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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KBS 세 젊은 기자의 눈부신 취재와 특종보도..
기획

천안함, KBS 세 젊은 기자의 눈부신 취재와 특종보도

신상철 (前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기자 입력 2018/11/09 11:17 수정 2018.11.10 22:19
천안함 ‘충돌’에 대하여 ③

천안함 KBS 황현택 기자의 녹취록

‘제3의 부표’ 특종보도의 주역 KBS 황현택 기자

천안함의 진실이 온전히 드러나면 KBS 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세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세 기자는 한주호 준위 사망 직후 백령도에 들어가 ‘의문의 부표’에 관한 취재를 하였으며 그 결과 ‘천안함이 아닌 또 다른 함선이 가라앉아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의 취재가 없었다면 천안함 침몰 사건의 진실은 더 오랜 세월 미궁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세 기자는 방통위에 제소되어 불려다니며 조사와 진술로 시달려야 했고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KBS는 정부와 국방부의 강력한 압박에 못 이겨 해당 보도를 하루 만에 사이트에서 내리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세 기자는 다시 복귀하고 부분적으로 명예를 회복하였으나 세상은 그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쏟았던 노력보다는 그들이 처벌받았던 사실만을 기억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KBS 황현택 기자에게 1심 법정의 증인으로 나와 진실을 말해주기를 여러 차례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곤란해했고 KBS 회사측에서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명박 치하의 KBS는 운신의 폭이 너무나도 좁았으며 최시중이 장악하고 있던 방통위의 위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가하며 막강하게 언론을 장악(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 2012년 초 황현택 기자를 만나 다시 간곡히 요청을 하니 황현택 기자는 고민 끝에 법정진술이 아닌 서면진술로 하면 좋겠다며 그가 취재한 내용을 녹취록과 함께 공증 후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2012년 2월 21일 관련서류 일체에 대해 ‘법무법인 두레’에서 공증하여 1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KBS 취재팀의 백령도 체류 및 취재기간

한주호 준위가 작업 중 사망하자 KBS 백령도 특별취재팀(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기자)은 2010년 4월 1일(목) 백령도에 입도하여 4월 10일까지 취재를 합니다.

그리고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에 접근하게 됩니다.

KBS 취재팀과 UDT 대원들과의 긴밀한 관계

황현택 기자는 취재를 위해 UDT 대원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상당한 신뢰관계를 쌓았다고 진술합니다.

UDT 동지 회원들의 활동 내용

황현택 기자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UDT 대원들의 활동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1심 재판 때 법정에 출석한 증인 이헌규 씨는 1차 및 2차 모두 참여하였던 것으로 증언한 바 있습니다.

UDT 동지회 1차 활동(총 18명)
• 3월29일 7명 백령도 헬기로 입도 (이흥규, 김진호, 장승권 씨 등)
• 3월29일 23시40분, 5명 장비 갖추고 추가 입도
• 3월30일 6명 배편으로 추가 입도 3월30일 오전, 함수 수중 탐색 활동
• 3월30일 오후 3시 쯤 故 한주호 준위 사망
• 3월31일 UDT 동지회원 18명 전원 철수
UDT 동지회원 2차 활동(총 17명)
• 4월 2일 UDT 동지회원, 2차로 백령도 입도
• 4월 3일 오전 8시, 함미수색 준비.. 기상악화로 중단(KBS 촬영)
• 4월 3일 오전 10시, 용트림 바위에서 故 한 준위 추모제 (KBS 촬영)
• 4월 5일 오전 수색 중단, 인양 전환되면서 전원 철수   [황현택 기자 제출 자료]

‘제3의 부표’ 명칭

‘제3의 부표’라는 명칭은 KBS취재팀이 붙인 이름입니다. 황현택 기자는 기존에 설치된 함수(제1부표), 함미(제2부표)와 구분하기 위하여 ‘제3의 부표’라 칭했다고 합니다.

함수 및 함미는 각각 3.28 오후 8시경(함수, 제1부표 설치) 및 3.28 오후 10:30분경(함미, 제2부표 설치) 발견됩니다. 그러나 UDT 대원들이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지점으로 지목한 제3의 부표는 천안함 함수, 함미가 발견된 다음 날인 3월29일 한주호 준위가 어군탐지기로 발견하여 한 준위가 직접 설치했다는 사실이 예비역 UDT 이헌규 씨의 증언을 통해 밝혀집니다.

