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 5일 삼성 부회장 이재용 항소심 선고 결과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재판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다만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62)와 뇌물수수를 공모했고, 국정농단의 주범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으로 못 박았다. 두 사람이 공모해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검이 앞서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증거로 제출한 이 부회장의 1심 판결문에는 뇌물수수액이 89억원으로 기재됐지만, 이날 열린 항소심에서는 절반 이상이 깎여 36억원만 인정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줬다는 뇌물은 36억여 원으로 액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된다. 현행법상 1억 원 이상의 뇌물을 받으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한다. 또 이 부회장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으로부터 경영권 승계 현안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을 받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게다가 이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는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수많은 혐의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박 전 대통령 국선변호인단은 오는 20일 재개될 예정인 재판에서 이 같은 내용의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을 유리한 증거로 낼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관련된 혐의 말고도 미르, K스포츠 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과 현대자동차를 압박해 최순실 실소유 광고업체에 일감을 몰아 주도록 하는 등 직권남용, 강요 혐의, 공무상 비밀 누설 등 10개가 넘는 혐의를 받고 있다. 다만 이 부회장 재판부는 이번 삼성 뇌물 사건을 ‘요구형 뇌물 사건’으로 규정하며 사실상 박 전 대통령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삼성그룹 경영진을 겁박하고, 최씨는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했다”며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은 헌법상 부여받은 책무를 방기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최씨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최 씨에게는 광고수주 강요, KT 인사 개입 등 삼성 뇌물 수수 외에도 20개 가까운 혐의가 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은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라고 판시했다. 최씨 재판은 이미 심리가 끝나 이 부회장 선고 결과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 최씨 측이 재판부에 변론재개를 요청해 이 부회장 판결문을 증거로 제출할 수 있지만, 오는 13일 선고를 앞둔 재판부가 변론을 재개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또 권력을 배경으로 뇌물을 강요한 경우, 돈을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을 더욱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밝혀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책임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는 재판부에 변론재개를 신청하거나 이 부회장 판결문을 참고자료로 제출할지 검토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이 변호사는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과 최씨의 뇌물수수 사건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며 “판결선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만,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뇌물죄의 공범이라는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