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뉴스프리존=소설가 한애자]“잠깐 십 분 정도만 기다려주세요. 나갈 채비를 준비해야죠.”
데이트 받았다. 사랑하는 그에게! 애희는 설레는 가슴과 함께 옷장을 열어 보았다. 붉은 장미가 수놓아진 레이스 천으로 된 빨간색 원피스를 입었다. 언젠가 서울에 있는 친구와 명동거리를 쇼핑하다가 너무나 입고 싶어서 고가를 치르고 샀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입기에는 너무 화려하여 입지 못하고 장롱의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것이다. 그 후 그 옷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입게 되었다.
애희 자신에게 특별한 날, 드디어 장밋빛 레이스 무늬의 원피스를 입어보았다. 거울 앞에 선 모습이 곱고 예뻐 보였다. 귀에는 하얀 진주 귀고리를 착용하였다. 그리고 검정색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들었다. 잠시 후, 상현도 양복차림은 아니지만 잠바 안에 넥타이를 하여 남방차림과 청바지차림의 인상은 사라지고 그런대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 모습이다. 상현은 애희에게 그윽한 사랑의 미소를 보냈다.
그들은 읍내의 소극장에 들어섰다. 한창 상영 중인 007 영화 외에는 별로 볼만한 영화는 없었다. 그들은 작품성 있는 영화를 본다는 것보다, 서로 함께 한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두 사람은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정말 저녁 사주시는 거죠!”
“그럼요, 오늘은 이렇게 멋진 애희 씨의 모습에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까!”
“오늘처럼 늘 다정했으면 좋겠어요!”
애희는 얼굴을 붉혔다.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애희에게 집중되었다. 마치 잘생긴 선남선녀를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민상현은 애희가 자신의 애인이라는 확신을 하며 자랑스럽고 흐뭇하게 여겼다.
“쌍화차 친구, 뭘 드시고 싶은지…….”
그는 메뉴판을 훑어보며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매우 활기차고 유쾌하게 보였다.
“쌍화차 친구! 비프스테이크가 어떨까!”
“좋아요!”
왜 멋없이 쌍화차 친구, 쌍화차 친구 하는지 얄미웠다. 좀 분위기 있게 ‘애희 씨!’ 하면 안 될까? ‘쌍화차 친구’로 어색한 분위기를 소화하는 것처럼 여겼다. 그는 ‘쌍화차 친구’를 노래하듯, 말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첫 머리에 붙였다. 그는 웨이터를 부르고 식사를 주문하기 시작하였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그는 애희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애희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아버님께서요. 어디를 가나 사랑 받고 사랑하는 여자가 되라고 그렇게 지었다나요!”
“맞아요. 참, 애희 씨 분위기와 맞는 이름이군요. 잘 지었군요. 애희! 애희! 애희! 참 예쁘고 좋은 이름이군!”
“그런데 그 좋은 이름 놔두고 왜 자꾸 ‘쌍화차 친구’라고 하세요?”
“애희, 애희……, 참 좋다…….”
이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배가 고팠는지 말없이 맛있게 먹었다. 애희는 천천히 씹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그리운 얼굴을 또 언제나 보나? 늘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타나는 사나이! 늘 진리를 찾는 방랑자 같은 저 아름다운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아마 또 서울에 올라가면 그의 온몸이 바스라질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서울에 그렇게 자주 가셔야만 되나요?”
“종철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죠.”
“원래 친구였나요?”
“아뇨. 나와 절친한 친구의 친구였죠. 몇 번 본 적도 있지만 의기가 있고 총명한 학생이었지요. 그는 나의 친구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선량한 아들이잖아요!”
“그래도 여기 학생으로서 충실해야 할 텐데요.”
“이 정치판 속에서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현실은 너무 이지러져 있고 암담합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자! 우리 일어나서 마곡사로 한번 가 볼까요?”
그들은 별다른 대화 없이 가까운 마곡사로 향하려 하였다. 그는 마곡사로 향하는 시외버스터미널의 공중전화부스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서 모이기로 했다고? 명동성당? …… 응, 그래, 지금 곧바로 갈께.”
그는 매우 다급한 표정과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애희 씨, 미안합니다. 저 곧바로 서울로 가야 할 일이 생겨서요!”
그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에게 애희를 하숙집 주소를 알려주고, 잘 부탁한다면서 요금을 지불하였다.
“무슨 일인데요?”
