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스프리존] 최도범 기자 = 삶은 죽음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하지만, 죽음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동반하고,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떠나보내는 이는 못다 전한 마음이, 떠나는 이는 끝내 이루지 못한 무엇이 그립고 애달프다.
그래서 창작 무용극 <만찬-진, 오귀>는 삶과 죽음의 경계, 이승과 저승사이에서 마주하는 생의 이야기이자 죽음 후 49일, 심판과 새로운 시작의 이야기이다.
인천시립무용극단이 한국판 명부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무속의 진오귀굿을 모티브로 창작한 무용극 <만찬-진, 오귀>를 다시금 무대에 올린다.
전세계 명부 신화와 견줄 우리만의 저승신화를 춤으로 풀어낸 2017년 초연 당시 한국판 '사자의 서'로 극찬을 받은 <만찬-진, 오귀>는 전통 굿 의식의 현대적 변용을 통해 더욱 강렬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무속 고유의 상징성과 기호성, 이승과 저승 두 세계를 넘나드는 호쾌한 스케일과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조로 눈길을 끌었다.
작품은 죽음을 맞이한 '망자'를 중심으로 이승과 저승, 사자들이 걷는 중간 세계가 함께 열리는 다층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죽음을 맞은 어머니와 슬픔에 잠긴 아들을 중심으로 어머니의 뒤에는 죽은 자의 삶을 심판하는 저승의 신들이, 아들에게는 천도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있어 이승과 저승의 세계가 동시에 무대 위에 펼쳐진다. 신들이 거하는 저승의 세계가 무대 위쪽에 자리할 때 아래쪽에 인간사가 흐르고, 그 세계의 사이를 무당과 사자가 가로지르며 이야기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는 망자의 이야기가 더욱 부각돼 생이 명멸하는 그 찰나의 슬픔, 남겨진 이의 애달픔, 흩어지는 기억의 아름다움이 장면에서 펼쳐지며 더할 수 없는 비감을 전한다.
또한 작품 중 왕무녀가 망자의 변호인으로서 지난 삶을 신들에게 되짚어 보이는 순간에 흐르는 엄마의 시간, 여성의 시간,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시간이 관객 모두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부모를 떠나보낸 후 후회만 남은 자식의 마음과 떠나간 부모의 자식을 향한 애틋한 정에 이입하며 인간적 공감을 자아낸다.
특히, 작품은 인간의 서사에 삶을 어여삐 여기는 신의 시선이 더해지며 작품에 다채로운 층위가 더해진다. 죽음의 얼굴인 저승사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은 존재로, 죄를 심판하는 심판자이자 긍휼한 초월적 존재인 열 명의 저승 시왕 역시 해학이 넘치는 해석이 가미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번 공연은 드라마틱한 캐스팅으로도 눈길을 끈다.
초연 당시 주인공 '왕무녀' 역으로 작품을 준비하다 공연 직전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역할을 내려놓아야 했던 장지윤이 왕무녀로서 다시 한번 무대를 준비한다. 산자와 망자 모두를 품어 한 세상에서 만나게 해주는 왕무녀의 커다란 시선을 부상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 체험하며, 본연의 카리스마에 더해진 깊이 있는 춤으로 관객을 매료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장지윤과 함께 왕무녀 역에 더블캐스팅된 유나외 역시 청아한 외모와 집중력 있는 춤으로 혼자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감정과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할 예정이다.
이야기 구조의 중심에 있는 망자 역의 임승인은 마지막 숨을 거둔 어머니의 모습을 삶의 회한과 자식을 향한 애틋한 정으로 표현하며 응집력 있는 춤과 호흡으로 작품의 한 축을 이끌어가고, 거대한 진혼굿을 온전히 치러내는 아들이자 남겨진 모든 이를 대표하는 산자 역의 김철진은 물오른 감정연기와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춤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외 박수무당의 기개와 에너지를 체화한 듯한 박성식의 농익은 춤을 비롯해 출연진의 아름다우면서도 정교한 춤사위와 군무의 강렬함은 작품의 완성도를 더한다.
작품의 구성은 ▲프롤로그:소환 ▲만찬Ⅰ(여정) ▲만찬Ⅱ(신의 놀음) ▲여정의 끝 ▲에필로그-일상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인천시립무용단 창단 40주년을 맞아 전막 재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창작 무용극 <만찬-진, 오귀>는 11월 26일 금요일 오후 8시와 27일 토요일 오후 3시,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에 오른다. 관람료는 전석 2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