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모란봉악단의 베이징(北京) 첫 공연이 느닷없이 무산된 것은 북한의 '수소폭탄 보유' 선언과 중국 측 공연관람 인사의 '격'을 둘러싼 갈등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베이징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던 북한 모란봉악단이 12일 공연 직전 귀국해 공연이 취소됐다. 모란봉악단 단원들은 12일 오후 7시 30분으로 베이징에서 예정된 공연을 3시간여 앞두고 오후 4시 7분 고려항공 편으로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공훈국가합창단과 함께 이날부터 3일간 베이징의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국가대극원에서 북중 양국 고위급 인사들을 비공개로 초청해 무대를 펼칠 예정이었다.
이번 공연은 일반인들에게 표를 팔지 않고 중국의 당정군 주요 인사들에게만 공산당 대외연락부와 문화부가 표를 배분해 초청하는 형식이었다. 티켓 앞면에는 ‘증정표이니 남에게 양도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으나 일부는 암표로 판매됐다.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암표 가격이 1만5000위안(약 271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국가대극원 측은 공지문을 통해 공연이 취소됐다고 확인하면서도 정확한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신화통신은 이날부터 예정됐던 북한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 공연은 실무층 간 소통 문제로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익명의 중국정부 측 인사 A씨를 인용,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근 수소폭탄 보유 발언을 한 뒤 중국당국이 공연관람 인사를 당 정치국원(지도자급)에서 부부장급(차관급) 인사로 대폭 낮췄다고 한 매체에 전했다. 중국이 공연참석 인사를 정치국원에서 부부장급으로 변경했다면 '격'을 3∼4단계 정도 떨어트린 것이다.
A씨는 "조선(북한)은 당초 중국에 시 주석이나 리 총리의 참석을 요구했지만, 중국이 이에 동의하지 않고 한 명의 정치국원이 참석하는 안을 제시했다"며 "조선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공연단이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공연단이 베이징에 도착한 것과 비슷한 시점에 김 제1위원장이 '수소폭탄 보유' 발언을 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고 그는 전했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현재 한반도의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하며 취약하다고 판단한다" "관련 당사국이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길 희망한다"며 김 제1위원장의 '수소폭탄'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모란봉악단 단원들은 전날인 11일 오후까지만 해도 국가대극원에서 첫 리허설을 하는 등 순조롭게 공연 준비를 했다. 이들의 리허설 장면은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옛 애인’ ‘첫사랑’으로도 알려진 단장 현송월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한때 신병이상설에다 처형설까지 나돌았던 인물이라 그의 등장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한편 모란봉악단은 2012년 7월 김정은의 특별지시로 창단, 파격적인 차림새와 서방 음악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 베이징 공연이 창단 이후 첫 해외 공연이 될 예정이었다.
이처럼 추정은 무성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미스터리다. 공연 취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북한이 관영 매체를 통해 자초지종을 밝히기 전까지는 그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해 보이는 건 중국 측이 공연을 중지시킨 게 아니라 북한이 불만 표출이나 항의 차원에서 스스로 취소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12일 본지에 "우리가 못하게 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는 신화통신 보도에 "앞으로도 계속 양국 문화교류가 발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