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과거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기소했던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윤석열 후보의 명성을 이렇게 키운 사건이 바로 지난 2013년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이었으며, 이어진 국정감사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을 하면서, 윤석열 후보의 소신이나 원칙 등은 오래 전에 사라졌음을 인증한 셈이다. 지난 25일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는 부산‧경남 의원들과 오찬자리를 함께 했는데 이 자리엔 김용판 의원(대구 달서구병)도 포함돼 있었다.
윤석열 후보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고, 이에 김용판 의원은 "정권교체에 힘을 보태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앞서 지난 4월 김용판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후보를 향해 "진정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최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은 사과할 일에 대해선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 과물탄개(過勿憚改)의 전환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자신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지난 2013년 6월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당시 특별수사팀장은 윤석열 후보였다. 당시 특별수사팀은 김용판 의원에게 형법상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댓글 작업에 사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분석 과정에서 대선 관련 키워드를 78개에서 4개로 줄이도록 서울 수서경찰서에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이런 '수사 방해' 외압을 폭로했던 이는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다.
또 대선을 불과 3일 앞둔 시점에 '국정원 여직원이 정치 관련 댓글을 작성한 흔적이 없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하도록 한 점도 당시 혐의에 적용했다. 이는 박근혜-문재인 당시 대선후보 간 TV토론회가 있던 직후 벌어진 상황이기도 했다.
당시 경찰의 발표와는 반대로 국정원 직원은 다중의 아이디를 통해 대선 관련 글에 개입한 흔적이 나타났다. 그러나 원세훈 전 원장과 달리 김용판 의원은 지난 2015년 1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당시 '국정원 댓글수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 정권과 당시 정권에 적극 협력하던 '조선일보' 등은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결국 채동욱 전 총장을 이른바 '찍어내기'하다시피하며 몰아냈다.
그런 어수선한 와중에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놓지 않던 윤석열 후보는 크게 주목받았던 것이며, 정권의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얻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그해 국정감사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은, 훗날 그가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는 이젠 정작 자신의 이미지를 쌓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정원 댓글수사' 건을 이제는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에선 윤석열 후보를 향해 "최소한의 직업적 양심마저 내려놓으며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박성준 선대위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윤석열 후보가 김용판 의원에 사과한 데 대해 "자신이 수사 검사로서 직무를 게을리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윤석열 후보는 지난 7월 대구를 방문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수사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했다"며 "이러다가는 국정농단 사건 주역들에게도 사과할 판"이라고 힐난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강골검사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며 "표를 얻기 위해 원칙도, 소신도 내팽개치는 기회주의적인 윤 후보의 모습에 국민은 참담한 마음"이라고 일갈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대통령 후보의 자리는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선공후사의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며 "원칙도, 소신도 없이 자신의 유불리만 따지는 윤석열 후보의 본모습에 국민의 마음이 무겁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