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분열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안철수 세력, 국민회의(천정배 신당) 등으로 쪼개져 내년 4월 총선을 치를 수도 있다. 정당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야권 지지층은 분화된 야당의 현재 모습에서 큰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야권의 위기는 여당의 독주를 부를 수 있다. 독주가 지나치면 우리의 삶을 정치가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떨어뜨린다. 야권의 위기는 야권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최근 펴낸 책 [이철희의 정치 썰전]에서 “고통보다 불안이 더 큰 위협이다. 새누리당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불안하게 한다”고 적었다. “(새정치연합은) 부정에는 능하나 (이렇게 가야 한다는) 긍정의 자기 어젠다가 없다”고 진단했다.
요즘 가장 대중적인 정치논객으로 평가받는 그를 12월18일 만났다. 야권의 상황과 내년 정치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야당 바로세우기’에 관심이 깊은 그는 이란 책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최근 제1야당 내부의 논쟁이 “혁신 대 수구”로 전환하지 못하고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에 머문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분화된 야권, 연대 없으면 필패
‘문재인-안철수 갈등’이 안 의원의 탈당으로 이어졌다. 누구의 책임이 크다고 보나.
쌍방과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말한 대로, 두 사람이 갈라설 정도로 생각이 다르지 않다. 2012년 대선에서 두 사람이 후보 단일화의 대상이었다는 건 정치철학이 다르지 않다는 거다. 똑같이 혁신을 외치다 갈라서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 사람들에게 ‘안 의원이 왜 탈당했을까’를 물으면 선명한 기치와 명분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문 대표가 왜 안 의원을 잡지 못했을까’를 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갈라서지 않아도 될 이유로 갈라섰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더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무협지에 나오는 말처럼 ‘양패구상’(서로 패하여 상처를 입음)이다. 두 사람은 상대의 지지율이 떨어져야 자신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제로섬’이 아니라 같이 상승하고 같이 떨어지는 관계다. 너무 일찍 서로를 경쟁 구도로 인식했다. 판을 잘못 읽었다.
이 소장은 제1야당의 위기 돌파의 해법으로 ‘문재인·안철수·박원순’이 손을 잡는 ‘문·안·박 혁신연대(동맹)’를 일찌감치 주장했다.
문 대표가 ‘문·안·박 연대’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게 있었으나 권력을 나누자고 했으니 진정성 있는 제안이라고 평가한다. 안 의원이 이걸 받았다면 새정치연합 내부 논쟁이 ‘주류 대 비주류’가 아니라 ‘혁신 대 수구’로 바뀌었을 것이다.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영삼’의 분열에서 보듯 야권의 대권 주자가 분열하면 야당이 패배했다. 내가 ‘문·안·박’을 주장한 것은 야권이 이기려면 대권 주자가 분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구도에선 세 사람(문·안·박) 중 누가 (단일) 후보로 나서도 지는 게임이다. 하지만 문·안·박이 판을 바꾸고 야권 지지층을 넓혀 야권이 집권 가능한 세력이란 신뢰를 주면 세 사람 중 누가 출마해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 세 사람이 경쟁을 (야권 지지층을 넓힌) 그때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새정치연합 내부의 낡은 질서는 두껍고 강고하다. 세 사람은 이런 기존 질서에서 자유롭다. 제1야당의 기성 질서를 이루는 그룹에는 대선 주자도 마땅히 없다. 세 사람이 혁신연대를 맺어 기성 질서와의 대충돌을 만들면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안 의원이 ‘문·안·박 혁신연대’를 거부한 건 실책이다. 문 대표에 대한 지나친 경쟁 심리와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가 자신을 주저앉혔다는)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문·안·박 혁신연대가 좌절된 건 두고두고 후회될 만한 일이다.
문 대표도 당의 권력을 쥔 대표이니 더 많은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정치력과 포용적 리더십의 부족이란 한계를 보여줬다.
안 의원의 세력화를 두고,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를 흡수해 야권을 ‘확장’할 수 있다는 평가와 ‘야권 분열’이란 시각이 엇갈린다.
창당이 쉽지는 않을 거다. 내년 총선에서 야권이 참패하면 (분열이란) 부담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안 의원이 조직에 묻힐 때보다 개인으로 움직일 때 더 빛났던 것 같다. 안 의원이 (세력화를 진행하면서) 새누리당 일부 지지층을 흡수해 야권의 마켓셰어(야권 지지층의 범위)를 넓힌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기존 야권 지지층까지 포괄해 모두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분화된 야권은 내년 총선을 어떻게 치러야 할까.
2012년 대선 단일화에서 보듯 ‘1(문재인)+1(안철수)=2’가 아니다. 1.5 정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이 갈등을 겪어서 이제 ‘1+1=2’가 되기 더 힘들어졌다. 지금은 선거 전의 통합보다 야권 연대밖에 없다. 문 대표는 문 대표대로, 안 의원은 안 의원대로 각자 지지층을 넓힌 뒤 그 지지층을 유지하기 위해선 연대가 최상의 방법이다.