(6) ‘제3의 부표’는 누가 언제 설치하였나?

함수와 함미는 사고 이틀 후인 3월 28일 저녁 차례대로 발견되고 제1부표(함수)와 제2부표(함미)가 설치됨으로써 위치는 확고히 정해진 것입니다.

[연합뉴스]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28일 오후 7시57분께 함수에 위치표식 ‘부이’를 설치한 데 이어오후 10시31분께 옹진함이 음파탐지기로 함미를 찾아 오늘 오전 9시께 ‘부이’를 설치했다”며 “함정의 정확한 위치가 확보된 만큼 이에 대한 탐색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0-3-29

그런데 그 다음 날인 3월 29일 한주호 준위는 또 다른 수색에 나섭니다. 그리고 어탐 (어군탐지기)을 이용하여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물체(대형구조물)를 발견한 뒤 그곳에 한주호 준위가 직접 부표를 설치합니다.

한주호 준위는 또 하나의 부표(제3의 부표)를 제1부표(함수) 및 제2부표(함미)와는 분명히 다른 위치에 설치하였으며 날짜 또한 함수, 함미보다는 하루 뒤인 3/29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찾기 위해 한주호 준위는 어군탐지기를 작동하면서 수색을 하였습니다. 해난구조대가 발견한 함수, 어선이 발견하고 웅진함이 확인한 함미와는 확연히 다른 내용인 것입니다.

UDT 대원들은 왜 ‘제3의 부표’를 함수라 했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주호 준위가 예비역 UDT대원들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루 전 3/28일 저녁 함수를 발견했기 때문에 함수가 어딘지 모를 리 없는 한주호 준위가 UDT예비역에게 ‘제3의 부표’위치를 ‘함수’라 말했기 때문입니다.

한 준위가 왜 함수가 아닌 곳을 함수로 말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복수의 UDT 대원들이 모두 제3의 부표 위치를 함수로 인지한 것을 보면 UDT대원들이 잘못 들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한주호 준위가 사실과 다르게 그곳이 함수가 있는 위치라 말했던 것이지요.

황현택 기자가 취재한 녹취록에는 1심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헌규 씨와의 통화내용 외에 정철 UDT 대전지회장과의 대화가 담겨 있는데, 대화의 내용을 보면 정철 지회장 또한 그곳을 ‘함수’로 알고 있었고, 심지어 크레인이 세워진 곳(함수)을 함미로 알고 있을 정도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첨부 6] 정철 UDT 대전지회장 전화녹취 (2010. 4. 6 저녁)
기자 : 용트림 바위에서 추도사에도 나왔었고 한 준위가 세운 부표가 맞아요? 한 준위님이 사망하신 거예요?
정철 : 네. 함수 부분에요.
기자 : 거기가 함수 부분이에요?、
정철 : 네.
기자 : 함수 부분에 UDT 동지회 분들이 들어갔다 오신 적 있으시죠?
정철 : 네.
기자 : 함수 인양하겠다고 크레인이 세워졌잖아요. 크레인 세워진 위치가 용트림 바위 바로 앞이 아니고,백령도하고 대청도 사이에 해상으로 3~4킬로 떨어진 곳에 세워졌거든요?
정철 : 거기 함수가 아니고 함미 아닙니까? 그쪽이?  [황현택 기자 제출 녹취록]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함수, 함미 그리고 제3의 부표 위치 분석

용트림 전망대에서 대청도 쪽을 바라보면 <함수크레인. 제1부표>가 있으며, 우측 해안 능선을 바라보면 <함미크레인, 제2부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제3부표는 <함수크레인, 제1부표> 보다 훨씬 가깝게 있습니다.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 - 2010. 4. 3

2010. 3. 29 백령도에 입도한 UDT 예비역 대원들은 3/30 한주호 준위가 사망하는 사고를 당하자 3/31 전원 철수합니다. 그리고 4/2 다시 2차로 백령도에 입도하여 4/3 오전 10시 용트림 전망대에서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를 갖습니다. 용트림 전망대는 백령도 남쪽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입니다.

그런데 추모제에서 추모사 낭독을 맡았던 정철 UDT 동지회 대전지회장은 뼈 있는 발언을 합니다.

화면 자막에는 <부표가 있는 곳 앞에서 추도사를 읽겠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동영상을 실제로 돌려보면 정철 지회장은 <부표 설치한 곳을 바라보며 추도사를 낭독하겠습니다>라며 추도사를 읽기 시작합니다.

