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공화국’. 지난 대선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에선 헌정 유린, 국기 문란 행위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공직사회가 불법을 서슴지 않는다.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구청 공무원들이 여론조작에 나섰다. 모두 댓글을 통해서다.
해묵은 진영프레임이 사이버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상대를 내부의 적으로 규정, 종북 올가미를 덧씌운다. ‘특별한’(강남)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왜곡과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론 왜곡과 조작은 정치적 허무주의와 혐오감으로 이어진다. 진영대결과 갈등의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공공기관 댓글부대가 ‘낡은’ 통치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공직사회 ‘일그러진 애국’ 세상을 뒤흔든 댓글사건은 공직사회에서 터져나왔다. 2012년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터진 국정원 댓글사건.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파가 컸다. 이 사건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체제유지의 선봉장이었던 국정원의 흑역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줬다. 검찰 수사결과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이 대선 기간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 등 수십개 사이트에서 선거개입 게시글 67건, 정치관여 글까지 포함해 1970건, 찬성·반대 클릭 수 1711회를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군도 동원됐다. 군 사이버사령부 이모 전 심리전단장은 2011년 11월~2013년 10월 소속 부대원 121명과 공모해 1만2844회에 걸쳐 인터넷에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댓글을 올렸다가 법정구속됐다.
서울 강남구청 댓글사건도 공무원들이 주도했다. 도시선진화담당관 산하 시민의식선진화팀 팀장 이모씨(6급)와 김모·오모씨(7급) 등은 네이버에 올라온 뉴스기사에 지난 10~11월에만 최소 200개 이상의 댓글을 단 것으로 확인됐다. 댓글은 대부분 근무시간 중 작성됐다. 별도 편제부서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제2의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무원이 댓글 여론전에 동원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을 위한 강제철거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이 논란이 되자 경찰청은 소속 경찰관들에게 자신들이 정당했다는 댓글을 달도록 지시했다. 지난 10월 교육부는 비밀전담팀을 운영해 국정교과서 찬성 여론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공무원이 민간인으로 위장해 업무와 관련한 여론에 개입하려는 것은 공직자로서 기본윤리를 망각한 것이다. 공공기관 전체에 대한 불신을 높이고, 위임받은 권한을 잘못 행사하는 행태”라고 말했다.
■무책임·왜곡·비방…은밀한 유혹충성 경쟁은 필연적으로 여론조작을 동반한다. 공직자들이 인터넷 공론장에서 댓글로 허위사실 유포, 사실 왜곡, 상대 비방 등을 감행한 배경이다. 이승원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공무원노조가 탄압받는 상황에서 공무원들 스스로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다”며 “공개적인 논쟁보다 익명 뒤에 숨어 정치적 욕망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특정사이트 게시판에서 정부 비판적인 글이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되면 다른 게시판의 글을 추천해 베스트 게시물을 대체했다. 야당 대선 후보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하 대상이었다. “어떤 음해에도 끝까지 네거티브 않겠다”는 문재인 후보 기사에 “이만하면 문재인 또라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니네 캠프에서 한 게 얼만데. 정신병자 아냐??”라는 비방성 댓글이 달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여권이 궁지에 몰리자 “노무혀이가 자살한 것으로 봐서는 뇌물 묵었는 것 같다. 안 그랬으면 죽을 노무혀이가 아니제…”(2009년 6월21일)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반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응원과 찬사를 보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정치적 관심이 높아지는 선거 때 여론조작이 극심하면 중도층의 정치혐오가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갈등이 최고조였던 11월 중반 무렵, 두 후보의 긍정어 언급 비율은 20% 초반대에 불과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박근혜 후보는 40%대였다.
강남구청 댓글사건은 주로 서울시와 대립하는 사안을 두고 강남구에 유리한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가 짙다. 서울시가 지난 3월 대치동 학여울역 부근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 제2시민청을 짓겠다고 발표하자 ‘시장홍보용’ ‘불법’으로 몰아붙였다. 소속 공무원 이씨는 “서울시가 불법 용도변경을 한 것도 모자라 서울시장 홍보용 시민청을 구축하고자 시민의 세금 15억원을 사용하겠다? 서울시는 불법 공화국”(11월3일)이라고 비난했다.
유승찬 대표는 “박주신씨 댓글사건은 잘못된 팩트를 믿는 ‘착시 현상’과 이를 확산하려는 ‘확증 편향’의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진영프레임과 기득권 사수국정원과 군 기무사 댓글부대는 진영프레임을 앞세웠다. 온라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좌우 대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선거 여론에 개입한 것이다. ‘기승전종북’이다. 이승원 교수는 “북풍이 통하지 않자 국가기관이 분단 상황을 악용해 온라인을 교란시키고 혹세무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세훈 전 원장은 2009년 취임 직후부터 특정단체와 인물을 적으로 규정했다.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2012년 한 해 동안 “종북세력들은 사이버상에서 국정폄훼 활동을 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11월23일), “종북좌파들이 한 40여명 여의도에 진출했는데 우리나라 정체성을 계속 흔들려고 할 거다”(4월20일)라며 사실상 선거개입을 지시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원 전 원장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좌익효수’라는 닉네임을 가진 직원은 주요 포털사이트와 인터넷에 “(5·18 민주화운동에서)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개대중(김대중) 뇌물현(노무현) 때문에 우리나라에 좌빨들이 우글대고…”라는 댓글을 올렸다.
진영프레임은 진보·보수 지지층 내부의 ‘맹목적인’ 결집을 유도했다. 대선 이후에도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집회, 국정원 개혁 논란 등으로 한국 사회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소모했다.
강남구청 공무원들이 집중한 댓글 이슈는 주로 ‘도시개발’ 현안이다. 현대차그룹의 공공기여금 활용, 구룡마을 개발, 제2시민청 건립, 행복주택 건설 등이다. 1970년대 이후 강남의 기득권을 만들어낸 ‘개발 욕망’과 뿌리가 닿아 있다. 서울시는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국전력 부지를 매입하고 기탁한 공공기여금을 지역균형 발전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신 구청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강남특별자치구를 만들겠다”며 송파구와 이익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 구청장 발언에 ‘강남구에서 생긴 공공기여금을 왜 다른 데 쓰려고 하느냐’는 댓글이 동시다발적으로 달렸다. 강남구청 댓글사건은 ‘기득권 사수’를 위해 ‘그들만의 환상’을 좇고 있는 댓글공화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