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민주당 대표 출신인 김한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회 요직에 영입하기로 했다. 선대위 직속 기구인 '화합혁신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를 김한길 전 의원에 맡겨, 국민 화합과 사회 혁신을 이루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최측근인 권성동 사무총장은 18일 취재진에 '김한길 전 의원이 위원장으로 오는 게 맞나'는 질문에 "수락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김한길 전 의원 측도 언론에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선대위 합류를 역시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한길 전 의원이 윤석열 후보를 줄곧 돕고 있다는 이야기는 윤석열 후보의 검찰총장 사퇴 이후로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들은 지난 2013년부터 인연을 맺었다고 하며, 당시 윤석열 후보(당시 여주지청장)는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고 있었고 김한길 전 의원은 민주당 대표로 있었다.
이처럼 윤석열 후보는 김한길 전 의원에게 국민화합을 맡기겠다고 한다. 그런데 김한길 전 의원이 '당깨기 전문가' '정당 분쇄기' 등의 호칭으로 매우 유명한 것을 감안하면, 모순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줄곧 민주당계 정당에 몸담았던 김한길 전 의원은 당을 분열시키는 데 있어 상당한 수완을 수없이 보여준 바 있다. 당내 본인의 계파를 형성한 뒤, 기존의 당 지도부를 사정없이 흔들어 결국 당을 분열시키고 지지층에겐 염증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런 흔들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당권을 차지하는데만 골몰해왔다. 만약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탈당해서 새로운 당에 합류하곤 했다. 김한길 전 의원이 계파 형성이나 당내 싸움에는 능할지 모르나, 정작 외부 선거에 있어선 매우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다.
김한길 전 의원의 '당깨기' 대표적 사례는 참여정부 말기인 지난 2007년에 벌어졌던 일들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07년 2월 직전까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맡았던 그는 같은당 의원 22명과 집단탈당하며,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등을 돌렸다.
김한길 전 의원은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07년 5월 의원 19명과 함께 '중도개혁통합신당'이라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고, 그 당의 대표를 맡았다. 이어 그해 6월 27일 민주당(새천년민주당 후신)과 합당해 '중도통합민주당'을 결성했고 당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은 그해 8월 3일 김한길 전 의원은 본인의 계파 의원 18명과 중도통합민주당을 또 집단탈당했고, 이틀 뒤인 8월 5일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김한길 전 의원과 그를 따르던 의원들은 불과 6개월 사이에 탈당 2번과 합당 1번을 통해 4개의 당적(열린우리당→중도개혁통합신당→중도통합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을 보유하는 역대급 진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라 '도로민주당'이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었다.
이 과정에서 황당한 촌극까지 이어졌다. 당시 김한길 전 의원처럼 탈당과 입당을 반복하는 의원 중에는 자신이 도대체 어느 당적을 가졌는지조차 몰라 국회에 문의하거나, 입당하지도 않은 정당에 탈당계를 제출하는 어이없는 해프닝을 벌이기까지 했었다.
이처럼 김한길 전 의원이 주도한 '정치적 막장행위'는 시민들이 보인 반응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싸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힘을 크게 실어주는 행위였다. 17대 대선(이명박 당선) 대패 직후 김한길 전 의원은 정계은퇴 선언을 하면서 "오만과 독선의 노무현 프레임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데 책임을 느낀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 거듭 칼을 꽂았다.
김한길 전 의원은 이후 정계에 복귀해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2012년 민주통합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이해찬 전 대표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렸고, 당 최고위원에 임명됐다. 그런데 대선 직전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 국면을 주도하기 위해선 이해찬 당시 대표와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며 먼저 최고위원직을 던졌다.
결국 대선을 지휘해야할 지도부가 총사퇴하게 되면서, 당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불러왔다. 이는 정권교체 실패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김한길 전 의원은 이렇게 대선 직전까지 당을 흔드는 데 앞장선 전력이 있다.
김한길 전 의원은 지난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를 맡았을 당시, 자신의 계파에 속한 의원들과 호남을 지역구로 두고 있던 중진 정치인(주승용·박주선·김동철 전 의원 등)들, 조경태 의원 등과 함께 당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이는 결국 자기 계파의 공천권 확보와 당내 요직 확보를 위한 묻지마 흔들기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결국 그해 말 안철수 대표를 따라 옛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바꾼다.
그런 수많은 행적들 때문에 김한길 전 의원에겐 '당깨기 전문가' '정당 브레이커' '정당 분쇄기' 등의 호칭이 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몸담았던 정당이 늘 '풍비박산'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철수 대표가 이끌었던 옛 국민의당의 경우에도 합당에 다시 분당 등을 거치며 사라진지 오래라서다.
그렇게 내부 싸움엔 능한 김한길 전 의원은 자신이 당대표를 맡았을 당시(2013년 봄~2014년 여름)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늘 끌려다니며, 무기력의 극치를 보여줬었다.
김한길 전 의원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맡았을 당시였던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돌려막기 전략공천(기동민-권은희)'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일으키며 당을 대참패로 몰고 갔다.
전체 15석 중 불과 4석(호남권 3석, 수도권 1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고, 호남에서까지 의석(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전남 순천·곡성)을 빼앗기는 일까지 있었다. 이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힘을 빼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었다.
이처럼 김한길 전 의원이 당대표를 맡을 당시엔, 민주당이 전두환 정권 당시 관제야당이었던 민한당(민주한국당) 같았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던 이유다. 그가 민주당계 정당의 오랜 흑역사를 만드는 데 있어,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희대의 '당깨기 전문가' '정당 분쇄기'로 불리며 분열의 상징으로 꼽히는 김한길 전 의원을 '국민화합의 상징'으로 영입하겠다는 것이 '정치신인'인 윤석열 후보의 구상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유력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 최근 윤석열 후보 지지선언을 한 박주선·김동철 전 의원도 이른바 흘러간 '정치 철새'로 호칭할 수 있다. 언론들은 윤석열 후보에게 '정치 신인'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지만, 정작 그 주변에는 '올드 보이'들만 줄줄이 따라오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