<부표 설치한 곳>은 <한주호 준위가 부표 설치한 곳>을 의미하며 용트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부표는 <제3의 부표>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용트림 전망대에서 함수의 부표는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도 않을 뿐만아니라, 함수 부표는 한주호 준위가 설치하지도 않았습니다.

질문지에서 피고인측 변호인은 황현택 기자에게 혹시라도 용트림전망대에서 함수 크레인에 설치된 부표가 잘 보이는 것은 아닌지 질의를 하였습니다만 황현택 기자는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고 망원렌즈를 통해 가능한 수준”이라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회의록

KBS 취재기자들이 ‘제3의 부표’에 의문을 가진 계기는?

KBS 취재팀의 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기자가 ‘제3의 부표’에 관한 취재에 돌입하게 된 계기는 ‘크레인’ 때문이었습니다. UDT 동지회 외원들과 백령도에 함께 있을 당시 KBS 취재기자들은 4/3 추모제에 이르기까지 단순 취재에 열중하였으며 일체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0년 4월 5일, <구조>에서 <인양>으로 전환되면서 UDT 대원들이 백령도를 떠났고, 공교롭게도 그날 함수와 함미가 가라앉은 지점에 크레인들이 세워지는데, 그 위치를 보니 그때까지 UDT 대원들이 잠수를 하고, UDT 대원들 스스로 ‘함수’라고 지목한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함수 크레인이 세워지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KBS 기자들이 합리적인 의심과 함께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하였던 것입니다.

그에 따라 상황을 다시 정리한 KBS 취재기자들은 4월 6일 정철 UDT 대전지회장, 이헌규 전 UDT 대원 그리고 최영순 소령에게 전화를 통해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 내용을 취합하여 4월 7일 보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KBS 보도내용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소 및 심의과정에서 <박승규 KBS 보도국 사회팀장>과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가 출석하여 증언함으로써 더욱 소상히 밝혀졌습니다.

○ 박승규 KBS 보도국 사회팀장 (2010. 5. 4. 방통위 제9차 회의)

제가 간단하게 취재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저희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故 한주호 준위가 30일에 사고를 당하고 나서 4월 3일 백령도에서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추모제를 용트림 바위에서 UDT 동지회가 가졌는데, 용트림 바위 앞에 약 2km 정도 떨어진 빨간 부표가 있는 곳에서 “저기가 故 한주호 준위가 순직한 곳이다.”라고 하면서 거기를 향해서 추모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UDT 동지회 회원들이 “저 부표가 故 한주호 준위가 발견해서 설치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우리가 녹취를 했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조금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함수, 함미의 위치 같은 것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시점이었고,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시점이었고,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기로는 함수에서 故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 앞에 있는 부표에서 사망했다고 추모제를 지내는 자체에 조금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故 한주호 준위 사망 후 추모제를 지내고 4월 4일에 구조에서 인양으로 작업방식이 전환됐습니다. 그러면서 4월 5일 크레인이 들어왔는데, 크레인이 함미의 위치와 함수의 위치 두 곳에 설치가 됐는데 UDT 동지회원들이 이야기하는 용트림 바위 앞 부표가 설치된 곳에는 크레인이 안 왔어요.

그래서 기자들이 추모제를 지낸 UDT 회원들을 상대로 ‘故 한주호 준위 사망한 곳이 저기이고, 함수의 위치가 있는 곳은 크레인 위치가 있는 곳과 다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하는 과정에서 녹취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UDT 회원들은 용트림 바위 앞에 있는 부표 위치를 아마 함수 위치로 알고 진술을 했던 것 같고,

우리도 그 말이 다수를 상대로 추모제도 지내고 또 현장 수중작업 잠수를 했던 분들도 그 증언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해군은 함수 위치가 저기라고 발표했는데 현장에 작업을 했던 UDT 동지회원들은 ‘제3의 부표’가 故 한주호 준위가 작업했고, 사망했던 지점인 곳이고, 거기에는 구조물이 있는 것 같다라는, 말하자면 의문을 제기하는 리포트를 하게 된 과정입니다. 방통위 제9차 정기회의 Page 5, 6 그리고 황현택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 (2010. 5. 4. 방통위 제9차 회의)

4월 3일 추모제를 지낼 때, 지금 상황과 한 달 전 상황이 약간 다릅니다만, 백령도에 있는 모든 항구의 배는 기자들을 태우고 밖을 나가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리고 어떤 의문이 생겼을 때 사실 관계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채널이 굉장히 제한적이었다는 상황을 모두에 설명드리겠습니다.

