어 거대여당의 대선후보라는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기존 여의도 정치와도, 또 기존 관료사회와고도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이는 현재 야당 대선후보들과도 명백히 대조되는 부분이 있다.
상대당 후보로 예상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교수' 부친(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을 둔 명백한 '금수저' 출신이라는 점과도 대조되고, 역시 '흙수저'라고 스스로를 호칭한 홍준표 의원도 당대표 2회에 원내대표, 5선 의원 등 각종 요직은 다 해본 만큼 역시 대조된다. 유승민 전 의원도 '국회의원' 부친(유수호 전 의원)을 둔 역시 금수저 정치인이다.
언론에선 마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파란'의 대명사로 호칭하곤 하는데, 그는 이미 20대에 박근혜로부터 '비대위원'으로 지명받아 선출된 대단한 '특혜'를 입었다. 그는 또 스무살이었던 지난 2004년 부친과 유승민 전 의원과의 인연으로 인해 유승민 의원실에 인턴으로 근무한 엄청난 특혜도 입었다. 이런 '인맥'을 타서 정치권으로 들어온 것이 분명한 만큼, 그도 명백한 '금수저 정치인'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이와는 대조적인 이재명 지사의 대선후보 선출은 기존 정치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이로써 '계파 안배' '지역 안배' '누구 측근'이라는 이유로 요직을 나눠먹으며 '복지부동'하는 고약한 전통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말로만 '법안 발의하겠다' '추진하겠다' '검토하겠다'고 해놓고는 실제 아무 성과도 없이 뭉개거나, 혹은 자신의 말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정치인의 사례는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어서다.
반면 이재명 지사는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한다면 한다'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높은 '정치적 효능감'을 보여주며 자신에 찾아온 커다란 역경을 이겨내고, 각종 성과를 입증해 결국 대선주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각종 음해'로 꼴찌에서 1위 대반전, 기사회생한 그 배경에는?
이재명 지사는 지난 2018년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특정 세력의 각종 '음해'에 시달리며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당시 있던 '음해' 내용들은 모두 근거와 실체가 없는 '가짜뉴스'임이 확인됐으나, 지금도 해당 건으로 그를 공격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그는 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정치생명이 끊길 뻔했으나, 가까스로 대법원에서 기사회생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파기환송심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실제 이재명 지사가 당시 어느 정도로 타격을 입었는지는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곤 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지사는 민선 7기 취임 초기(2018년 7월) 17명의 광역자치단체장 중 지지도 순위 꼴찌로 출발했다.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을 비롯한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자신의 기본 시리즈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고, 높은 공약이행률까지 보여주면서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성을 시민들에게 보여줬다. 또 도내 계곡 정비사업을 경기도 전체에 확산시키는 등, 강단있게 추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재명 지사는 코로나 확산 초기인 지난해 2월에는 방역 지침에 협조하지 않는 신천지에 대한 선제적 행정조치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당시 경기 과천시에 위치한 신천지 총회본부에 직접 찾아가 신천지 측에 신도 명단 제출을 요구해 결국 받아냈다.
이재명 지사는 이어 코로나 검사를 거부하는 신천지 교주 이만희의 주거지(경기 가평군 위치)로 체포조와 동행, 이만희를 직접 체포하는 강단도 보여줬다. 이에 이만희는 주거지를 황급히 빠져나와 과천시보건소를 방문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확산 초기 헤매는 모습만 보였던 권영진 대구시장과는 정확히 대조적인 모습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경기도는 지난해 말까지 이재명 지사의 공약사업 363개를 대상으로 자체 이행현황을 분석한 결과, 349개 사업이 완료됐거나 정상 이행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난 3월 밝혔다. 363개 중 사업완료 297개, 정상추진 52개, 일부 추진 14개로 공약 이행률이 96.1%라는 설명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발표한 지난 5월 민선 7기 전국 시·도지사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결과에서 이재명 지사는 최우수 등급인 SA등급(3년 연속)을 받았으며, 이 지사의 공약 이행률도 81.37%로 전체 선두를 기록하며 전국 평균보다 거의 20%p가량 높았다.
그런 성과들을 토대로 이재명 지사는 전반기 2년을 마치면서 1위(2020년 7월)로 올라오는 대반전을 이뤄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전반기 2년 이후에도 '긍정평가' 60%대를 꾸준히 기록하는 등 2개월(올해 2~3월, 2위)을 제외하곤 계속 선두를 지켰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처럼 바닥까지 떨어졌던 이재명 지사가 다시 올라온 것은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언행일치 자세였다. 대선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전 대표 측이 쉴 새 없이 자신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했음에도, 이재명 지사는 자신이 한 '네거티브' 중단 선언을 끝까지 지켰다. 이낙연 전 대표가 "네거티브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도 이를 전혀 지키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 모습이었다.
이재명 지사 측은 얼마든지 '열린공감TV'가 단독 보도한 이낙연 전 대표 관련 각종 의혹들을 검증하고 따져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언행일치'를 지키기 위해, 분명 인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선주자로서 본격 행보를 시작한 이재명 지사가 이번 '대장동' 건에 있어 국민의힘과 '조중동' 등 수구언론 등의 공세를 어떻게 받아내고 반격에 나설지부터 관심이 쏠린다. 민간개발업자로부터 5500억원 가량의 개발이익을 환수해 성남시민에게 돌려준 '모범 사례'임을 증명하고 홍보하는 것은 물론, '개발이익 국민환수제'까지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기존 기득권을 분쇄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18일, 20일 열릴 경기도 국정감사가 크게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