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은 기자 ] =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는 올초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고소인(전직 비서)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취지의 직권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인권위가 내놓은 '성희롱 근거'에 대한 자료는 없었다. 즉 고소인의 일방적 진술과 '고소인으로부터 들었다'는 참고인의 진술만을 토대로 발표한 것이었다.
국가기관인 인권위의 발표로 인해 어떠한 구체적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는 고소인측(김재련 변호사)이나 여성단체 그리고 언론 등은 박원순 전 시장을 '성범죄자'로 거듭 낙인찍었다. 구체성이 결여된 인권위의 발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박원순 전 시장의 유족 측은 인권위를 상대로 '권고 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박원순 전 시장의 성희롱 결정의 근거가 된 자료들을 제출하라'고 인권위에 요구했다. 즉 구체적인 법리를 다투기 위해 요구한 것임에도 인권위는 '2차 가해'라며 회피했다. 외부에 공개되는 자료조차 아님에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뉴시스' 등에 따르면 3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종환 부장판사)는 박원순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 여사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권고 결정 취소' 청구 소송 변론에서 인권위에 "이번 사건의 주문과 사실 인정을 내린 근거들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인권위 결정문에 언급되는 제3자의 진술, 포렌식 결과, 문자메시지 내용 등이다.
그러나 인권위 측 대리인은 "사건 당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심각했다. 지금도 이미 실명까지 노출돼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미 문서제출은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회피했다. 인권위가 발표한 박원순 전 시장의 '1차 가해'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내라는 것인데, '2차 가해' 주문을 들이밀며 회피하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인권위 측에서도 주문을 내리게 된 근거를 예비적으로는 설명해야할 것 같다"며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은 공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즉 인권위가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난희씨 측 대리인은 "시정 권고 결정 사건에서 지금 이 사건과 유사한 사례에 대해 원고적격을 인정한 대법원과 행정법원의 판례가 있다. 성희롱 행위자가 원고 적격이 인정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리인은 재판을 마치고 나서 "인권위가 회사에 소속 근로자가 성희롱을 했으니 인권교육을 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근로자가 행정소송을 냈고 원고적격을 인정받았으며, 성희롱 인정되지 않으니 취소하라는 판단이 이미 나왔다"고 강조했다. 강난희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권고 결정 취소 소송의 3차 변론은 내년 1월 18일 오전에 진행될 예정이다.
인권위의 이런 회피에 대해 전우용 역사학자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박원순 전 시장이 성희롱을 했다고 판단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법원의 요구를 국가인권위원회가 거부했다"며 "법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는 기구가 '초법적 기구'다. 법치국가는 '초법적 기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다.
인권위(당시 위원장 최영애)는 지난 1월 25일 전원위원회에서 박원순 전 시장이 고소인에게 수년 동안 음란문자 등을 보낸 점과 고소인의 네일아트한 손가락과 손을 만진 점이 성희롱으로 인정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인정한 구체적인 자료나 근거는 공개하지 않아 큰 의구심을 자아낸 바 있는데, 법원의 요구조차 거부하며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