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지난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툭하면 나오는 말이 "조국의 강을 건너야 한다"라는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180석이나 얻은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비토 여론이 지난 1년 사이에 갑자기 커진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논란들 때문이고, 그와 선을 확실히 긋지 못했기에 패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지난해 재보궐선거와 조국 전 장관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조국 전 장관은 지난해 총선 반년 전인 2019년 10월에 사퇴한 만큼, 올해 재보궐선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조국 전 장관으로 인해 민심이 나빠졌다면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했어야 정상임에도 반대로 '180석'이라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갖고도 결국 1년만에 초유의 대참패를 당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그 사이에 엄청난 '무능력'을 보여줬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임에도, 이미 만신창이가 된 조국 전 장관에게 역겨울 정도로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꼴이다. 그럼에도 또 '조국 탓'을 들먹이며 언론들에 먹잇감을 던져주는 의원들의 한심한 모습들이 또 튀어나오고 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우리한테 주어진 과제 중에 큰 것은 '조국의 강'을 확실히 건넜냐일 것"이라며 "그 강을 건너지 않고 과연 어떻게 중도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별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태섭·김해영 전 의원 등과 함께 대표적 당내 '반개혁파'로 꼽혔던 조응천 의원은 "조국 사태는 피할 수 없는 정말 큰 강"이라며 "거기에 대해 어떻게 할 건지 우리가 확실히 마음을 정하고 있어야 된다"고까지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직후 이재명 대선후보와 윤건영 의원 등에 대한 공개질문으로도 이어졌다.
앞서도 민주당 내부에선 윤석열 검찰과 수구언론의 '조국 사냥' 논리에 적극 호응하는 이들을 우대해주는 듯한 행위까지 벌이며 구설수에 올랐다. 수구언론들의 논리를 '민주당에 대한 쓴소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지난 7월 민주당 대선경선기획단(단장 강훈식 의원)은 국민면접관의 패널로 김경율·진중권·권경애 등 '조국 흑서'의 저자들을 선정했거나 하려다가 황급히 취소하는 황당한 행태를 보였다. 이들은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들이 매일같이 받아쓰기해주며 키워주는 스피커들로 꼽힌다.
또 기획단이 면접관으로 위촉했다가 결국 본인이 고사했던 유인태 전 의원의 경우에도 수구언론에 먹잇감만 던져주는 '반개혁' 인사로 꼽힌다. 그럼에도 김해영 전 의원만큼은 면접관으로 앉혔다.
민심이반 명백한 원인과 책임자들 지워버린, '초선 5적' 기자회견
결국 민주당의 적잖은 의원들이 지난 1년여간의 민심이반은 '조국 탓'이라고 우기고 있는 셈인데, 정작 이는 자신들의 '180석 무능'을 반성하고 혁신하기는커녕 엉뚱한 곳에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한 이유는 '개헌 빼고 다할 수 있는' 180석 가지고도 아무 것도 안했다는 점이 명백한 핵심이라는 점이다.
'윤석열의 난'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민주당 의원 대부분은 몸사리기에만 바빴고, 현안에 대한 팩트체크조차 하지 않으며 언론의 눈치만 보며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다. 또 '윤석열의 난'을 진압하려고 검찰·언론·야당의 합동공세와 싸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도리어 나무라던 이들도 적잖았다.
이낙연 민주당 지도부는 올해 초까지는 검찰·언론개혁 법안들 통과시키겠다고 큰소리쳤으나, 개혁법안들은 여전히 통과조차 시키지 못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는'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줬는데, 도대체 하는 게 뭐냐라는 성토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민심이반이 일어난 데는 부동산 문제 대처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나 지난해 봄 효용이 명백히 입증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거부하고 효과도 지극히 떨어지는 '선별 지급'으로 일관하며 사회적 갈등만 키우고 코로나로 인한 피해층들을 외면한 점, 그리고 '시대착오적 페미니즘' 우대에 대한 젊은 층의 거센 불만이 커지고 있음에도 소통하기는커녕 방관하다시피 한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은 분명 직전까지 당대표를 맡았고 재보궐선거 선대위원장까지 맡았던 이낙연 전 대표를 필두로 한 그 지도부에게 따져물어야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나 뜬금없이 '조국 탓'이 나오게 된 데는, 재보궐선거 참패 직후 2030 의원 5인방의 기자회견으로부터 시작됐다.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등 의원 5명은 “조국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한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는 기자회견을 한다. 이들이 재보궐선거와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조국 전 장관에게 민심이반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조중동과 같은 수구언론들에게 물타기할 먹잇감을 던져줬고 이미 사라진 '조국의 강'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이들에겐 '초선 5적'이라는 멸칭이 붙었고, 당내에도 거센 소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이들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했던 지지층은 격노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들이 민심이반의 책임소재를 '이낙연 지도부' 혹은 '180석 민주당의 무능'이라고 명시하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책임전가함에 따라, 수구언론들이 계속 유용하게 써먹을 '프레임'만 던져준 꼴이 됐고 이를 다시 뒤집기도 어렵게 된 셈이다.
'호감율' 민주당 50 vs 국힘 18, '정권교체 불가능' 수치에서 1년도 안 돼 '대역전'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에서 민주당을 향해 "나를 밟고 전진하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을 발판으로 삼아 아직 하지 못한 '사회개혁' 과제들을 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언론에 위축돼 이런 개혁과제에는 목소리조차 못 내는 의원들이 이미 만신창이가 된 조국 전 장관을 더욱 '짓밟는' 치졸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민심이반의 책임이 온전히 '180석 민주당'의 무능 탓인지는 '한국갤럽' 여론조사 상에서도 드러난다. 한참 윤석열 검찰의 '조국 일가 사냥'이 벌어지고 있을 당시인 2019년 10월 여론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호감율은 44%,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호감율은 28%였다.
총선이 끝난 이후인 지난해 6월 4주차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호감율은 50%인 반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호감율은 불과 18%에 그치며 더욱 벌어졌다. 이 정도면 정권교체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소위 '조국의 강'은 완전히 건넌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후에 급격하게 좁혀지기 시작하면서 지난 4월 재보궐선거 직후(4월 3주차)엔 민주당 호감율은 30%, 국민의힘 호감율은 34%로 도리어 역전됐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이낙연 대표 체제를 거치면서 모든 점수를 까먹은 것이다.
7월 2주차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33%, 국민의힘 38%로 여전히 국민의힘이 앞서고 있다. 그 1년 사이에 정권교체론과 당에 대한 비호감율을 급증시켜놓고는 책임을 엉뚱한 조국 전 장관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 정경심 교수측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했던 장경욱 동양대 교수는 29일 페이스북에서 "잊을 만하면 '조국의 강을 건너라'는 정치인들의 말을 듣는다"며 "지난 2년간 우리는 그 강에 많은 도적 떼와 협잡꾼들이 발호하는 것을 목도했다"라고 지적했다.
장경욱 교수는 "조국의 강을 건너려면 그 강을 가로막아 선 법비, 언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라며 "그러니 진정성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묵묵히 뗏목 고치는 사람들의 등을 떠미는 대신, 먼저 강의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