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뉴스프리존=소설가 한애자]드디어 옥순이와 김종만의 활약으로 딸기파티가 벌어졌다. 하숙생들은 싱싱하고 맛이 든 딸기를 커다란 쟁반에 소복이 쌓아놓고 맛있게 먹으며 이러저러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은 일차 모임을 끝내고 이차로 음악과 애희의 방으로 모여 들었다. 그 방의 책꽂이에는 박경리의 『토지』 전집이 꽂혀 있었다. 책상 위에는 놓인 단란한 가족사진, 예쁘게 꽂힌 화병의 장미꽃, 벽에 걸려 있는 클래식 기타……. 이 모든 것이 어울려 예술적 분위기를 자아냈고, 말끔하고 향긋한 꽃향기가 풍기는 정감이 어리는 방이었다. 특별히 눈에 띈 것은, 쟁반 위에 놓인 맥스웰 커피와 쌍화차라고 쓰인 갈색 유리병이었다. 그 옆에는 스테인리스 커피포트가 전선줄에 이어져 있었다. 참석한 인원은 다섯 명 정도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약속이나 급한 일이 있다면서 외출하였다.
“언니, 윤시내의 <열애> 테이프 있어요?”
“아, 아니, 없는데 그 노래 좋아하니?”
“그 노래 전주곡이 끝내주잖아요! 우우우 우우우 우…… 그리고 죽어도 죽어도 재가 되지 않는…… 사랑을 피우리라…… 그 부분은 얼마나 간절한가요?”
새침한 분위기에서 옥순이는 사랑타령을 늘어놓았다.
“우리 고등학교 때 음악수업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음악실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높은 4층 건물이었거든요. 어느 날인가 우리가 4층에 음악수업을 하러 올라갔는데 글쎄, 노처녀 음악선생님께서 이 <열애>라는 노래를 크게 듣고 있잖아요. 팔짱을 끼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창밖을 바라보면서요. 우리가 들어왔어도 동요 없이 먼 창밖의 정경 속에 <열애>를 감상하고 있었어요! 정말 그 노래의 가사에 자신의 사랑의 사연을 담은 듯 보였어요. 우리도 모두 그 노래를 조용히 들으며 미래에 진행될 열애를 예감하고 있는 듯, 다들 폼을 잡았거든요. 윤시내의 <열애>가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게 퍼져 울려서 정말 끝내 주었어요. 눈물이 나도록 열기를 뿜는 그 사랑의 정염! 음악선생님은 눈시울이 빨개지고 잠시 후, 제 정신으로 돌아와 살짝 웃었어요.
‘장미주, 너 가수가 소원이라며? 어디 <열애> 한번 불러 봐요!’
‘그래! 한번 불러 봐. 와!’
우리는 박수로 미주의 노래를 청하였지요.
장미주는 신이 나는 듯 자신의 노래 솜씨를 관중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마치 마이크를 잡은 듯한 손 모양을 하고 윤시내와 같은 열광적인 목소리로 사랑을 맹세하듯, 그 열애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우 우 우 우……, 우우…….’
우리 모두는 전주곡 반주를 입으로 연주하였고 곧이어 부르는 열애의 도가니 속에 숨을 죽이며 미주를 부러워하며 황홀하게 들었어요. 우리는 얼굴도 예쁘고 거기다가 가수 뺨칠 정도로 노래를 잘하는 미주를 선망대상으로 여겼죠. 특히 그 노래의 ‘태워도, 태워도……’ 할 때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음을 묘하게 잘 처리하는 미주의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였는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럼 옥순이가 그때의 장미주가 되어서 한번 불러보지!”
상현이 신청하자 모두 박수를 치며 듣고 싶어 하였다. 이때 애희는 한쪽에 치워 둔 클래식 기타를 집어 들었다.
“아, 반주자도 있네!”
“어, 언니 기타도 칠 줄 알아? 아, 진짜 멋져 보인다!”
그 모습은 단발머리에 너무도 지적이고 매력 있게 보였다. 상현은 그런 애희를 자랑스러워하는 빛이 역력히 나타났고, 좀 흥분한 표정이었다. 옥순이는 이 노래를 멋지게 불러서 상현의 마음을 사로잡아야겠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전주곡을 싣기 시작하였다.
“이 생명 다하도록……, 불꽃을 피우리라……,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애절하게 옥순이는 노래가사로 상현에게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상현은 지그시 눈을 감고 그 노래가 전애희와 관계가 있을까 하며 애희를 가끔씩 훔쳐보았다. 애희는 중간 중간에 반주를 넣으며 옥순이와 호흡을 같이 하였다.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와와……, 앵콜……, 짝짝…….”
“와, 정말 옥순 씨! 가수의 재능이 보이는구먼유, 아주 짠하게 시리…….”
김종만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옥순이에게 흠뻑 빠진 듯하였다.
