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이석기 회합에 대해
당 차원에서 선 긋지 못한 건 패착
국민 마음 얻으려는 노력 부족”
여론조사의 함정도 영향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헌재의 결정이 ‘국민의 선거에 의한 정당 선택’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짓밟은 독단이자 폭거라고 바라보는 진보 진영에는 뼈아픈 대목이다.
해산 결정에 대한 찬성 여론은 대체로 6 대 3 정도로 반대를 압도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19~20일 조사에선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찬성한다’가 63.8%로 ‘반대한다’(23.7%)를 크게 앞섰다. <엠비엔>(MBN)이 리얼미터에 맡겨 19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통합진보당 해산이 ‘올바른 결정’이라는 응답이 60.7%로 ‘무리한 결정’이라는 응답(28.0%)을 배 이상 웃돌았다. 여론조사 기관인 ‘휴먼리서치’가 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해산 결정에 대해 54.6%가 ‘당연하다’는 의견을 보였고 ‘무리하다’는 의견은 35.5%였다.
이런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두가지를 지목하고 있다. 우선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실패, 그리고 여론조사의 함정이다.
우선 다수의 국민들이 해산에 찬성할 만큼 통합진보당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품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헌재 결정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국민 다수가 통합진보당을 외면하는 까닭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통합진보당이 현실 정치에서 실패한 탓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남북분단 상황에서 ‘종북’으로 틀 지워지는 행위와 이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용인 폭이 좁고 정서적 반감이 존재한다는 건 엄연한 현실”이라며 “현실 정치 세력으로서 통합진보당이 당내 극단적 그룹의 행위와 분명한 선긋기에 나서지 못한 건 패착”이라고 말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적어도 ‘이석기 회합’(RO 모임)에 대해선 당 차원의 분명한 비판이 나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랬다면 국민 다수가 통합진보당 자체를 북한 추종 세력과 동일시하는 사태는 막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김욱 배재대 교수(정치학)도 “대중정당으로서 통합진보당이 국민들의 마음을 잡는 노력에서 실패한 부분이 있었다”며 “헌재 결정이 정당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앞으로 진보 세력이 새겨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세 여론조사 모두 헌재 결정의 복잡한 정치적 의미에 대해 제대로 질문하지 못했다는 조사 자체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헌재 결정에 대한 단순 찬반에 가까운 물음을 던져 응답자들은 정당 해산이라는 유례없는 결정의 포괄적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단순히 통합진보당이 해산될 만하냐 아니냐는 정서적 판단에 따라 선택했으리라는 것이다. 이 여론조사에는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한 찬반 외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가 녹아 있다는 뜻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통합진보당이 해산돼야 할 만큼 싫다는 판단과, 헌재라는 국가기관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는 게 타당하냐는 판단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라며 “만약 ‘통합진보당이 선거가 아닌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식으로 질문을 던졌다면 상당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