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은경기자]선한 인상과 어머니들이 보기에 '잘 생긴 얼굴'의 청와대 전 대변인 박수현 충남지사 예비후보를 만났다.
'잘생겼다 ! '
청와대 F4 문재인 대통령,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 그리고 한사람 박수현 대변인을 둔 국민들은 청와대 1기 동안에 행복했다.
청와대 대변인의 품격을 높였다고 평가되는 박수현 충남도지사 예비후보가 가진 정치에 대한 생각은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아이와의 약속이 국민과의 약속이 될 것'
"저는 정치를 할 계획이 전혀 없었어요. 전혀 예상치 않은 계기로 정치를 하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재 아이가 없습니다. 선천성 뇌성마비 아이를 낳아서 잠깐 기르다가 의료사고로 잃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저를 정치로 이끌었습니다. 제가 벽제 화장터에서 결심한 내용이 있습니다.
‘너같은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빠에게는 없지만, 그러나 너 같은 아이도, 너를 기른 부모도 세상에서 조금 더 당당하게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서 너에게 보답할게’
라는 약속을 죽은 아이에게 했습니다. 저는 원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다니던 역사학도였는데 아이와 약속을 어떻게 지킬까 생각을 하다가 서점에 가게 됐는데 사회복지학 개론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찾은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에요. 그때는 사회복지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기였습니다. 이후에 사회복지학 개론이라는 책을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아이하고 약속한 그런 세상을 만들려면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되고, 이를 만들려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돼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이후부터 저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지요.
저는 지금도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건복지위 전문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선언을 하고 15년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보건복지위에 지원을 했는데 기라성 같은 선배 의원들이 계셔서 제가 그쪽으로 못가고 국토교통위에 가게 됐어요.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이 것 하나라고는 말 못하지만 아이와의 약속이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치'는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닌 삶의 필요 '장치'
저는 특별히 정치권이라고 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있는 것이 사회이고 정치권입니다. 그런데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내가 낸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국민께 봉사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역할인데 그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정당의 구조라는 것이 매우 걸림돌이 되더라구요.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참기 힘들었고 그 벽을 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벽을 넘기 위해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어야 해요.
국민 삶에 필요한 '설득'의 정치를 맛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제가 주거복지에 관한 법안 3종 세트를 내서 19대 국회에서 유명했는데요. 쉽게 얘기하면 제가 낸 그 특별법을 법안심사 소위에서 부결이 됐는데요. 그 당시 새누리당이 인원수가 많아가지고요. 다음날 제가 상임위원회 전체 회의에 가서 의원들을 일일이 설득을 합니다. 사실은 전날 부결됐던 법을 조금 바꿔서 수정동의를 했는데 통과가 된거에요.
통과될 생각은 안하고 법의 취지를 강력하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의원들이 치열한 토론을 거쳐서 전날 부결된 법이 통과가 된거죠. 그게 사실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법이었어요. 어찌보면 웃픈 현실이기도 한거죠.
정리하자면 정당구조의 벽을 넘기 어려운 것이 가장 힘든 점이었지만 이를 넘었을 때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친문 친안'을 넘어 '친민 친구' 박수현이 말한다
오랫동안 안희정의 친구이자 동지인 박수현, 그다음 문재인대통령의 그림자로 청와대의 '입'의 역할을 수행하기 까지의 스토리가 많을 듯하여 직접 들어 보았다.
" 안희정과는 기본적으로 친구입니다. 열린우리당을 창당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같이 정치를 하게 된 것이구요"
특별히 더 개인적인 동지가 된 것은 세종시 수정안을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를 통해서 통과를 하려고 할 때 제가 수정안 반대 삭발, 단식 투쟁을 했는데 그 당시 안희정이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정운찬이 수정안을 발표를 하죠. 더 이상 투쟁할 방법과 명분이 없으니까 저희는 도민속으로 들어가서 세종시 수정안이 얼마나 부당한 지를 알려야 되겠다고 해서 안희정 최고위원과 지역위원장인 제가 (저는 삭발 단식을 한 채로 ) 두 달간을 충남의 곳곳을 장돌뱅이처럼 시장 서는 곳마다 풍찬노숙을 해가며 왜 세종시가 원안대로 되야하는지 연설을 했습니다.
'친구에서 동지로,밀어주고 끌어주는 영원한 동반자'
이러한 두 달간의 풍찬노숙 경험, 이런 것들이 친구를 동지로 딴딴하게 묶어주는 계기가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제 안희정의 도지사 도전을 제가 권유하여 이끌어내게 되고 총괄 선거대책 본부장으로서 안희정의 도전을 설계하고 열고, 또 당선되고 나서는 정책특별 보좌관으로 참여하고 또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와의 가교역할을 온전히 해오면서 안희정의 도정을 도왔던 경험이 있습니다.
'문' 과 '안'은 '한 길' 이고 '그 길' 이 ' 민주주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시절 제가 안희정 경선후보 대변인이었고 경선ㅈ 이후에는 당연히 민주당 문재인 캠프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친문, 친안 하지만 안희정과 문재인의 길은 다른 길이 아니고 바로 한 길이었습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고 하는 국민의 명령이었기에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갔고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문재인 지지자에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저는 그것이 문재인 후보 지지자에게 당한 공격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그런 열망과 현상들에 안희정 지사가 조금은 핀트가 어긋난 듯한 모습에 안타까움의 표현이 아니었나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 안희정은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중간에 오해가 생긴 부분은 시간이 가면 풀릴거라 보여요.
하여튼 문재인 대통령과는 19대 국회의원을 같이하고 또 당대표 시절에 제가 당직을 맡아 당운영을 함께 했던 경험이 있구요.
박수현의 '설득'의 정치가 또 빛을 발하다
일화 하나 말씀드리면 당대표 재신임 한다고 의원총회가 열린 날 저는 원내 대변인이기 때문에 의총에서 발언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가 의원총회 중에 거의 유일한 발언을 했는데 그 때 ‘민주당을 울린 박수현’이라고 기사가 났습니다.
문재인 대표 재신임 투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제가 그냥 연설을 하고 난 뒤 의원총회가 끝났습니다. 처음에 진선미 의원이 울기 시작하더니 문희상, 강기정 의원까지 울고 의원들이 점점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날 밤 문재인 대표께서는 밤늦게 제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 저를 구해주셨다’라고 말씀하시며 감사함을 표했고 청와대에 들어와서도 비서관들과 식사를 할 때도 그 이야기를 저 없는 자리에서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김정숙 여사님께도 말씀 드렸지만, 대표님을 국회의원들이 부를 때 ‘존경한다’고 표현을 하는데 저는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사랑한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친구이자 동지인 안희정이 경선을 나오겠다고 하는데 이길 방법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당분간 그 길을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때 문재인 대통령께도 말씀드렸어요. 잠시 기다리시면 저희가 그리로 가게 될 것입니다.
'전략이면서 전략아닌 드라마틱한 경선을 만들어내다'
우리가 정말 역동적인 경선을 한 번 만들어서 정권교체에 밀알이 되고자하는 그런 목적도 있었어요.
'안철수는 경선 완주를 끝까지 안한 포기로 국민들은 기억하며 이는 팩트입니다'
그리고 2012년 안철수의 불완전한 승복이 아니라 2017년 안희정의 완전한 승복을 통해서 경선문화를 바꿔내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올리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
(이어서 2탄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