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5일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며 핵심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비워둔 채 선대위 실무 조직을 출범시켰다. 지난 5일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20일만에 선대위가 출범했지만, 총괄선대위원장이 빠지면서 반쪽 선대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이준석 대표는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었다.
윤석열 후보측에서 영입하려는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른바 ‘킹메이커’로 불리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다. 20여 일을 두고 지리한 협상과 담판이 오갔고, 전날 만찬을 통해 극적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였지만 끝내 합류는 불발됐다. 전날 두 사람 간 담판이 무산된 뒤 이날도 신경전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여진이 이어졌다. 윤 후보는 “김종인 박사님 얘기 더 안하겠다”고 했고, 김 전 위원장은 윤 후보 측이 최후통첩을 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주접 떤다”는 표현까지 쓰며 “오늘로써 끝을 내면 잘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결별은 아니더라도 당분간 두 사람이 손잡을 일은 없어보인다.
선대위 구성을 둘러싼 윤 후보와 김종인 전 위원장의 지루한 힘겨루기 과정은 국민의힘 지지층에 피로감만 높였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는 경선 직후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이 급등,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두자릿수까지 차이를 벌였다가 최근 조사에서 지지율 차이가 좁혀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결과적으로 김 전 위원장은 존재감을 높였고, 윤 후보는 김 전 위원장 하나 설득하지 못했다는 ‘정치적 미숙’만 드러낸 꼴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와 달리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 대립속에 철저히 소외돤 사람은 이준석 대표다. 선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당 대표로써 전혀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이준석 대표는 지난 6월 11일 당대표 취임부터 모든 것을 대선승리에 맞춰왔고, 어느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중심으로 당대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밝혀온터라 김종인 전 위원장과 한묶음으로 간주됐지만, 어디까지나 당 대표였다. 그러나 경선 이후 선대위 출범까지 윤 후보나 캠프는 이 대표를 거의 ‘패싱(무시)’ 했다고 볼 수 있다.
보수정당 최초 0선의 30대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었고, 기대에 부응하듯 이 대표 등장 이후 국민의힘에 2030세대의 지지와 입당이 뒤따랐다. 이른바 ‘이준석 효과’였다. 보수정당에 2030세대가 연결된 것은 오로지 이준석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젠더갈등을 통한 분노한 이대남(20대 남성)의 결집이라는 논란은 부차적이다. 그보다는 이준석 대표 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이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 중 가장 최강이라는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겨우 3.6% 차이로 신승했다는 점을 들면서, 앞으로는 지역별 대결보다는 세대별 대결이며, (기존에 없던) 2030세대의 지지를 받게 되면 대선국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점은 자신의 효용성을 극대화한 발언이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공감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준석 대표는 윤 후보가 확정된 다음날 당대표 선거 전 공약한대로 윤 후보에게 이른바 금낭묘계(錦囊妙計)라는 ‘비단주머니’를 선물했다. 이 대표의 비단주머니는 <삼국지>에 나오는 전략가 제갈공명의 고사에 나온 말로 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묘안이 담긴 주머니를 의미한다. 윤 후보에 제기될 의혹이나 문제들에 대해 국민의힘 당 지도부 차원에서 대비책 등의 선거 전략을 마련해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 마련한 1호 비단주머니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댓글 공세를 차단하는 '크라켄 프로그램'이다. 두번째 비단주머니는 이른바 'AI 윤석열'을 제시한 바 있다. 세번째 비단주머니는 청년층을 겨냥한 특화된 전략으로 기존과는 달리 오프라인 활동에 방점을 둔 ‘청년소통’ 전략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보면 이 대표는 2030세대를 결집, 대선득표에 동원하는 것을 자신만의 ‘금낭묘계’로 준비중이었다.
이 대표의 대선전략은 어디까지나 김종인 전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미 두 사람은 지난 4.7 서울부산재보궐선거에서 합을 맞추었고, 그 효과를 입증했다. 이 대표 자신이 김 전 위원장을 정치적 ‘멘토’로 여길만큼 두 사람간의 신뢰는 단단했다.
그러나 윤 후보측은 김종인 전 위원장과 함께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를 영입, 견제구도로 선대위를 꾸리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이 반발, 합류는 물건너 갔지만, 김 전 위원장과 함께 이 대표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 조차 감수한 조치였다. 왜 그랬을까?
