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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잔혹 행위 노림수는
사회

IS 잔혹 행위 노림수는

디지털뉴스부 기자 입력 2015/11/16 19:57



세계 지도자들이 파리 동시다발 테러를 강도 높게 규탄하는 성명을 내놓으며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다. 각지에서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고 온라인도 희생자를 애도하는 물결로 가득 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현지시간) “파리 연쇄 테러는 도저히 정당화될 수 없는 비인간적 행위”라며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뒤틀린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프랑스, 터키뿐 아니라 문명사회에 대한 공격”이라며 “미국은 테러와 싸우는 데 노력을 배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은 11월13일을 ‘유럽연합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 16일 정오에는 1분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비극은 인류 문명에 도전장을 던진 테러리즘의 야만적 본질을 재차 증명한 것”이라며 “이런 악과 효율적으로 싸우려면 국제사회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애도와 규탄 대열에 가세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테러를 비난하고 프랑스 국민들에게 애도를 보냈다.


파리 테러 희생자들 애도 아이콘

캐나다 몬트리올, 미국 맨해튼 등 세계 곳곳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프랑스어권인 몬트리올 시민 500여명은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는 플래카드를 들고나왔다. 이란 테헤란 주재 프랑스 대사관 앞에도 시민 100여명이 모여 희생자를 애도했다. 이란에서 서방에서 일어난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파리를 위해 기도하자’ 등 해시태그를 통해 희생자를 애도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프랑스 국기를 배경으로 자기만의 사진을 넣은 프로필 사진으로 애도를 표현했다. 뉴욕의 9·11테러 자리에 세워진 원월드트레이드센터, 영국 웸블리 축구장 등 유명 건물에는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 흰색, 붉은색 조명이 비춰졌다.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4)가 파리 연쇄 테러의 전면에 등장하는 모양새다.

이라크 정보 당국이 공교롭게 파리 테러 하루 전 프랑스에 '알바그다디가 IS를 공습하는 국제동맹군에 참여한 국가를 겨냥한 공격을 지시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프랑스 등에 통보했다는 보도가 15일 나오면서다.

이브라힘 알자파리 이라크 외무장관도 전날 "프랑스에 테러 첩보를 전달했다"고 언급해 이 보도는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다.

 

IS는 그간 셀 수 없이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지만 조직의 정점에 있는 알바그다디가 직접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바그다디의 정체에 대해 공개된 정보는 매우 적다.

1971년생으로 이라크 중북부 사마라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이브라힘 알리 알바드리 알사마라이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29일 국가 수립을 선포한 IS는 그를 '칼리파(초기 이슬람 시대의 신정일치 지도자) 이브라힘'으로 발표했다.

이 발표 직후인 7월5일 이라크 모술의 대모스크에서 그가 설교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그의 얼굴이 드러난 것은 이 동영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당시 그는 검은 터번을 머리에 두른 성직자의 복장으로 등장했다. 검은 터번은 이슬람 예언자 모하마드의 직계임을 뜻한다. 자신을 무슬림의 이상향인 칼리파 제국의 지도자이자 숭모의 대상인 예언자와 연결한 것이다.

그를 둘러싼 사망설, 중상설이 끊이지 않았으나 아직 확인된 적은 없고 소재 역시 묘연하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이 이듬해 수니파 저항세력의 근거지였던 안바르주 팔루자를 탈환하는 작전을 벌이다 그를 체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미군이 설치한 이라크 남부 부카 수용소에 2004년 4월께 수감된 것은 대체로 일치하는 사실이지만 그가 석방된 시점에 대해선 그해 12월이라는 설과 2009년이라는 견해가 엇갈린다.




석방 이후 행적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이라크의 상황을 고려하면 강경 수니파 무장조직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에 가담, 서열이 점점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2010년 4월 이라크이슬람국가(ISI·AQI가 개명한 조직)의 수괴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가 폭사하자 그는 한 달 뒤 이 조직을 차지한다.

이 시점에 대해서도 혼선이 있다. IS는 지난달 자체 발표한 조직 연표에서 "2010년 10월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의 지휘하에 ISI가 창설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전의 혼란에 빠진 이라크에서 빠르게 세력을 넓히면서 2013년 4월 ISI를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로 이름을 바꾸고 시리아의 강경 수니파 반군을 흡수, 2014년 6월 IS라는 자칭 국가 수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알카에다는 당시 ISIS에 시리아 조직을 일부 빼앗기자 2014년 2월 관계 단절을 발표했다.

IS는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알카에다의 설립자이자 지하드의 상징인 오사마 빈라덴의 '적통'임을 주장해 왔다.

IS가 지난달 낸 문서를 보면 IS의 출발을 아부 무사부 알자르카위(2006년 폭사)가 1999년 이라크에서 세운 '자마트 알타우히드 왈지하드'로 공식화했다. 이 조직은 알자르카위가 빈라덴에게 충성을 맹세한 뒤 AQI로 변신했다.

빈라덴이 2001년 9·11 테러로 폭력적 지하디즘(성전주의)의 대명사가 됐다면 알바그다디는 '유럽판 9·11'로 불리는 이번 파리 테러로 빈라덴의 적통을 넘어서 그에 버금가는 무게를 갖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빈라덴은 이미 사망했고 그의 '유산'인 알카에다는 9·11 테러 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위세가 움츠러들었지만, 알바그다디와 IS는 전성기 때의 알카에다를 능가하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탈레반도 여전히 근거지인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신생조직인 IS가 시리아·이라크 밖 외국에선 아직 알카에다만큼 현지 테러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이번 파리 테러로 무색하게 됐다.

무엇보다 현재 미국 정부의 처지가 9·11 테러 뒤 알카에다에 쏟아 부었던 만큼 IS에 대해 물량공세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IS의 위협은 만성화하고 고착될 것으로 보인다.

알바그다디를 제거하기 위한 대대적인 추적이 예상되지만 이는 9·11 테러가 1990년대 말 본격화된 미국의 빈라덴 추적 작전이 동기였음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서방에 대한 직접 공격 위험도는 더 커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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