현장에 제가 간 것이 4월 1일이었는데 망망대해이기 때문에 군에서 발표한 함수, 함미 좌표라는 것이 뭍에서는 사실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4월 3일 용트림 바위에서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를 지낼 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UDT 회원 열일곱 분께서 오셔서 추모제를 지냈는데 그 추모제 과정에 저희가 개입한 바 없습니다.

그 분들이 하시는 추모제 자체를 뉴스로 보도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화면에 담았던 것들이 제출되어 있는 자료들입니다. 그 화면을 보면 저희가 개입하지 않고, UDT 동지회원 분들께서 그 부표를 보면서 저쪽이 함수이고, 저쪽이 故 한 준위가 부표를 설치했다는 그림들이 나옵니다.

그러고 나서 이틀 정도 있다가 크레인이 들어오고 나서, 크레인이 들어왔을 때 UDT 동지회원 분들은 이미 백령도를 떠나신 상황이었습니다. 크레인이 들어오는 날 UDT 동지회원 분들은 백령도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크레인이 왜 저희가 본 적이 없는, 기존에 함수라고 생각하지 않은 지점에 들어와 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UDT 동지회원 분들한테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실제로 본인이 직접 들어가서 함수를 봤다라고 하시는 분들한테 전화를 드려서, 아까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한테 화를 낼 정도로 확인과 확인을 거듭했었습니다.

제가 바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도 백령도 앞에 있는 부표와 군이 발표한, 함수로 확인된 위치에 서 있는 부표와는 한눈에 보기에도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정예의 UDT 동지회원 분들이 직접 작전을 수행했고, 물속에 들어갔다 오신 분들은 저보다 좀 더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방통위 제9차 정기회의 Page 8, 9

○ 이진강 위원장
- 그런 의문점을 가지고 4월 7일 방송의 15번째, 16번째 아이템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
- 크레인이 현재의 함수위치에 들어선 4월 5일부터입니다.

방통위 제9차 정기회의 Page 21

○ 백미숙 위원
- 그러면 UDT 동지회원인 이○○ 씨가 잠수해서 나왔던 곳을 ‘제3의 부표’라고 진술을 한 것은 4월 3일인가요, 4월 4일인가요?

○ 박승규 KBS 보도국 사회팀장
- 4월 3일 추모제에서 우연히 그 사람들이 다 ‘저기가 故 한주호 준위가 작업했던 곳이고, 부표 설치했던 곳이다’에서 의문이 출발됐던 것입니다.

○ 백미숙 위원
- 그리고 현재 UDT 동지회원은 그곳을 함수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그래서 함수에 들어갔다 나왔고, 그러니까 제3의 부표지점에서 잠수를 해서 무언가 조사했다는 것이고, 그 분이 작업한 지점을 그 분 본인은 함수지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4월 3일에 잠수한 것이고, 실제로 전화 인터뷰를 한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6일이었는데, 그 사이에 일어났던 현장의 일들을 그 분은 모르기 때문에, 즉 4월 5일에 해군이 이야기한 새로운 함수지점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
- 그렇습니다. 방통위 제9차 정기회의 Page 42

UDT 동지회 회원들의 고충과 딜레마

2010년 4월 7일 KBS 보도가 나간 후 UDT 동지회 회원들이 정부나 국방부로부터 어떠한 곤욕을 치렀을 지는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 국방부(해군)의 초강경 대응 - 국방부는 KBS측에 항의하며 정정보도를 요구합니다. KBS는 관련 기사를 내렸음에도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소됩니다.
● UDT 동지회의 KBS 방문 항의 - UDT 동지회는 보도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KBS 보도국을 방문합니다. 비록 유감을 표하는 정도였다고는 하나 방문을 받은 KBS입장에서는 압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 제보자(UDT 동지회 회원)와의 통화 - 황현택 기자에게 “굉장히 많이 힘들다”라고 말한 제보자는 황현택 기자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UDT 대원이었을 것입니다.

제3의 부표 아래에는 천안함 함수가 아닌 ‘대형구조물’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한주호 준위는 함수가 아닌 그곳에서 모종의 작업을 수행하던 중 사망하였습니다.

제3의 부표 아래 가라앉은 대형구조물의 실체와 천안함과의 충돌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다음 글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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