“와, 정말 노래 잘한다. 우리의 가수왕이야!”
만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기타를 치고 있는 애희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자, 그럼 우리도 노래합시다!”
막걸리파 김종만이 한마디 나섰다.
“나는 트로트가 좋은디, 반주가 됩니까!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그들은 이어 메들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애희의 기타 반주는 막힘없이 문제없었다. 만오도 곡을 이었다.
“…… 너무 합니다, 너무 합니다, 당신은 너무 합니다.”
그 다음엔 옥순이가 선창을 하자 모두 함께 따라 불렀다.
“제이, 스치는 바람에…… 제이, 난 너를 못 잊어. 제이, 난 너를 사랑해. ……”
<제이>는 대학가요제에서 데뷔한 이선희의 히트곡이었고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중국어과 김종만은 눈을 지그시 감고 트로트 형의 노래를 잘 불렀다. 서천이 고향이라는 그는 언제나 텁텁한 막걸리를 즐겨 먹었고 젊은이답지 않게 겉 늙은이 분위기였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그의 18번 <목포의 눈물>을 여지없이 불렀다. 그는 늘 세수할 때도 언제나 콧노래를 흥겹게 불렀다. 그와 어울리지 않게 깔끔하고 명석한 이미지의 물리과 수재, 호만오는 말없이 애희의 기타만 계속 주시하듯 하였다.
“상현 씨도 한곡 불러요!”
“나? 아는 노래 별로 없는데요.”
“석탄 백탄 타는 덴 연기만 펄썩 나고요, 이내 가슴 타는 덴 연기도 김도 안 난다…….”
“아, 민요라! 신나는데요!”
모두들 경기민요 <사발가(沙鉢歌)>를 따라서 불렀다. 호만오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의 분위기에 빠진 듯하였다. 매일 도서관에서 학점의 노예가 되어서 공부만 하는 자기와 사귀고 있는, 선영이 지겨워지기 시작한 것도 애희를 만난 후부터였다.
언젠가 하늘색 물방울무늬의 원피스를 입은 애희를 보았을 때, 그는 선녀모습을 보는 듯 여자의 아름다운 자태에 취하였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그녀의 의젓하고 이지적인 모습이 클로즈업 되면서 기타 반주를 하는 애희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다가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 후 애희를 사모하며 짝사랑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애희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도 차를 마시고 싶어도 쑥스러워서 접근 보류 중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황후처럼 감히 접근하기 힘이 들었다. 그녀와 마주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아침식사 때 그녀와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만오 씨는 우리 하숙생의 보석과 같은 인물이죠. 아, 이번에 물리과 수석을 하였는디, 애희 씨는 축하도 안 해주남요?”
“어머? 그래요, 축하합니다!”
예의상 반갑게 그렇게 표현하였다. 호만오는 자기를 우수한 학생이라고 홍보해주는 김종만이 고마웠다.
‘나의 이런 우수한 점을 애희 씨는 알고 있을까!’
그러나 애희는 그 시선이 상현에게 향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애절하고 간절한 어떤 눈길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왜 선영에게 떠나려하고 애희에게 구애하고 있나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자신에게 별 흥미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보기만 하면 긴장하고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어느덧 노래하던 그들은 지쳤는지 조용해지기 시작하였다.
“자, 쌍화차나 한잔씩 드세요!”
전애희는 커피포트에 물이 끓기 시작하자 컵 속에 미리 덜어둔 쌍화차 액에 물을 부어 스푼으로 저어 건넸다.
“야, 꼭 쌍화탕 같아, 커피는 없어요?”
“응, 커피 드실 분 저쪽에…….”
테이블의 한쪽에 치워둔 맥스웰 커피와 크림, 설탕을 내어 놓았다.
“커피보다 이 쌍화차가 몸에 좋아요!”
“그래요? 그럼 한번 먹어 볼까요!”
옥순이는 약간 이마를 찡그리며 쌍화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상현은 쌍화차를 매우 반기는 표정으로 흔쾌히 맛있게 마셨다. 그는 모처럼 여유 있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애희를 바라보았다.
“전 집에 돌아갈 때면 어머님께서 늘 쌍화차를 진하게 타 주시거든요.쌍화차를 마실 때면 고향에 온 듯 매우 정겹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자주 마시러 오세요.”
“정말입니까?”
애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웬 고리타분한 쌍화차 타령인가. 그건 어른들이나 즐겨 마시는 것이잖아!”
두 사람이 많이 닮았다면서 방 안의 사람들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자, 화제는 다른 쪽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시국에 관한 약간 심각한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무슨 과 교수가 어용교수이고, 무슨 과 교수가 시국선언을 하여 검찰에 검거되었다는 이야기……. 이런 시국에 자신들의 미래 즉,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민형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호만오가 상현을 향하여 물었다.
