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7일 수험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자신이 '사법시험 9수' 끝에 합격한 점을 강조했다. 윤석열 후보 입장에선 수험생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9수' 경험을 강조하는 건 수험생 입장에선 '악담'으로 들릴 법한 얘기다. 재수, 삼수 등을 한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다.
윤석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수험생 여러분! 여러분은 이미 히어로"라며 "올해는 코로나 백신까지 맞아가며 공부하느라 어느 때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을 모든 수험생과 함께 마음 졸이셨을 학부모님과 선생님도 참으로 고생 많으셨다"고 격려했다.
윤석열 후보는 “공부를 하다 보면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외롭고 고독한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며 “저도 사법시험을 9수한 사람이라 어느 정도 그 기분을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도 이미 여러분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라며 “잘 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다. 여러분의 빛나는 미래를 응원한다”고 격려했다.
이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시험 잘 봐라 그동안 고생했다. 재수좋게 꼭 붙어라. 이런 말이 상식 아닌가"라며 "세상에 9수씩이나 할 수 있는 집안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겠나? 이게 수험생들에게 할 말인가? 쯧쯧"이라고 힐난했다. 실제 윤석열 후보가 '9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금수저' 집안에서 출생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열린공감TV' 취재진으로 활동 중인 김두일 차이나랩 대표도 이날 유튜브 커뮤니티 글에서 윤석열 후보 메시지에 대해 "'내가 9수를 해 봐서 아는데....'라고 할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과거 이명박씨가 줄곧 하던 화법이다. '내가 장사해봐서 아는데' '내가 배 만들어봐서 아는데' '내가 민주화운동해봐서 아는데' '내가 환경미화원 해봐서 아는데' '나도 한 때 노점상이었는데' '내가 한때 철거민이었는데' 등 시리즈도 매우 다양하다.
이명박씨가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들어 얘기하는 것이지만, '나 때는 말이야' 식으로 현 시대와 맞지 않는 옛날 이야기를 주구장창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시대착오적인 '꼰대'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고 공감을 거의 얻지 못했던 것이다.
김두일 대표는 "(윤석열 후보)자기 딴에는 수험생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공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인데 '자신이 9수를 했다'는 경험을 내일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에게 전달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라며 "사실은 지독한 악담"이라고 일갈했다.
김두일 대표는 "'내가 9수를 해 봐서 아는데 너희 힘든 거 안다. 하지만 별거 아니야' '너희도 9수를 해 봐....'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수험생들이 이렇게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김두일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지난 9월 자신의 모교인 충암고를 찾아 야구부원들에 했던 말도 상기시켰다. 윤석열 후보는 당시 부원들을 향해 "졸업해서 야구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고교야구 선수들은 프로구단에 빨리 지명받아 프로야구에 진출하는 것을 원하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80~90년대에는 대학 졸업 이후 프로에 진출하는 것이 거의 당연시됐는데, 이는 고등학교 때 지명받더라도 지명권이 유지되는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명권 유지' 제도가 폐지되면서 대학 진학할 경우 진로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되자, 고졸 이후 신인 드래프트에 뽑히길 간절히 희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 야구의 수준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고, 프로구단 입장에서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주로 고졸 선수들을 지명한다. 실제 2021년 KBO드래프트(2020년 9월에 시행)에 지명된 110명 중 대졸 선수는 19명에 불과했다.
윤석열 후보가 바뀐 세상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십 년 전 관점에서 야구부원들에게 말한 셈이다. 자신은 '격려, 덕담'이라 생각하고 말했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악담'으로 들리는 것이다.
김두일 대표는 "기본적으로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 없는데 사안에 대한 본질도 모르니 이런 엉뚱한 말이 나오는 것"이라며 "이를테면 이명박이 수해 피해자에게 위로를 한답시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꼬집었다. 김두일 대표는 "윤석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캠프도 참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라고 일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