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전두환씨가 사망한 23일, 숨진 채 발견된 5·18 유공자 고 이광영씨의 사연이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고인은 5·18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시민들 구호활동을 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고, 오랜 세월을 고통 속에서 지내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5일 밤 광주 북구 구호전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재명 후보는 무릎을 꿇고 분향한 뒤 유족들의 손을 꼭 잡으며 위로했다. 이재명 후보는 조문을 마치고 5월 관계자 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재명 후보는 취재진에게 "가해자는 평생을 처벌받지도 않고 호사를 누리다가 천수를 다하고 갔는데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가지 않아야 할 때 떠난 것 같다"며 "오히려 피해자가 '죄송하다', '사과한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토로했다.
이재명 후보는 "역사와 진실의 법정에는 시효가 없다고 한다.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이 지켜지게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시는 이런 일들을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세상 꼭 만들면 좋겠다. 죄송하다"고 전했다.
1953년 전남 강진에서 출생한 고 이광영씨는 군복무를 마치고 전남의 한 사찰에서 승려로 생활했다. 그는 80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승려 신분으로 석가탄신일 준비를 위해 광주를 찾았는데,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후 적십자 대원에 참여했다.
이광영씨는 부상자를 실어 나르고, 의약품과 혈액을 모으는 활동을 하던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허리를 맞았다. 그는 수술을 받았지만 총탄 파편이 몸속에 그대로 남아 하반신이 마비됐으며, 진통제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생활이 계속됐다.
고인은 고통 속에서도 휠체어를 탄 채 1989년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를 비롯해 1995년 검찰 조사, 2019년 5월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재판 등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군의 광주 도심 헬기사격을 일관되게 증언해왔다.
고인은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자 규명이 더딘 상황을 원통해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23일 고향인 강진군 군동면의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유서에서 "나의 가족에게. 어머니께 죄송하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친구와 사회에 미안하다.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나의 이 각오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 아버지께 가고 싶다"고 남겼다.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의 주범들은 지금껏 누구도 피해자와 유족 들에게 사과하고 있지 않다. 늘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 전두환씨는 말할 것도 없고, 노태우씨도 아들을 통해 대리로 입장을 밝혔을 뿐 생전 자신의 입으로 사죄하지 않았다.
이들의 측근인 '하나회' 출신 군인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사죄 한번 하지 않고 있으며,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며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늦었지만 최소한의 단죄를 위해서라도 전두환 정권 피해자들이 외치는 ‘전두환 등 신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는 상황이다.
한편 고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진행된다. 26일 발인 뒤 광주 영락공원을 거쳐 광주 5.18민주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