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향해 가는 걸까?
역설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가려진 대한민국에서 역동성을 찾아본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무엇을 하고는 있다는 느낌은 갖고 있으나 정작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체를 지닌 형태로 꺼내 보이는 게 그리 녹녹하지 않다.
대통령 탄핵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 선지도 1년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탄핵 이전의 느슨한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했던 광기 어린 끼리끼리 패거리 문화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분위기 탓도 무시 할 수 없으리라는 막연함은 든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 미국 패권주의가 던지는 의미는 우리 국가와 사회가 감당하기에 그리 만만한 사안이 아닐 뿐 더러 우리와 직, 간접으로 수교를 나누고 있는 국가들과도 전략적으로 무엇을 해보기에 사실상 힘이 부치는 게 맞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런 현실 타개를 위해 정부는 국가와 국민이 외부로부터 받고 있는 위협과 위험에서 탈피 할 수 있는 안심이라는 거대한 보호막을 서둘러 준비하거나 철저한 방어막을 펼쳐내야 하는 데 이 정답을 찾기가 수수께끼 같다는 게 현실이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기에 기댄 체 총체적인 폭탄 돌리기에 바쁘다는 지적을 왜 들을 까?
남, 북 문제를 풀어내려 반세기 넘는 노력을 기우려 왔으나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낙아 채지 못하고 번번이 빗나갔던 과거 단절을 통해 확실한 매듭이 풀어지려하자 정치권은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참으로 발칙한 상상을 사실인 듯 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국회는 개점휴업을 밥 먹듯 하면서도 갑 질에는 인색 할 정도로 양보 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방탄 국회, 막말 전쟁까지 선포하는 지경에 처해 있어도 누구하나 책임지겠다는 국회의원은 없고 갑 질 놀이 구상에는 여, 야 가리지 않고 짬짬이 시대를 누린다는 것이 공통 된 시각이다.
국회가 이 정도 인데 행정부는 어떠한가.
말 그대로 문재인 대통령 그림자에 숨어 정부 정책에 관한 시시비비의 모든 걸 희석 시켜주는 상황 반전을 통해 일벌이지 않고 보신주의로 있으면 되는 지경에 처해 있으면 된다는 공직 사회에서 만연한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다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 이상을 더 간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난다는 공직 사회로부터 나오는 자조는 가득이나 삶의 질적 만족도는커녕 그나마 사회를 지탱해주었던 활력마저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이러한 현실에 그나마 희망을 나타낼 수 있는 사회 정의 최후 보루 사법부마저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하는 목소리만 들린다.
법의 잣대가 판사 독자적인 개개인의 양심과 정의 그리고 정해진 법률에 따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물에 의해 주도적인 치밀한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그저 기막힐 따름이다.
사법부가 누구의 지시도 필요 없이 알아서 정권에 맞춰서 무언가를 해낸다는 게 일부이기는 하겠으나 참으로 사법부 전체를 부정토록 만드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닐 까 하는 염려다.
사법부 불신은 이미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통해 또는 그 주변에 있었던 실세라는 어영부영도 대우를 원하면 들어줘야하는 현실이 됐고, 사법부 경시 풍조를 이들에게만은 치외법권으로 예외를 인정하면서 일반인들은 어림도 없다는 이중적 차별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질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뛰어난 리더십에 감춰진 우리 정부와 사회의 이러한 자세는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닐뿐더러 있어서도 안 되는 적폐 중 적폐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좀 더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주변이 알아서 힘을 모아주는 경우는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와 국민의 행운이 될 일이 하는 아쉬움으로 정리하기엔 너무 심각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정부는 이제라도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의 모든 역량을 쏟아내야 하고, 국회는 대승적 차원의 협조와 국익을 위한 진일보 된 반성과 진취적 기상으로, 사법부는 사법부답게 맡은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 뜨거운 여름을 녹여내는 지혜가 우리 사회를 시원하게 할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일이 될 반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