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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개봉 영화 ‘소수의견’..
문화

우여곡절 끝 개봉 영화 ‘소수의견’

허 엽 기자 입력 2015/06/23 12:01

우여곡절 끝 개봉 영화 ‘소수의견’




서울의 한 산동네 재개발 현장에서 농성 중인 철거민에 대해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된다.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에서, 철거민의 16살 아들과 21살 의경이 숨진다. 검찰은 철거민과 철거용역을 각각 살해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언뜻 앞뒤가 맞는다. 가해자들은 처벌받고, 정의는 실현되는 듯 보일 테니.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은 이처럼 기본 설정에서 2009년 1월의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6년 전 용산참사 때도 경찰의 철거민 농성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영화 원작은 용산참사에서 모티브를 딴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이다. 그러나 영화는 용산참사에 대한 단순한 ‘보고’ 또는 ‘고발’이 아니다. 경찰의 진압작전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반대로 철거민이 공권력에 도전한 ‘폭도’였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기소된 철거민의 재판 과정에 초점을 맞춘 법정을 통해 감독은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그 결과 2013년 <변호인>(감독 양우석) 이후 가장 탄탄하고 흥

미진진한 법정 영화 한 편이 나오게 됐다.

‘용산참사 모티브’ 손아람 소설 원작
재개발 현장·철거민 강제진압·사망…
기본 설정에서 참사 떠올라
살해혐의로 기소된 철거민 재판 초점
‘대한민국 맨얼굴’ 드러내
김성제 감독 “참사 하나만이 아닌
우리들 사는 풍경에 대한 해석”




 지방대 출신에 제대로 된 경력도 없는 2년차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은 철거민 농성 현장에서 의경을 죽인 혐의로 기소된 ‘박재호’(이경영)의 변론을 맡게 된다. 박재호는 윤 변호사한테 “아들을 죽인 건 철거깡패가 아니라 경찰이고 나는 아들을 구하려 했을 뿐”이라면서 무죄를 주장한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신문사 사회부 기자 ‘공수경’(김옥빈)은 검찰이 뭔가 숨기고 있는 정황을 윤 변호사한테 보여준다. 담당 검사 ‘홍재덕’(김의성)은 윤 변호사에게 경찰의 수사기록조차 공개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가자”고 어른다.


윤 변호사는 뭔가 있음을 직감하고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지금은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선배 ‘장대석’(유해진)한테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자고 조른다. 두 변호사는 진압작전 중에 일어난 사망 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청구금액 100원의 배상청구소송을 따로 제기하고, 철거민 박재호를 위해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법정 드라마가 펼쳐진다. 결정적인 증인을 어렵게 설득해 증언대에 세우지만 검찰 쪽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또다른 결정적 증거는 검찰한테 빼앗긴다. 대형 법무법인이 끼어드는 등 사방에서 갖가지 훼방을 놓는다. 과연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마지막 재판장의 선고를 향한다.


영화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재현해낸다. 경찰은 소년의 죽음에 대한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검찰은 국가 권위를 위해 소년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감추는 데 주력한다. 뒤에 청와대가 버티고 있다는 정황을 드러내고, 야당은 여기서도 무력하다.


현실 묘사는 여러 배우들의 호연과 성실한 세부 묘사로 튼튼히 뒷받침된다. 장 변호사를 연기한 유해진은 학생운동 시절의 추억을 가슴 한쪽 구석에 품고 있는 ‘중년 남자’를 훌륭히 표현한다. 올림픽도로를 달리면서 “나라님이 깔아주신 길”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전두환 독재에 저항했던 기억을 더듬는 자조적 몸짓이다. 기자인 김옥빈이 취재 중에 경찰에 두들겨 맞고, 신문사 사회부장이랑 아웅다웅대는 모습은 비교적 사실적이다. 국민참여재판의 재판장(권해효)은 시종일관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법조계 주변에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을 듯하다. 이런 영화는 판사가 노골적으로 검사 편을 드는 모습을 보이기 쉬운데, 영화는 영특하게 이런 함정을 잘 피했다. 특히 악역을 맡은 김의성은 “국가에 봉사”한다는 명분으로 홀로 윤계상·유해진·이경영·김옥빈 등 상대편 전체와 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에너지를 뿜어낸다.


