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 시절,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보다 훨씬 더 강제력이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를 무력화시킬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박 대통령이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하는 법안 발의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자료를 보면, 박 대통령은 1998년 12월 당시 안상수 의원(전 인천시장)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한나라당 동료 의원 33명과 공동발의했다. 당시 발의된 개정안 제98조의 2를 보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되거나 법률의 위임범위를 일탈한다는 등의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의견이 제시된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박 대통령 등 의원 34명은 개정안을 제안하며 "국회가 법률로 행정부에 위임한 행정입법이 많아지고,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국회가 법률의 입법정신에 따라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를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지난달 29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는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를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998년 개정안이 '행정부는 국회 의견을 따라야 한다'라고 국회 의견에 대한 정부의 수용 의무를 명확하게 강제하고 있는 데 반해, 이번 개정안은 정부의 수용 의무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법률안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수정·변경 요구를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라는 내용을 두고 새누리당은 "행정부가 국회의 수정 등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도 처리지만, 수용하지 않겠다고 수용거부 방침을 밝히는 것도 처리"라며 "강제성이 없다"는 설명을 내놓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의 요구를 정부가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의견을 내면, 정부는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강제한다는 점에서 1998년 개정안이 현행 국회법 개정안보다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행정부가 국회의 요구대로 행정입법을 수정·변경하지 않는 것도 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처리' 행위로 볼 수 있는 만큼 강제력이 크지 않다"며 "국회가 행정입법에 대해 법률의 취지에 반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그 의견을 행정부가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 1998년 개정안이 훨씬 더 강제력이 있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두 개정안 모두 처벌 조항이나 제재 조항이 없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강제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1998년 개정안이 국회 의견에 대한 정부의 수용 의무를 강화한 만큼 이번 개정안보다 강제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의원 시절에는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놓고, 그보다 강제력이 약한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1998년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로, 당시 박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박 대통령과 함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모두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로, 여야의 정권 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행정부를 통제하기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1999년 8월 소관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에 회부됐으나, 2000년 5월 15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