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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빼닮은 박근혜식 정치 강변, 그러나 국민은 없다...
정치

너무나 빼닮은 박근혜식 정치 강변, 그러나 국민은 없다.

고성기 기자 입력 2015/12/15 08:18
‘사람들’ 속으로 가서 정권교체 외쳐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지난 6일 기자회견을 갖고 “나와 함께 당 바꿀 수 없다면 분명히 말해 달라”고 당 대표 문재인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지난 11월29일 안철수가 기자회견에서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며  ‘혁신전당대회’를 제안하자 문재인이 그것을 단호하게 뿌리친 데 대한 반박이었다. 안철수가 일찍이 건의한 ‘10대 혁신안’을 문재인이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안철수는 “지금 수용할 수 있었다면 왜 그 전에는 수용을 하지 않았는지, 왜 외면하고 비판했는지 묻고 싶다”고 공격했다.

안철수의 6일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는 방송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쩌면 저렇게도 박근혜의 기자회견을 빼닮았을까’였다. 안철수는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시청자들을 향해 미리 준비된 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표독한 표정으로 문재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와 함께 당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제안은 옳은 것이므로 문재인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마치 박근혜의 ‘아바타’를 보는 듯 했다.

안철수는 회견문 낭독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은 사양하겠다는 말도 없이 단상에서 내려갔다. 그가 국민들에게 진심을 전하려면 회견문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자들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성실하게 답변해야 국민들에게 안철수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서 중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기 책임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철수가 박근혜를 닮지 않으려면 텔레비전에 나와 문재인을 일방적으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공개 토론을 제안했어야 한다.

    
▲ 지난 6일 오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당내 현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포커스뉴스  

안철수는 문재인을 향해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감동과 파격이 있어야만 국민의 관심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께서 다시 당선되신다면 저는 깨끗이 승복하고 문 대표를 적극 도울 것입니다. 만약 문 대표도 저도 아닌 제3의 개혁적 후보가 당선된다면 더 큰 감동과 반전, 그리고 혁신의 에너지를 분출시킬 것입니다. 진정 당과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 무엇인지 숙고해 주십시오.”

이 대목에서 안철수는 당 대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문재인과 경쟁하겠다고 표명하면서도 ‘제3의 개혁적 후보’를 언급했다. 지금 안철수가 보기에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어떤 ‘개혁적 후보’가 있는가? 차라리 ‘내가 다시 대표가 되어야 당과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최근 차기 대통령후보 감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7% 안팎을 맴돌고 있다. 게다가 그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조직도 세력도 없는 저는 꼴찌를 해도 좋다고 각오”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정치 지도자가 되는 데 조직과 세력이 필수적이라면 안철수는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그런 조건을 갖춘 인물을 찾아내서 추대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초라한 위상의 자신이 제1야당 대표가 된다 한들 당원이나 국민 대다수의 호응과 성원을 이끌어 낼 수 없음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6일 기자회견에서 유난히도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저의 지금 목표는 정권교체이고, 국민의 삶을 바꾸는 정치의 변화입니다. 지금 제가 우리 당의 혁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고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새누리당을 누르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노력하고 싸워 왔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단 한 차례도 분열의 길을 걸은 적이 없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명분이었다.


“2011년 한나라당의 확장을 반대했기에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했고”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대통령후보직도 양보했”으며, “2014년 창당을 포기하고 민주당과 통합하여 지방선거를 돌파해 냈”다는 것이 그런 명분의 뼈대이다. 서울시장 후보직을 박원순에게 양보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에 대한 단일화에 합의한 뒤 어정쩡한 지원 유세를 했던 사실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2014년 3월 김한길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다가 그해 7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한 사실은? 그리고 2012년 대선 투표 당일 아침 투표를 한 뒤 오후에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던가? 안철수는 그때 이렇게 주장했다. “국민에게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주인에게는 승패가 없다. 어떤 결과건 모두 기쁘게 받아들이면 좋겠다.” 국민에게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면 왜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하는가?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이겨도 ‘기쁘게 받아들이면’ 되지 않는가?

