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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의 고통, 신상철 직격 탐사인터뷰] 천안함 진실찾기..
기획

[ 8년의 고통, 신상철 직격 탐사인터뷰] 천안함 진실찾기,.암 투병에까지

김은경 기자 saint4444556@gmail.com 입력 2018/03/16 14:43 수정 2018.03.24 17:10
신상철 "아파트 10층 규모 대형 구조물이 침몰지점 180m인근에 있는데 해군은 이틀 동안 못 찾았다"[ 1편]

[뉴스프리존= 취재 김은경 기자 / 글 임두만 주필]이 인터뷰는 지난 3월 14일 신문고뉴스 서초동 사무실에서 뉴스프리존 공동으로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 생략하거나 잘라 낼 말이 없다는 판단에 그 전문을 싣기 위해 전문 정리 후 2편을 먼저 올립니다. 이후 녹취록이 정리되면 3편, 더 나아가 4편으로 분할하여 싣겠습니다. 이는 모바일 시대에 모바일로 기사를 접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음에 이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입니다.

▲질문을 경청하고 있는 신상철 대표

- 오랜만이다. 건강은 어떤가? 이제 완치 된 것인가?

= 그렇다. 완치되었다. 이제는 커피도 소주도 막걸리도 문제가 없다. 뭐든 잘 먹는다.

- 오늘(3월 14일)이 항소심 몇차 재판인가?

= 심리로는 마지막인데...어떨지 모르겠다. 재판부가 법원 정기인사로 바뀌었다. 그래서 바뀐 재판부로는 처음인데 오늘 10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하려고 한다.

- 10명? 누군가?

=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 김성찬 당시 해군참모총장, 박정이 합동조사단장(육군중장), 윤종성 합동조사본부장(육군소장) 이들은 나를 고소하거나 고발한 고소인 고발인들이다. 그리고 그 외 이상의 당시 합참의장,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토마스에클스 미국 측 조사단장,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스웨덴 조사단장, 또 당시 정부가 어뢰 폭침의 주범으로 특정한 김영철 북한 정찰총국장, 마지막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 왜 그들의 증언이 중요한가?

= 첫째,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나를 고소한 고소인이다. 김 장관은 또 천안함 사고 발생 직후 미 국무성과 우리 국정원의 ‘특이사항 없음’ 의견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에 의한 폭침으로 몰아간 핵심 당사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는 그가 합조단의 조사과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조사가 아닌 특정한 결론을 만들어놓고 그에 짜맞추기식 조사를 유도한 있다고 본다. 특히 천안함 사건 초기 적극적인 수색을 통해 실종자들에 대한 인명구조 업무에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마당에 이틀이 지나도록 침몰한 함미의 침몰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의 예로, 2010년 4월 9일 국회에서 천안함 관련 대정부 질의가 있었는데 김 장관이 답변하는 도중 참모가 A4용지를 건네어 줬다. 그 내용을 당시 YTN 기자가 망원렌즈로 땡겨서 잡았는데 내용인 즉, “VIP께서 자꾸 어뢰로 기우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중략) 보이지 않는 두 척, 잠수함과 침몰 초계함을 건져봐야 안다고 말씀해 주시고..” 이렇게 적혀있다. VIP가 누군가. 이명박이다. 그런데 이명박 지시사항이 적힌 메모를 그는 그냥 무시하고 자기 주장만 펼치고 내려간다. 이게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천안함 사건의 원인과 조사과정 전반을 김태영 장관이 주도하고 끌고 간다는 걸 말해준다. 따라서 그가 그렇게 한 이유와 배경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김성찬 전 해군참모 총장이다. 그도 물론 고소인이다. 그는 당시 해군 참모총장으로서 해군의 초동 대응이나 수색, 인양은 물론 사고 원인의 규명과 합조단 운영, 인양된 천안함 증거의 보존까지 적절히 수행해야 할 전반적인 책임이 있다. 그런데 결과가 말해주듯히 총체적 난맥상을 겪었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따지기 위해 증인으로 신청했다.