선거 직전 연대에 대한 피로감도 있고, 여권에서도 그 점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어디를 봐도 소수파와 진보세력이 집권하려면 연대·연합은 필수다. 연합 없이 독자 집권을 하지 못한다. 연합은 유용한 것이다. 물론 연대를 위한 명분을 유권자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여당은 (제1야당이 종북세력과 연대했다는) 종북숙주론을 들고나와 야권 연대를 공격했는데, 야당이 대응을 잘하지 못했다. 부끄러워하며 소극적으로 연대했다. 단호하게 맞서야 했다. 야권이 담론정치를 잘하지 못한 것이다.
연대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은 필패다. ‘(분열해서) 다 죽을래?’라는 야권 지지층의 목소리가 심해질 것이다.
‘대안야당’과 ‘선명야당’은 같은 말
문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당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문 대표의 혁신이 동의를 얻으려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자기 세력부터 쳐내야 한다. ‘친노 세력’의 물갈이부터 시동을 걸어야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다. (문 대표 쪽의) 일부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약하다. 자진 사퇴이든, 문 대표가 용퇴를 시키든 2선 후퇴 또는 백의종군시켜야 한다. 그래야 공천 학살을 걱정하며 문 대표를 압박하는 비주류의 명분이 없어진다.
혁신을 기조로 삼아 기존 의원들에 대한 물갈이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을) 나갈 테면 나가라’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나중에 공천 탈락자가 당을 나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내부 갈등 때문에 당을 나가도록 관리하는 건 좋지 않다. 그리고 (총선에서 이기는) 혁신으로 가려면 ‘어젠다 세팅’이 중요하다.
[이철희의 정치 썰전]을 보면, ‘반사이익에 기대는 반대 노선’이 야당을 2등으로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박살이 난 야권이 2010년 지방선거의 승리로 부활한 것은 ‘무상급식’이란 의제가 먹혀서다. 2012년 총선에선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쟁점화했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상징하는 바가 크다.
정치·도덕적 이슈는 메인이 아니라 보조다. 먹고사는 문제, 즉 사회·경제 프레임으로 선거 쟁점(구도)을 전환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처럼 어려운 말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이슈로 끌고 가야 한다. ‘이걸 해야 한다, 그래야 나아진다’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선명야당’과 ‘대안야당’은 같은 말이다. (여당에 대비되는) 대안을 주면 야당이 선명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매주 국회와 야당을 공격하고 있다. 왜일까? 정부의 성과가 없어서다. 경제는 0점에 가깝다. 경제는 집권세력의 가장 약한 고리다. 집권여당은 경제문제가 쟁점화하면 안 되니 국회와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며 선제공격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왜 선거의 여왕일까? 야권에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어주지 않거나, 여당에 덜 나쁜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 선거는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만들어지는 ‘프레임 싸움’이다. 씨름으로 치면 박 대통령이 바로 그 샅바 싸움을 잘한다. 여기에 말리면 안 된다.
정치가 보통 사람의 무기가 돼야
이 소장은 “실력은 없고 진영(대결)만 남는 진보는 최악”이라고도 지적했다.
진영 대결로 가는 것은 박 대통령의 전략에 말리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집권 3년간 경제가 좋아졌느냐’고 물으면 다수가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찬반’으로 가면 반대가 줄어들 것이다. 보수·영남이란 두 개의 큰 덩치가 박 대통령을 지탱하고 있어서다. 이 두 덩치는 투표율도 높다.
총선이 있는 내년 정국을 어떻게 예상하나.
박 대통령은 자기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년 총선 때 적극 개입해 ‘박근혜 선거’로 치르려 할 것이다. 만약 여당이 개헌이 가능한 의석(180석 이상)을 얻으면 정권 연장을 위해 이원집정부제(대통령은 외교·국방을 대표하고, 집권당에서 배출되는 총리가 일반 행정을 맡음)나 의원내각제(집권당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총리 배출)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여당에서 강력한 대권 주자가 있으면 (대통령제를 버리는) 개헌을 반대하겠지만, 현재 여론조사에서 여권 주자 1위를 달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필승 카드라고 볼 수 없다. 만약 여당이 총선에서 완승하지 못한다면 선거법 위반 수사 등 사정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다.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이 공천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정치 지형의 변화를 봐야 한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중도를 포괄하는 제3세력의 공간을 확보하면 새누리당에서 유승민을 배제하기 어렵다. 유 전 원내대표가 그쪽(안철수)으로 이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분열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많다. 정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정치가 여의도와 국회에 박제돼 있다. 정치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변혁적 힘을 갖고 있다. 복지국가도 정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그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통해 사회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열망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정치가 제 기능을 하려면 진보가 유능해져야 한다. 진보가 기성 질서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는 가진 자의 무기가 되고 있다. 정치가 보통 사람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