할 수 없이 택시에 몸을 싣고 하숙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싱겁고 분위기 없는 첫 데이트였지만 애희의 가슴은 기쁨과 행복으로 넘쳤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쑥스러우니까 자꾸 쌍화차 친구, 쌍화차 친구 할 뿐이야!’
현관 대문 쪽으로 들어오는데, 호만오가 방문을 활짝 열고 카세트의 볼륨을 높이고 문턱에 걸터앉았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애희는 오늘 그와의 첫 만남이 냉랭한 ‘쌍화차 친구’라는 게 무척 슬프고 서운하였다. 두 눈동자를 마주보며 서로의 진심을 고백하는 사랑의 황홀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더 그를 미워할 수 없는 타는 목마름으로 빠져들었다.
상현은 삶의 한 사건의 계기로 모든 삶의 의욕과 의미를 상실한 푸념, 체념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연애’, ‘사랑’…… 이러한 것들이 모두 싱겁고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였다. 그는 미래에 대한 사회진출과 출세와 같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하였다. 손을 흔들며 다녀오리라고 살짝 웃으며 이슬처럼 홀연히 사라졌던 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애희는 방에 들어와 바로 이불 속에 몸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상현은 그렇게 떠났고 그리움은 그믐달처럼 날로 깊어만 갔다. 그가 모성애 어린 쌍화차 이야기를 하던 모습, 자신을 좋아한다고 물을 흩뿌리며 멋쩍어 하던 순수한 모습, 그 움직임, 그 깊은 사색적인 눈동자…….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자신의 심장에 각인하여 사진을 찍어 두었던 것을…….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 가슴속의 앨범에서 한 장씩 꺼내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유일한 위로와 즐거움이었다.
어느덧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그해는 논둑의 잡풀 사이에 유난히도 코스모스 꽃이 한들한들 아름답게 피었다. 찬란한 가을의 정경은 잘 익은 벼 냄새와, 청아한 가을 하늘이 조화를 이루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전애희는 상현이 늘 학교 갈 때 걸어 다니던, 뒤편의 논둑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잠자리가 윙윙거리며 눈앞을 스쳤다. 코스모스 꽃잎을 하나씩 흩뿌리며 그를 생각하였다. 자신은 왜 지쳐 보이는 그에게 쌍화차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여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었을까! 그의 아픔이나 그의 고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간절함이었다. 참 어리석기도 하고…….
논둑에서 메뚜기가 뛰어올랐다. 자신의 치마 위에 앉은 작은 메뚜기! 치마를 털어내자 땅 밑에 배가 뒤집혀 발발거렸다. 또 한 마리의 메뚜기는 자신의 무릎에서 땅 밑으로 다시 펄쩍펄쩍 뛰었다. 애희는 발발거리는 메뚜기와 펄쩍거리는 메뚜기를 지켜보았다.
‘결코 비굴하게 살지 않으리라.’
그가 외치는 듯하였다. 이 길은 외딴 길로 상현이 늘 혼자 다니던 길이었다. 길을 걷다 보니 그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쳤다.
“언니, 요즘 샛길로 다니던데요?”
무슨 사연이라도 더듬어보듯, 옥순이는 애희의 표정을 살폈다.
“응, 가을 경치가 좋아서 산책하는 거야.”
그렇게 답변하는 애희는 왠지 옥순이 앞에서 자신이 궁해 보였다. 옥순이는 다 안다는 표정을 살짝 내비치고 그 후엔 시비를 그쳤다.
“나쁜 자식! 네가 뭔데 나를……, 나를 울려!”
애희는 드디어 눈물의 홍수를 이루었다. 서울에서 시위하며 데모에 가담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장래가 암담한 사람이다. 그러나 또 보고 싶고……. 계속해서 울음이 복받쳐 왔다. 그는 논둑 가까이에 선 벼 쪽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날은 유난히 길고도 긴 하루였다. 그가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함이 파도쳤다. 이번에 그가 돌아오면 반드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긴 것도 아닌데 훨씬 그 이상으로 가깝게 여겨졌다. 이제는 남들이 애인 사이라는 그런 표징을 하나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날 여러 상념에 지쳐서 애희는 불을 끄고 잠을 청하려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상현의 방 쪽에서 들리는 인기척이었다. 시계는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애희는 숨을 죽이며 후다닥 문가에 다가섰다. 문틈으로 그쪽을 바라보니 달이 밝아 그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가 돌아왔다. 그가! 가슴이 뛰고 두근거렸다. 애희는 여느 때처럼 그는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언제나 그렇듯이 문턱에 걸터앉았다. 약간의 취기가 있어 보였다. 그는 한참 저 담벼락 쪽의 금강이 내다보이는, 늘 바라보던 그쪽을 한참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몸을 일으켰다. 시계는 자정이 넘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애희의 방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후다닥 이부자리에 누워 자는 척 하였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애희 씨, 계세요? 쌍화차 친구, 잡니까?”
