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의 임금으로서 수십마리의 낙타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폐해가 백성들을 상하게 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며, 또 받기를 사양하면 그뿐인데, 어째서 (태조 왕은 낙타를) 굶겨 죽이기까지 하였습니까?”(충선왕) “우리 태조가 이렇게 한 까닭은 장차 오랑캐의 간사한 꾀를 꺾고자 한 것이든, 아니면 또한 후세의 사치하는 마음을 막고자 한 것이든, 대개 반드시 깊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이제현) -<고려사절요> 권1 중에서
혹독한 경쟁, 이기와 소란 피해
혼자 사막으로 들어가는 길 택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며
인내와 평정, 진중의 유전자
낙타는 갈고닦았다
낙타 46마리가 겪은 고초
신종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전국 동물원에 사는 낙타들을 덮쳤다. 낙타 46마리가 격리됐다. 이들은 국내에서 태어났거나 ‘메르스 청정지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된 개체들이다. 감염된 사람이 다가가지 않았다면, 메르스 바이러스가 이들을 숙주 삼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공포는 이성을 앞질렀다.
“어떻게 낙타 격리가 이뤄졌죠?”
“따로 지시가 있던 건 아니고, 분위기가 그랬으니까요. 한 지방 동물원에선가 먼저 격리를 했어요. 우리도 해야 할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고, 토종인데 뭣하러 하느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죠. 관람객들이 불안해할 수 있어서 일단 격리를 했죠.”
지난 23일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내실 격리’에서 풀려난 단봉낙타 한 마리와 쌍봉낙타 한 마리를 바라보며 유종태 복지팀장이 말했다. 북극곰이나 돌고래처럼 ‘스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흔한 이름도 붙여지지 않았지만, 둘은 1908년 창경원 동물원 개장 이래 가장 큰 관심을 받은 낙타임이 틀림없다. 메르스 사태가 터지자 수많은 기자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어 갔다. 단체행사가 취소돼 ‘아이엠에프(IMF) 이후 처음’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동물원이 한적해졌지만, 몇 안 되는 방문객들은 (이제 스타가 되었으니 이름을 붙여주자면) ‘단봉이’, ‘쌍봉이’ 앞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었다.
낙타는 두 종이 있다. 등 위에 봉이 하나인 단봉낙타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널리 퍼져 산다. 봉이 두 개인 쌍봉낙타는 중앙아시아에 산다. 오스트레일리아에도 낙타 70만마리가 있다. 가축으로 들여왔다가 야생화된 개체들이다. 중국 신장과 몽골 고비사막에 ‘진본’ 야생 낙타가 산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중국에 600마리, 몽골에 350마리가 남았다며, 쌍봉낙타를 ‘멸종위기 심각종’(CR)으로 분류하고 있다.
낙타는 원래 북아메리카에서 살았다. 직접적 조상은 약 300만~500만년 전 마이오세와 플라이오세에 북아메리카에서 살았던 ‘프로카멜루스’(Procamelus)다. 긴 다리 그리고 1m 중반대의 키는 지금의 라마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프로카멜루스의 화석이 발견된 곳은 캐나다 북극권의 엘즈미어 섬이었다. 이처럼 낙타가 원래부터 사막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일군의 무리는 남아메리카로 내려가 야마(라마)와 과나코, 알파카 등으로 진화했고, 일부는 베링육교를 통해 유라시아로 건너와 고비, 아라비아, 사하라로 들어갔다.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어디에든 그런 동물은 있다. <그리즐리맨>을 만든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은 다큐멘터리 <세상 끝과의 조우>에서 세계적인 펭귄 연구자인 데이비드 에인리 박사를 남극에서 만나 묻는다.
“언젠가 게이 펭귄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난 들어본 적 없어요.”
“성적으로 특이한 관계는요?”
“삼각관계는 있어요. 셋이서 번갈아가며 알을 품어요.”
“펭귄 사이에도 광기가 있나요?”
“펭귄이 바위에 머리를 찧는 건 본 적이 있지만… 방향감각을 잃기는 해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육지에서 (혼자) 발견되기도 하죠.”
펭귄들이 줄지어 바다 쪽으로 행진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그런데 중앙에 있는 한 마리가 광활한 평원에서 정지해 가만히 있는다.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대열에서 이탈해 70㎞나 떨어진 산맥으로 혼자 걸어가기 시작한다. 에인리 박사 얘기로는, 그런 펭귄은 사람이 잡아다가 무리 속에 넣어도 다시 산맥 쪽으로 걸어간다고 한다. 헤어초크 감독은 묻는다. 도대체 왜 그 펭귄은 죽음을 향해 혼자 전진하는 거냐고.
