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은경기자]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의 대표로서 전국의 민중 및 시민단체들이 거의 망라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 정책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며 50 여일이 넘는 기간동안 거리의 교수, 광장의 교수였던 송주명.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광장으로 향합니다. 국민행동의 회의, 전략점검, 토론회 준비, 촛불행동, 교수 및 전문가들의 전략적 토론회 개최..그리고 새로운 상황을 열어가고자 하는 끝없는 토론...하루 일과의 끝은 인사동의 찻집에서 새벽에야 맞습니다" 라고 회고하는 송주명.
송주명이 당시에 스스로 되묻는 질문은 “이 고생은 왜 하는가?” 였다고 한다.
경기도교육감 송주명 민주진보 후보는, 경기교육혁신연대에서 민주진보단일 후보로 선출되었다.
5.14 오늘은 고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되던 날이다.
그런데 이 날을 송주명 후보가 자신의 트위터에 그 날을 회고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기각일,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4년전, 오늘(5/14)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된 날입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무정지 63일만에 업무에 복귀한 날이기도 합니다.
탄핵 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탄핵에 분노하고 부패한 수구정치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패정치세력의 탄핵소추!! 저는 일본 출장길 공항에서 이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정의를 저버린 야합 국회의 처참한 몰골 그 자체였습니다. 일주일 출장후 저는 엄청난 자제력을 갖고 있지만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행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87년 광장으로, 광장으로 향해갔듯이, 저는 귀국하자 마자 광화문으로 향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의 대표로서 전국의 민중 및 시민단체들이 거의 망라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 정책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50 여일이 넘는 기간동안 저는 거리의 교수, 광장의 교수였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광장으로 향합니다. 국민행동의 회의, 전략점검, 토론회 준비, 촛불행동, 교수 및 전문가들의 전략적 토론회 개최..그리고 새로운 상황을 열어가고자 하는 끝없는 토론...하루 일과의 끝은 인사동의 찻집에서 새벽에야 맞습니다. 제 스스로 되묻는 질문은 “이 고생은 왜 하는가?”였습니다.
저는 위기 정국일 때마다 거의 모든 때 ‘광장’에 서 있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80년의 광장, 87년의 광장, 미선효순의 광장,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의 광장, 광우병의 광장, 그리고 박근혜 퇴진의 광장...'광장'은 살아 있는 사람의 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 때로 분노도 있고 때로 슬픔도 있지만, 광장에는 사람이 있기에 언제나 희망이 있었습니다.
14년 전 오늘 5월 14일, 저는 그 환희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광장에 모인 시민의 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민의 힘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지킨 날, 그 날이 오늘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기각일을 맞이하면서, 그 당시 광장에 섰던 저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던 그 때가 행복했습니다.
보고싶은 고 노무현 대통령!
저 송주명, 광장의 시민과 함께 오늘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