애희는 이불을 깊이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다. 그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힘겹게 말했다.
“누, 누구시죠?”
“예, 접니다. 제 목소리 잊었나요?”
애희는 몸을 일으켜 전등을 켜고 안으로 걸었던 문고리를 풀어 문을 열었다.
“아니!”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
“쌍화차를 한잔 마셔야 잠이 들 것 같군요.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언제나 과묵하였던 그가 오늘은 남달라 보였다.
“드…… 들어오세요.”
별일 아닌 척 태연해 하며, 문을 약간 비스듬히 열어놓았다. 커피포트에 받아놓은 병의 물을 반쯤 부었다. 그가 자신의 방에 들어섰을 때, 온 방이 환해지며 따뜻한 온기가 찬 듯 아늑하였다.
하숙집 주인도 깊은 잠이 들었고 그 밖의 하숙생들도 모두 잠이 든 듯 사방은 정적에 싸였다. 가을밤은 적막하였다. 어디선가 도둑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애희는 그가 돌아오자 자신이 누웠던 이부자리를 개고 나서, 그에게 방석을 내밀었다. 그의 표정은 약간 뭔가에 쫓기듯 다급해 보였고, 뭔가 결정을 내리려는 듯 단호함이 스쳤다. 평소의 그와 같지 않았다.
어느덧 물이 끓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애희는 언제나 그에게 권하던 흰 머그컵에 쌍화차엑기스를 세 스푼 떠서 컵에 담았다. 그녀의 손이 가냘프게 떨렸다.
“저에게 이렇게 쌍화차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는 찬찬히 애희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아, 그래요. 정말 얼굴 뵙기가 힘들군요!”
“밉죠?”
“네, 아주 야속합니다. 왜 그렇게 자꾸 떠나기만 하는지…….”
“애희 씨를 보면 꼭 괴테의 여자가 연상됩니다. 사랑스럽기도 하고 영리하기도 하고 기풍이 있어 위엄까지 느끼기도 하지요!”
“그런 말은 상현 씨와 어울리지 않는군요!”
새침하게 쏘아 붙였다. 그는 책꽂이에 일렬로 세트로 꽂혀진 『토지』를 눈으로 훑어보았다.
“어쩌면 저 『토지』의 여주인공 최서희와 같은 여자지요.”
“네?”
“대담하고 도도하기도 하고 집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기도 하고…….”
집념에 사로잡혀 있는 여인이라고 할 때, 민상현을 그리워하는 집착을 빗대어서 조롱하는 듯하여 기분이 불쾌하였다.
“네, 전 『토지』를 읽으면서 최서희를 멋있게 여겼고 그런 강한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 여자, 애희 씨가 잠시 제 인생에 머문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 말을 하고 약간 수줍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웃었다.
“나, 참 한심스럽지요.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날 술이나 쳐 먹고 다니며 겉도는 모습, 하숙비만 축내고 있는 그런 미련하고 한심한 놈이죠.”
“자, 드세요!”
“아, 네. 아! 따끈한 이 쌍화차!”
그는 후후 불며 쌍화차를 맛있게 마시기 시작하였다.
“몸 좀 생각하세요!”
“…….”
그는 계속 말없이 쌍화차를 마셨다.
“왜 그렇게 힘이 들어 보이죠?”
“전 세상에서 승리한 강한 남자와는 거리가 멀지요!”
한숨과 함께 탄식어린 그 목소리는 너무도 처연하였다. 그리고 약간 혐오스럽기까지 하였다.
“서울에 또 언제 가시나요?”
그 말에 표정이 굳어지는 듯하였다.
‘칙칙…… 치글치글…….’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애희는 전원코드를 뺐다. 요란스럽던 물 끓는 소리가 잦아들어 잠시 후, 고요해졌다. 안방 쪽의 주인집에서 어른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창문을 열어 불빛이 새어나오는 애희의 방 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한 식구의 하숙생임을 알아채고 안심한 듯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 기척이었다. 보름달이 밝아 대낮처럼 환하였다.
“종철이가 너무 불쌍해요. 나쁜 살인 정권, 우리의 애국 열사를 고문하고 인권 유린하는 전두환……. 아!”