진화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런 고독한 펭귄들이 지금의 낙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낙타는 혹독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사막으로 갔다. 경쟁과 이기, 소란스러운 사회생활이 질려서 그랬을 수 있다. 친구를 포기한 대가는 그러나 가혹하다. 사막보다 척박한 환경은 지구상에 없다. 낙타는 사막에 버틸 수 있도록 제 몸을 바꾸었다. 두꺼운 털은 한낮의 더위와 한밤의 추위를 막아주고, 단봉과 쌍봉은 지방을 축적하고, 혈액은 수분을 저장하고, 탄탄한 근육은 피로를 버티는 수단으로 진화시켰다. 현생 낙타는 한달 넘게 먹이와 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개성 만부교의 낙타가 한달 이상을 버텼던 이유다.
낙타는 평정을 잃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땡볕이 내리쬘 때도 눈부셔 뒤돌아서지 않고 고개를 쳐들고 태양에 맞선다. 긴 목과 머리로 작은 그늘을 몸에 만들어 최대한 체온을 낮춘다. 과격은 자신을 해한다. 험한 환경과 공포를 고독히 헤쳐갈수록 존재는 묵묵해지고 진중해진다. 동물원에 가서 낙타를 바라보라. 울타리가 답답하다고 날뛰지 않는다. “낙타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설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늘 심오하고 조신해 보인다.”(최형선,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팡팡 철문을 쳤어요”
서울대공원의 단봉이와 쌍봉이가 사육사 내실에 격리된 건 지난 2일이었다. 서로 종이 다르니, 둘이 사는 곳은 분리되어 있고 각각 따로 살아왔다. 언제나 내실 문은 열어뒀다. 밤이 되거나 비가 오면 둘은 각자의 내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내실에 격리되고 나선 밖에 나와 걷지를 못했다. 23일 정춘근 사육사가 말했다.
“갇혀 있으니 나오고 싶지요. 아이들이 팡팡 다리로 철문을 쳤어요. 무슨 일인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다보고 있었고….”
메르스 방역 업무를 관장한 질병관리본부는 이달 초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생(生)낙타에 대한 검사 협조’ 요청을 보냈고, 이는 다시 전국 시·도 지자체로 전달됐다. 전국 10곳의 동물원과 사육시설의 낙타 46마리에서 채취된 시료가 검역본부로 이송됐다. 단봉이와 쌍봉이도 격리 직후 코와 입에서 점액을 채취해 검사를 받았다.
당연히 음성 판정이 나왔다. 단봉이와 쌍봉이는 국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은 나흘 만에 격리를 풀기로 했다. 6일부터 둘은 ‘영어의 몸’을 끝내고 사육사 마당을 돌아다닌다. 앞에 표지판이 걸려 있다. “메르스 감염 여부를 검사한 결과 모두 음성으로 나와 안전함을 알려드립니다.” 전국의 낙타 46마리에 대한 검사 결과도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25일 “중동에서 수입된 낙타는 한 마리도 없고 대부분 국내에서 번식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인간은 동물을 이용해왔다. 동물의 몸이 이용되고, 이미지가 복제되고, 의미가 생성된다. 서울에 사는 직장 초년생인 박기호(26)씨는 지난 19일 낙타 가면을 쓰고 명동 거리를 쏘다녔다.
“관심종자라고 하죠. 동물 가면을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재밌어요. 말 가면을 주로 쓰다가 대통령을 풍자하려고 닭을 쓰기도 하고. 이번에는 낙타를 쓰고 나가봤어요. 백병원 앞으로 가려고 했는데, 안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안 갔습니다. 병원 관계자들이 마스크 쓰고 지키고 있길래 여의치도 않았고요.”
낙타가 천년 만에 유명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낙타를 잘 알지 못한다. 희화화된 이미지로 소비하거나 풍자의 무기로 사용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의 윤리, 질병의 공포, 정치적 공격과 수비의 싸움터에서 본연의 낙타가 숨겨져 있다. 낙타는 그래도 울지 않는다. 고려 태조 때 만부교에서 굶어 죽은 선조의 낙타들이나 ‘바이러스 전파자’라는 누명을 쓰고 격리된 후대의 낙타들이나 혹독한 환경과 공포 속에서 진중하게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