셋째, 박정이 전 합조단장. 그는 당시 육군중장이었으며 고발인인데... 다국적군 운용을 포함 민군합동조사단의 군 합조단장으로서 천안함 사고를 폭침으로 규정한데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조사를 수행했는지 여부를 따져 물을 것이다. 당시 3성 장군이었던 그는 합조단 최종 발표가 끝난 한 달 후 4성 장군으로 진급하여 1군 사령관 보직을 받는다.

넷째, 윤종성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이다. 그는 당시 육군소장으로 고발인이다. 천안함 폭침의 핵심 증거로 제시된 소위 1번 어뢰에 대해 따져 물을 것이 있다. 그 고철덩어리가 어떻게 최신 어뢰로 둔갑했는지 조목조목 따질 것이다. 그리고 그 어뢰가 핵심 증거물이라면 천안함이 전시된 평택 전시관에 비치되어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비치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국방부 조사본부 창고에 꼭꼭 숨겨두었다. 이 요구는 정보공개청구 절차중이기도 한 사안이다.

다섯째, 이상의 전 합참의장인데...천안함 사고 당일 계룡대에서 육해공군 합동화회의를 마치고 회식 도중 천안함 사고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만약 적의 공격이라면 즉각 헬기를 타고 합참으로 이동했을 것 아닌가. 그런데 그는 KTX 편으로 상경하면서 개인 핸드폰으로 업무보고를 받고 업무지시를 한다. 그는 합참 도착 후 상황실에서 보고를 받고 업무지시를 한 후 자신의 집무실에 연결된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잔다. 이게 과연 적의 공격이 있었던 정황인가? 그걸 묻고자 한다. 이 의장은 이후 천안함 사건이 북의 폭침 발표가 나면서 당시의 처신이 도마에 올라 옷을 벗게 된다.

여섯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다. 원 전 원장은 2010년 4월 국회 국방위 현안질의에서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간여하였는가라는 질문에 ‘특이동향이 없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황이다. 국정원장이 특이동향 없었다면 말 그대로 특이동향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의 증언이 매우 중요하다.

일곱째. 토마스 에클스 당시 미국 대표단장이다. 그는 미 해군 소장이고 잠수함 전문가다. 그가 미국 측 대표단장이 된 배경의 증언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재미 과학자이며 잠수함 전문가인 안수명 박사가 미 국방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소송을 하여 입수한 토마스 에클스의 이메일에는 ‘선저하부 비접촉폭발로 판단됨’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 날이 2010년 4월 12일인데 함미선체 일부가 겨우 수면위로 올라온 시점에 그는 원인분석을 하여 본국에 이메일을 송신한 셈이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따져보려고 한다. 결국 그는 우리 국방부가 소위 <버블젯에 의한 비접촉폭발>로 결론내리는 데에 중요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 셈이다.

여덟째, 스웨덴 조사단장은 프로펠러 조사임무를 했는데. 천안함의 프로펠러 제조사인 스웨덴 가메와사 소속이다. 천안한 프로펠러는 S자 형태로 휘어져 있는데 국방부는 엔진정지로 인한 관성에 의해 휘어진 것리 주장했다. 참으로 황당한 논리다 돌아가는 선풍기 전원코드를 뽑으면 날개가 부러진다는 말이나 같다. 따라서 그가 그런 조언을 한 것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천안함 사건에서 프로펠러의 손상은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홉째, 김영철 전 북한 정찰총국장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북한 잠수정에서 발사한 어뢰에 의한 폭침>으로 규정했다. 이 폭침 프레임은 '어뢰발사의 주체는 북한 정찰총국 그 책임자는 김영철'로 ‘가해자’를 특정해버렸다. 즉 ‘폭침의 주범 = 김영철’로 짜버리니 사람들은 ‘김영철’에 주목하게 되지 ‘폭침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대단히 간교한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천안함 때 어떤 보고를 받았으며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는 2010년 5월 24일 전쟁기념관에서 천암함은 폭침, 가해자는 북한으로 단정하고 맹비난을 퍼붓고 5.24 조치를 발표한다. 그 결과 남북은 대화가 단절되고 경제협력도 끊어지고 급기야 박근혜 정권때 개성공단마저 문 닫지 않았나. 그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따져볼 것이다.