일차적으로는 경선 직후 컨벤션 효과로 윤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 한 것에 있다. 여기에 정권재창출(정권유지)보다 높은 정권교체 지지율, 정당 지지율에서도 국민의힘이 민주당 보다 높은 이른바 ‘트리플 강세’ 효과로 이미 ‘대선승리’라는 자신감 속에 매머드 선대위는 당연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킹메이커’이지만 ‘김종인 효과’가 이번 대선에서 통할 것인가라는 회의감이다. 이미 박근혜와 문재인 두 번의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만큼 김 전 위원장 전략은 다 노출됐다.
결국은 국민의힘 내부 권력싸움이라 할 수 있다. 대선에서 승리하든 안하든, 대선 이후 곧바로 지방선거가 있다. 김 전 위원장과 이 대표가 대선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면 대선 이후 발언권이 강해진다. 경선과정에서 윤 후보에게 실망한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까지 가세하면 윤 캠프에 맞설만한 세력이다. 윤 후보와 캠프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이 대표의 역할이다. 윤 후보에 의해 김 전 위원장이 배제되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설 일은 없다. 실제로 지난 20일 윤 후보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30은 이 대표에게 일임하겠다”고 말하자 “내 역할이 아니다”고 차갑게 선을 그었다.
이 대표가 손을 놓은 2030 공략은 결국은 윤 후보 몫으로 돌아갔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후보 직속 기구로 청년위원회를 다음주 설치하고 윤 후보가 직접 위원장을 맡는 안을 검토 중이다. 청년위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청년들을 영입할 예정이며 선대위 내부에 설치될 청년본부가 청년위를 뒷받침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치를 전혀 해보지 않은 청년들을 집중적으로 영입할 예정”이라며 “청년 정치인이 아니라 일반 청년의 시각에서 후보가 직접 고민하고 소통하는 조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청년위원회 위원장에 검사로만 26년, 60대 정치신인이자 청년들과 소통이 없었던 윤석열 후보가 맡는다는 것, 이게 바로 윤석열 선대위의 현실이고 이 대표의 입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애초에 김종인 전 위원장이 선대위에 배제된다고 하자 윤석열 후보에게 우호적인 진중권 전 교수 조차 페이스북에 "(김종인 합류는) 무산된 듯. 김병준, 김한길 데려다가 뭘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자기들만의 힘으로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후보의 판단이라면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금 보면 이 대표의 비단주머니는 너무 일찍 꺼내들었다. 물론 이 대표 입장에서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당연히 ‘원톱’으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 김 전 위원장이 배제될 경우라면 비단주머니 1호는 당연히 김종인 전 위원장을 전제로 한 선대위 ‘원팀’ 구성이어야 했고, 두 번째는 ‘2030세대’ 확보에 관한 전략이었어야 했다. 물론 이 조차도 의미는 없다. 이미 윤 후보와 캠프측에 의해 철저히 ‘패싱’당해 온 이 대표이기에 ‘비단주머니’ 안의 내용이 뭐가 됐든 무시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 후보와 캠프의 이 대표 ‘무시’ 전략에 국민의힘에 가장 강력한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마저 쓴소리를 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25일자 “尹 후보는 ‘72세 선대위’로 국민에게 무얼 보여주겠다는 건가”라는 사설에서 선대위 주요 구성원인 김종인, 김병준, 김한길 세 사람의 평균연령은 72세로 “세 사람 모두 미래보다는 과거 색채가 강한 인물로 국민이 새로운 정치나 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젊은 층 표심을 잡겠다면서 이들을 대변할 젊은 인재는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저출산 고령화, 국제정치의 급변에 대비할 과학·경제·안보·사회 전문가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가 강조하고자 한 내용은 사설의 맨 마지막 내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1년 대선을 앞두고 26세 청년 벤처 사업가였던 이준석을 비대위원으로 영입했다. 그는 지금 당의 대표로 성장했다. 이준석의 등장으로 국민의힘에도 새 기풍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런 선대위 구성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행태는 고루하고 낡은 정당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조선일보의 ‘비딘주머니’는 세대교체, 젊은층(2030), 그리고 이준석 활용론이다. 이는 달리말하면 윤석열 캠프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반문재인(反文)과 전통적인 지지층에 안주하는 윤 후보와 캠프측에서 이런 조선일보의 경고에 귀를 기우릴 것 같지는 않다. 이미 대선에서 승리 한 것처럼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는 윤 후보를 위한 ‘비단주머니’를 20개나 준비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지금의 국면을 반전시킬 비단주머니가 있는지 더 지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