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프리존]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쿠데타의 주범이자, 1987년 직선제 개헌을 통해 13대 대통령에 오른 노태우씨가 오랜 지병 끝에 26일 사망했다. 향년 89세,
노씨의 사망일은 공교롭게도 한국현대사에서 군부독재의 서막을 연 박정희씨의 기일과 같은 10월 26일이다. 군부독재를 연 박정희와 마지막 군부세력인 노씨의 퇴진은 묘한 아이러니를 낳는다. 물론 기일이 같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들은 군인으로 연결돼 독재정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노씨의 사망이 정치권에 주목받는 것은 대선국면에서 국민의힘 유력주자인 윤석열 후보(전 검찰총장)가 지난 19일 부산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한 발언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문제의 발언이 “할 만한 발언아니냐?”식으로 사과나 유감 대신 ‘자신의 발언을 정치 공방으로 몰아간다’며 정면돌파할 기세였지만 같은 당 유력후보들 마저 비판에 나서자 결국 유감 표명을 하지만, 이것도 미진하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21일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송구하다’는 표현으로 사과를 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사과 이후 그날밤 자신의 반려견 ‘토리 인스타그램’에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려, “사과는 개나 줘버려‘라는 식의 사과마저 ‘희화화’ 한다며 더 큰 충격과 비난이 쏟아졌다. 범여권은 물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마저 ”상식을 초월하는...착잡하다"며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윤 후보의 ‘전두환 옹호’ 발언은 여론조사의 지지율에도 그대로 반영될 정도로 큰 타격이었다. 발언 이후 겨우 수습 단계에서 1주일만에 전두환과 일란성쌍둥이라 할 수 있는 노씨가 사망한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이라 할 수 있다.
노씨는 전두환과 함께 신군부의 핵심으로 평생의 동지이자 지기였다. 박정희가 군부내 자신의 친위세력을 구축, 동향인 영남출신을 중용하면서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 1979년 10.26 이후 혼란기를 틈타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다. 선두주자인 전두환은 친구이자 동지인 노태우에게 모든 요직을 맡기고, 종국에는 대통령까지 넘겨준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모든 것이 같았지만, 5.18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달랐다.
전두환은 전남도청 헬기사격을 주장한 조비오 신부를 회고록에서 비난, 사자명예훼손으로 법정에 서면서도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사과도 유감도 아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반해 노씨는 말년에 투병 중이라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아들인 재헌씨를 통해 광주을 찾아 5.18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하는 등 다른 면모를 보였다. 재헌씨는 노씨가 "5·18 민주묘지에 참배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부친을 대신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방명록에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린다'는 글을 남겼다. 부인인 김 여사도 1988년 2월 25일 노 전 대통령 취임 직후 광주 망월동 5·18 민주묘지와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찾아 참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이고 있다. 아울러 추징금까지 완납하는 등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점은 최근까지 전두환이 골프를 치고 다니는 등 호화생활을 하면서도 추징금은 여전히 완납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전두환 정권 하 수많은 피해자들을 우롱하며 여전히 망언을 수없이 하고 있다는 점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노씨 유족들은 어제 오후 발표한 성명에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평소에 남기신 말씀'이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여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면서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남북한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뤄지길 바란다"는 발언들을 공개했다.
5.18과 광주를 직접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대목은 광주항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분위기인지 더불어민주당은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에 대해 역사의 죄인이지만 "전두환씨 행보와는 다르다"며 애도를 표했다.
이용빈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에 가담한 역사의 죄인"이라며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군사독재를 연장했고 부족한 정통성을 공안 통치와 3당 야합으로 벗어나고자 했던 독재자"라고 평가했다. 다만 "재임 기간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중국 수교 수립 등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퇴임 이후 16년에 걸쳐 추징금을 완납하고, 이동이 불편해 자녀들을 통해 광주를 찾아 사과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광주 영령과 5.18 유가족, 광주시민을 위로할 수 없겠지만 그의 마지막은, 여전히 역사적 심판을 부정하며 사죄와 추징금 환수를 거부한 전두환 씨의 행보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전두환과 전혀 달랐던 노씨의 마지막 행보는 죽음으로써 관대한 평가가 아닌 ‘과오’에 대한 진정한 사과로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이다.
‘전두환 옹호’와 ‘개 사과’로 지지율 급락이라는 악재 속에 노씨의 사망은 전두환에 대한 재평가와 맞물려 더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기관 공정이 데일리안 의뢰를 받아 26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가상 양자대결에서 홍준표 후보는 50.9%를 기록하며 민주당 이재명 후보(35.3%)를 약 15%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같은 조건의 양자대결에서 윤 후보는 (45.9%)은 이 후보(39.1%)를 이겼지만 격차는 6.8%포인트에 불과했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의 의뢰를 받아 조사한 결과 가상 양자대결에서 홍 후보(45.1%)는 민주당 이 후보(40.6%)를 약 4%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그러나 윤 후보(40.6%)는 이 후보(43.7%)에게 약 3%포인트 차이로 밀렸다. 양자 모두 오차범위 내인 점을 감안하면 초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 25일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이 MBC 의뢰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와 이 후보와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38.7% 대 42.7%로 열세를 보였다. 홍 후보는 이 후보에 43.7% 대 38.6%로 앞선 것과 차이났다.
같은 날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의 지지율은 33.6%로 이 후보(37.5%)에 밀렸다. 지난주 조사에서 윤 후보가 이 후보에 1.7%p 우위를 보였으나 이번주에는 3.9%p 역전을 허용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후보의 ‘전두환 옹호’ 발언 이후 ‘개 사과’ 논란 등 모든 조사에서 지지율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도 밀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더 타격인 것은 양자대결에서 홍 후보가 윤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선거관리위원회는 26일 본경선 룰과 관련해 일반 여론조사 문항의 경우, '일대일 경쟁력'을 묻되 질문은 한 차례만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대일 경쟁력'과 '4지 선다' 방식을 두고 경선 후보들 간 의견이 엇갈린 점을 감안해 절충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같은 결정은 홍 후보에게 유리한 구도라 홍 후보측이 판정승을 거둔 셈이 됐다.
현재까지는 일반국민여론에선 홍 후보가, 당원투표에선 윤 후보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으나 당원투표에서 윤 후보의 우위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흔히 ‘이준석 효과’로 호남과 젊은 당원이 급증한데다, 홍 후보는 지지율 조사에서 2030-40세대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사진 논란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주춤한 사이 홍 후보가 급상승세를 탄 분위기다.
이제 27일 강원 권역별 토론회에 이어 29일 3차 맞수토론과 31일 서울·수도권 토론회를 마지막으로 경선 일정을 마무리한다. 토론회가 끝나면 다음 달 1~2일 당원(50%) 모바일투표, 3~4일 전화투표와 여론조사(50%) 결과를 합산해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
윤 후보로서는 반전을 모색해야겠지만, 시간이 없다. 남은 토론회나 맞수토론에서 한번 더 실수하게 되면 치명상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홍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 현대사와 인물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며 엄정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본인 스스로 얕고 천박한 역사인식을 드러내고, 이어 ‘개 사과’ 논란을 자초한 것에서 비롯된다. 만약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 후보가 승리한다면, 이는 오로지 윤 후보 역사인식의 한계가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3차 경선을 조금 더 지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