▲사진: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인터뷰직후 재판을 앞두고 환하게 웃고있다/ 사진 김은경기자

- 대단하다. 하지만 증인으로 신청해도 검찰의 동의와 재판부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가능하겠는가?

= 그거야 검찰과 재판부 판단의 몫이고, 나는 피고인이니까 진실을 밝히고 내게 무죄의 근거가 될 증언을 요청하는 것은 나의 권리다. 그런데 미국인 토마스 에클스와 스웨덴 조사단장의 경우엔 외국에 있어 송달의 문제등 곤란한 점들이 많다고 재판장께서 말씀하셔서 외국인 두 증인은 부르기 어려울 것 같긴 하다.

- 좋다. 오늘 있을 재판 얘기부터 하자. 34개의 공소사실로 4년을 끈 1심 재판에서 32건은 무죄, 2건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렇다면 32개는 당신의 주장이 옳다고 법원이 인정한 것인가?

= 나는 천안함 사고가 난 뒤 합조단 민간위원으로서 피소되기 전 천안함 침몰에 대해 많은 분석글을 썼는데 34개 항목에 대해 검찰이 문제를 삼았고 그 모두를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34항목 가운데 32개는 무죄로 판단했지만 2항목에 대해서 유죄 판결을 했다.

- 유죄 2항목의 내용은 무었인가?

= 하나는 증거인멸에 관한 것인데 나는 국방부가 선박 하부의 스크래치를 점차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총체적 책임을 물어 국방장관을 ‘증거인멸’죄로 고발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국방부 장관은 증거인멸을 하지 않았다’며 유죄 판결을 했다.

선박 하부의 스크레치는 선박이 좌초했다는 중요한 증거다. 땅 위를 운행하는 자동차는 여러 장애물에 걸려 긁힌 자국이 날 수 있다. 하지만 선박은 물위에 떠 있기 때문에 긁힐 가능성이 적다. 그런데 천안함은 밑바닥에 긁힘 자국이 선명했다. 명백한 좌초의 증거다. 그런데 이 긁힌 자국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졌다. 해군은 선박의 이물질 제거 혹은 부식방지를 말하지만 엄밀히 이것은 증거훼손에 해당한다.

- 다른 또 하나는?

= 구조수색 부분인데. 초기대응이 너무나도 부실하고 이틀이 지나도록 그 큰 대형 구조물을 찾지 못하는 것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국방부가 그렇수밖에 없었던 것은 천안함이 아닌 다른 함선의 사고에 모두 올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당시 나는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지 않은 것’이라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그것을 해군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봤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국방부의 주장에 재판부가 손을 들어준 결과다.

과연 국방부는 최선을 다했을까? 함미가 과연 이틀동안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 구조물인가? 아니다 대형구조물이다. 반 토막 났지만 길이 38m, 높이와 폭이 각 10m 크기다. 지상 구조물로 치면 어지간한 10층 빌딩 규모다. 이 거대한 구조물이 수심 47m에 옆으로 누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도 침몰한 곳에서 불과 18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천안함 길이 2배에 불과한 바로 옆이다. 그것을 이틀 동안 못 찾았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함수도 마찬가지다 함장이 탈출하며 ‘내가 마지막이다’라고 했는데, 함수 쪽 기관부 당직자이던 박성균 하사가 사망한 채 뒤늦게 발견되었다. 함수 쪽 승조원이 모두 탈출하고 함장은 자신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함장이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이후 수색을 하지 않았고 박하사는 결국 생존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 달 뒤 발견된 시신은 함수 부분 중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배가 가라앉으며 뒤집혔으니 이는 뒤집히기 전 가장 높은 곳이었다는 뜻이다. 박 하사는 공기를 찾아 그곳을 이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함수를 확보하지도 않고, 생존자가 있는지 두드려보지도 않고 심지어 16시간22분 떠있다가 다시 가라앉을 때까지 부표까지 설치하지 않았다. 이것이 수색을 하지 않은 것이지 무언가 말이다.

 (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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