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편은 이 기회에 담배를 끊겠다고 하지만 절대 못 믿는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만난 주부 양모씨(43·여)는 동네 편의점과 마트를 돌며 담배를 한 갑씩 사 모으고 있었다. 양씨는 "끊지도 못할 담배를 미리 사두지도 않으니 차라리 내가 사서 한 갑당 1000원씩만 붙여 남편에게 팔겠다"고 말했다.
#2 "분명히 쟁여놓고 안파는 거라고 이거." 영등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이모씨(52)는 목소리를 높였다. 벌써 세 군데 편의점을 들렀지만 담배를 사지 못했다는 이씨는 "편의점들이 내년 1월1일부터 비싸게 팔기 위해 담배를 숨겨두고 있는 것"이라며 "담뱃갑 아래쪽에 보면 제조일자가 붙어 있는데 이를 확인해 내년에 2014년도 제조 담배를 파는 곳은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격분했다.
담뱃값 인상을 앞둔 연말 소매점에서 담배가 품절되는 '담배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담배 판매를 하루 1인1갑으로 한정한 편의점이 등장했고 애연가들은 편의점을 돌며 사재기에 나서기도 했다. 담배를 팔지 않는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30일 오후 서울 곳곳의 소매상의 담배 판매대는 군데군데 이가 빠진 것처럼 비어 있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김모씨(25)는 "허니버터집 대란 때문에 고생하던게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는 담배대란"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술 취한 할아버지들의 경우 오셔서 역정을 내시고 가신다"며 "욕설도 많이 듣고 있다. 담배가 더 안 들어오는데도 손님들은 숨겨놓고 안 파는 것 아니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C편의점 고객센터 관계자는 "담뱃값 인상 소식에 고객들도 담배를 많이 찾고 각 점포 점주들도 발주를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라 물류센터에서도 담배 물량이 달리고 있다"며 "인기 품목의 경우 품귀 현상이 더 심하고 담배를 팔지 못하는 점주들도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연가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직장인 홍모씨(31)는 "분명 12월 31일 자정이 넘어갈 때 창고에서 담배를 꺼내다 판매대를 채우는 곳이 있을 것"이라며 "말일 밤 편의점들을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매점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서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지난 28일 밤 서울 관악구의 한 편의점에서는 담배를 달라며 행패를 부리던 남모씨(35)가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종업원이 어떤 종류의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을 뿐인데도 만취한 조씨가 담배를 안 판다며 행패를 부렸다"고 설명했다.
일부 사재기에 나선 경우도 있다. 배모씨(28)는 지하철역 내 소매점에서 담배 2갑을 샀다. 배씨는 "정부에서 사재기 방지 목적으로 담배 판매를 1갑씩밖에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현금을 가져다주면 다 준다"며 "담배 끊으려고 보조기구도 샀고 최근 해외여행 갔다가 들어올 때 면세점에서 일부러 담배도 안 샀지만 막상 담뱃값 인상이 이틀 남으니 불안해져서 결국 담배 사재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담뱃값 인상 소식에 금연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마포구에서 만난 직장인 주모씨(29)는 "31일까지만 딱 피우고 끊으려고 했는데 최근 해외에 다녀온 직장 동료가 담배 두 보루를 선물했다"며 "공짜 담배가 생겨 반갑지만 금연을 결심한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한 갑씩 선물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