2012년 대선 직후 안철수의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렇다. 그는 스스로 단일화를 해준 문재인이 개표 결과 당선되면 흔쾌히 축하를 하고 낙선되면 진심으로 위로를 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빌 게이츠를 만나거나 다른 일을 보는 것이 무엇이 급하다고 그렇게 도망치듯이 비행기를 탔는가? 안철수가 김한길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맡은 뒤에 보인 언행도 납득할 수가 없다. 2012년 대선 기간에 국정원 댓글 사건을 비롯해서 국가기관들이 저지른 부정행위들이 명백히 드러났을 때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서 ‘부정선거’라는 비판이 나왔다. 새누리당이 ‘대선 불복’이냐고 으름장을 놓자 안철수와 김한길은 “그것은 당론이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2천여명의 시민이 대법원에 제기한 선거무효 소송은 아예 외면해 버렸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18대 대선후보였던 문재인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보다 훨씬 앞선다고 나오던 수도권의 개표가 많이 남아 있고, 특히 서울의 개표가 42.65%밖에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 ‘패배’를 선언한 것, 그리고 명백한 선거부정을 정치 쟁점화 하지 않은 것은 지금도 문재인의 ‘원죄’로 남아 있다.

“조직도 세력도 없다”는 안철수가 ‘사람들’ 속으로 가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정권교체를 외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당 대표를 맡아야 ‘혁신’이 이루어진다고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심리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는 얼마 전 광주를 찾아가서 호남 민심의 지지를 호소했다. 차라리 대구·경북이나 부산·경남에 가서 박정희 정권이 독재와 장기집권에 악용한 지역감정과 ‘호남 차별’을 극복해야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토요일인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2차 민중총궐기대회에는 5만여명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재야인사와 시민이 참여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문재인을 포함해서 28명의 국회의원들이 꽃을 들고 폴리스라인의 경찰에 맞서 ‘평화감시단’ 역할을 했다. 거기서 안철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문재인과 경쟁적 또는 적대적 관계라 하더라도 당의 중요한 행사에 참여해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지도자가 되겠다는 정치인의 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안철수의 ‘멘토’라고 알려져 있는 한상진(서울대 명예교수)은 지난 5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안철수와 함께 광주 등지에서 혁신토론회를 한 바 있는 그는 다음과 같은 ‘논거’를 제시했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표의 치명적 한계는 자기반성, 즉 책임의식이 전연 없다는 점이다. 대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기득권을 챙기는 것처럼 보인다. (···)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가치판단의 돌연변이가 넓게 퍼질 가능성이 있다.”

한상진의 주장이 안철수의 생각과 일치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총선까지 넉 달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제1야당을 붕괴시키고 강력한 새 정당을 만드는 일이 가능할는지 의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무리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더라도 정의당, ‘천정배 신당 추진세력’ 등과 대연합을 이루어 총선에 나선다면 새누리당의 압승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는 것은 야권을 지지하는 대중에게 미리 패배의식을 심어주는 일이다.

6일 기자회견을 마친 안철수가 ‘칩거’에 들어갈 것이라고 그의 측근이 밝혔다고 한다. 보수적인 뉴스 전문 텔레비전이 야당 전 대표이자 현역 국회의원일 뿐인 그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파에 쏘아 보낼 수 있는 ‘특혜’를 베푼 것은 논외에 붙이기로 하자. 그러나 어딘가에서 문재인의 반응을 기다리겠다는 안철수의 태도는 떳떳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여론의 화살을 맞더라도 ‘사람들’ 속에서 정치를 해야 할 것 아닌가? 

문재인은 안철수가 기자회견을 가진 6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작고한 시인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를 올렸다.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이 시에 나오는 ‘지는 해’는 누구를 또는 무엇을 가리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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