영화는 또 두 아버지를 마주보게 하는 장면을 연출해 진정한 가해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숨진 의경의 아버지는 법정 증인석에 앉고, 숨진 중학생의 아버지인 철거민은 피고석에서 이를 지켜본다. 처벌을 원하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의경 아버지는 즉답을 피하면서 말한다. “뭔가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철거민은 아버지로서 뜨거운 눈물을 떨군다. 누가 이들에게서 아들을 앗아갔는가, 관객은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판 결과에서 소

수의견과 다수의견이 뒤바뀌는 상황을 관객은 지켜볼 것이다.

김성제 감독은 18일 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력있는 법정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고, 그 안에 지금 여기 우리 시대의 공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또 감독은 단순히 용산참사의 재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영화도 ‘실제 사건이 아니고, 실존 인물도 아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감독은 “용산참사 하나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사는 풍경에 대한 영화적 해석으로 봐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감독은 현실의 해석을 위해 영화의 밀도를 높였겠지만, 그만큼 많은 이야기에 호흡이 빠르다고 느낄 관객도 있을 듯하다.


국가와 검찰을 비판한 탓일까. 영화는 개봉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영화 제작은 2013년 6월에 마무리됐지만, 배급을 맡았던 씨제이(CJ) 쪽은 2년이 다 되도록 개봉을 미뤄왔다. 결국 씨제이는 지난달 배급에서 최종적으로 손을 뗐고, ㈜시네마서비스가 새로 나선 덕분에 이번 개봉이 가능하게 됐다. 영화계에선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이 1000억원이 넘는 조세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씨제이 쪽이 현 정부에 밉보이지 않으려 배급을 미뤄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성제 감독은 “2년 만에 개봉을 하게 됐다. 영화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24일 개봉. 15살 이상 관람.


㈜시네마서비스 제공

 


‘2009년 1월 어느 아침’을 잊지 않기 위하여

‘용산참사’ 소설·영화·전시 잇따라

 “여기, 사람이 있다!”


이명박 정부 2년차에 접어든 2009년 1월의 어느날 아침, 경찰이 농성장 강제진압에 돌입하자 망루에선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작전은 강행됐다. 농성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화염 속에서 숨졌다. 용산참사,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사업 현장에서 벌어진 참극이다. 그렇게 무리한 진압작전에 나서야 했을까. 상식적인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현장의 다른 철거민 7명을 기소했고, 법원의 명령에도 3000쪽 넘는 분량의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하는 석연찮은 모습을 보였다. 기소된 철거민들은 1년쯤 지난 뒤 대법원에서 징역 4~5년의 형이 확정됐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에 대해선 어떠한 사법적 판단도 내려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2013년 10월 당시 진압작전을 진두지휘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했다.


문화계는 ‘현실의 고통’을 지나치지 못했다. 손아람 작가는 2010년 소설 <소수의견>(왼쪽 사진)을 통해 철거민 농성과 경찰진압 문제를 다뤘다.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했지만, 소설은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경찰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대신 철거민의 어린 아들이 숨지는 것으로 바꿨고, 소설의 주요 무대는 사건이 벌어진 농성현장이 아닌 법정이다. 5명의 경찰이 소년을 집단폭행했지만 검찰은 1명만 기소하는 것으로 했다. 현실의 용산에선 국민참여재판이 무산됐지만, 소설에선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법정 공방이 펼쳐진다. 손 작가는 “소설은 용산참사의 실제와 다른 점이 많다. 우리나라 사법 체계가 공정한지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며 “소설을 용산참사 이야기라고 한다면 아직도 진실 규명에 목말라하시는 유족들에게 오히려 미안한 일”이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진상’에 대한 추적은 201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감독 김일란·홍지유·오른쪽)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됐다. 영화는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진술 등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꼼꼼히 따졌다. 이를테면 2009년 당시 경찰특공대원들은 문제의 건물 옥상에 올라간 뒤 두 개의 문을 맞닥뜨렸다. 하나는 철거민들이 옥상에 설치한 망루로 통하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창고로 향하는 문이다. 현장 상황을 잘 몰랐던 특공대원들은 엉뚱하게 창고로 연결된 문으로 들어갔다. 특공대원조차 망루로 가는 방법을 모른 채 투입됐다는 얘기로, 이들조차 무리한 진압작전의 희생양일 수 있다고 지적한 셈이다. 영화는 시민들의 정성을 모아 겨우 개봉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문화계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술인들은 지난 1월 용산참사 6주년을 맞아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사건 당시 만든 나규환 조각가의 ‘누명을 쓴 사람’을 비롯해 용산과 인연이 있는 작가 8명의 조각, 그림, 사진 작품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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