그는 고개를 숙이고 쌍화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눈에는 눈물이 머금고 있었다.
“애희 씨! 우리가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는 혼자 되뇌듯이 물었다.
“어렸을 때 전 삼국지를 읽으면서 장차 나라를 구하는 큰 인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였죠. 조조가 나쁘다고 여기며 유비 편을 들며 그의 영웅성을 본받으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현재 시국이 불의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살아갈수록 이 세상의 정의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어렸을 때 대통령 자리가 존경스럽고 흠모의 대상으로 여겼었는데 그들의 비리와 허위를 알았을 때, 분노와 함께 허무와 좌절감에 빠집니다. 세상엔 정말 의인이 존재할까요? 높은 놈들의 세상, 돈 있고 권세 있는 놈들의 나눠먹기 식이 아닙니까!”
그는 울분에 떨듯 잠시 말을 마치고 쌍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맛이 좋군요. 제가 또 흥분했군요!”
“우리나라 역사는 항상 그렇죠! 선량한 백성들은 알면서도 언제나 위정자들을 기대하지요. 선정을 베풀어주기를 바라면서요. 저도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정말 암담할 뿐이고 상현 씨의 그 심정 이해할 만합니다.”
“이해한다고요? 나의 동지군요!”
“그렇다고 그렇게 술만 마시고 몸을 축내면 안 되잖아요!”
“젊은 놈이 술이나 퍼먹고 비틀거리는 모습이 한심하게 보입니까!”
“그러다가 학사경고나 맞아 졸업도 못하면 안 되잖아요. 학비를 대주시며 자식 뒷바라지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졸업은 하셔야죠!”
“왜 불량학생으로 밥맛 떨어집니까!”
갑자기 도발적인 그의 태도에 애희는 아연해졌다.
“그렇게 학생들이 나선다고 나라가 금방 개혁되는 건 아니잖아요! 묵묵히 자기 일에 몰두하며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실력을 쌓고 준비하는 것도 나라를 위한 길이 아닐까요!”
“운전사가 버스에 사람을 가득 싣고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데, 그 운전사를 그냥 두란 말입니까? 차 안의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말입니까!”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애희 씨는 역시 현명하시군요. 역시 내가 여자를 보는 눈은 있단 말이야. 쌍화차 친구, 하…… 하하 핫핫핫…… 어, 쌍화차 친구. 난 쌍화차 친구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있소. 흐핫핫하…….”
그는 허공에 대고 쓸쓸하게 웃어 젖혔다. 그 태도와 말씨가 자신에 대해서 애매하고 초점이 없어 종잡을 수 없었다. 좋아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밥맛이라고 비웃는 것일까!
잠시 후 그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고통의 신음을 하며 자신의 방 쪽으로 걸어갔다. 쓸쓸한 표정이 스쳤다. 그가 멀어져가자 애희는 마음이 허전하였다. 그는 흔들거리며 자신의 방문을 열고 문지방에 다시 걸터앉았다. 역시 늘 그러하듯…….
잠시 후 다시 몸을 일으켜 애희의 방 쪽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가 우뚝 문 앞에 다가섰다.
“애희 씨,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네? 어디……?”
놀란 표정과 함께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애희를 와락 껴안았다. 애희는 당황스럽고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였다.
“애희 씨! 사랑합니다. 전, 전…….”
“절 사랑한다고요? 그거면 된 거잖아요!”
“전 자신이 없군요. 저 때문에 애희 씨가 불행하게 되는 것…….”
“바보같이……, 자신이 없다니…….”
그는 다시 한 번 품 안의 애희를 힘껏 껴안았다. 그녀도 몸서리치며 그의 몸에 밀착하여 안겼다.
“이렇게 사랑하면 되잖아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불안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애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몸을 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섰다. 잠시 후, 한숨과 함께 그의 방에서 불이 꺼졌다. 그가 잠이 들은 것 같아 문을 닫으려 하였다. 저쪽 편의 만오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토방에 나와 잠시 서 있었다. 아마 화장실에 가려는 듯하였다.
“애희 씨!”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던 표정이었다. 애희는 그를 무시하고 그냥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이부자리 속으로 쑥 들어갔다.
‘사랑한다고 했다. 그가 나를!’
그 말에 감격하여 가슴이 떨렸다. 오직 그 말의 뉘앙스와 사랑의 감격 속에 그녀는 그날 밤 너무도 행복하였다. 그의 아늑한 품에 안기며 키스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잠을 설치고 새벽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