“박종철 사건으로 연루된 듯 서울에 자주 올라가시던데요?”
“네, 끝까지 투쟁하여 종철이의 죽음을 밝혀야 합니다. 분명히 고문치사사건을 은폐 조작한 것입니다.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5·18항쟁 희생자 추모미사가 열리고 끝난 후,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서울에서 여러 학생 동지들과 인권을 유린당한 종철이의 죽음의 진실을 알리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제 진실이 밝혀지고 있으니 우리는 대규모 항쟁을 할 것입니다.”
“이곳 학교생활은 말이 아닐 텐데요. 학점관리도 그렇고요!”
“학점관리 해야 합니다. 아니면 학사경고를 받아 다음해 일 년을 유급 당하거든요!”
옥순이가 염려스럽게 말하였다.
“그렇죠. 그러나 이 어두운 현실에서 나만 점수 잘 맞아 탄탄대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양심이 허락지가 않는군요!”
상현은 결연해 보였다. 전애희는 그가 서울에 올라가 며칠씩 하숙집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사건에 연루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동권이구나!’
쌍화차를 마시고 아쉽게 하숙생들은 그렇게 흩어졌다.
그 이후 하숙생들은 전애희를 ‘쌍화차 친구’로 불렀고 놀러가고 싶으면 ‘쌍화차 먹으러 가자!’ 하면서 삼삼오오 자주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민상현은 계속 볼 수 없었다. 그는 한동안 하숙집에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동안 보이지 않던 방문 앞의 댓돌에 그의 검정운동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밤사이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가 일어나는 열 시경이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방문을 열고 토방에 걸터앉았다. 늘 그러하듯 담 벽 쪽으로 다가가 금강 변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보낸 세월은 더욱 초라하고 절망적인 구름을 뒤덮은 듯 매우 암울하고 초췌해 보였다. 오른손에 큰 타박상과 무릎이 심히 상처가 난 듯 붕대를 감은 상태였다. 여기저기 얼굴에도 좀 흠집이 보였다. 아마 데모를 하다가 몸싸움도 하고 경찰과 맞서 고문도 당한 듯하였다.
애희는 오랜만에 보는 그의 모습에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얼굴이 수척하여 야위어보였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기지개를 펴고 애희 방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석탄 백탄 타는 덴…… 이내 가슴 타는 덴…….”
언제나 가끔 들리던 그의 노랫가락이었다. 눈이 움푹 꺼진 초췌하고 허해 보이는 모습은 애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는 다시 기지개를 켜며 저쪽 담벼락 쪽으로 몸을 돌리고 금강 변을 바라보았다. 저 유유히 흐르는 금강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역성혁명의 기질이 어려 있다고, 아랫녘 사람들을 차별하였던 그 시대를 상기하였다.
조선 땅의 모든 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데 유독 금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었다. 거슬려 흐르는 강! 사람들의 비리에 타협하는 것은 그저 순탄하게 살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의인은 고난과 역경의 역사 속에 개입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란 말인가! 그는 그런 종류의 상념에 취한 듯하였다.
‘모순덩어리……!’
상현은 애희의 기척을 느끼면서도 되돌아보지 않았다. 언제나 우수에 깃들고 다른 세계에 젖어있는 그에게,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읽어줄 여유가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전애희는 넉넉한 머그컵에 쌍화차엑기스를 적당히 담고 펄펄 끓는 물을 부어 잘 저어준 후, 달걀노른자를 얹었다. 뜨거운 갈색 액체 위 떠있는 노른자가 익어가면서 점점 작아져 오므라져갔다. 마지막으로 쌍화차 위에 대추와 잣을 고명으로 얹었다. 그는 여전히 담 벽 쪽에서 금강 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희는 접시에 컵을 받쳐 들고 그의 열려진 방 안에 쌍화차를 들이밀었다.
“쌍화차 좀 드세요. 많이 지쳐 보이시네요.”
그저 덤덤하게 한 집에서 사는 사람의 정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태연하게 과장하며 말하였다. 고개를 돌린 그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피곤한지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아, 예,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덤덤하게 따뜻한 쌍화차 잔을 손으로 받쳐 들고 마시기 시작하였다.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쇠약해져 가고 있는 그의 몸 기운이 회복되기를 기원했다. 마치 그 쌍화차가 그의 원기를 돋고 활력을 찾게 해주는 특효약이라도 되라는 듯, 상처투성인 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자신이 덜어주고 싶었다. 애희는 그의 아픔과 상처가 자신의 아픔처럼 여겨졌다. 상현은 쌍화차를 마시니 속이 풀어져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소를 지었다. 애희는 그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하는 여자’로 인식되기를 원하였는지 모른다. 그는 어느새 다 마셨는지 쌍화차가 담겨 있던 흰 머그컵을 내밀었다.
“정말 맛있게 잘 마셨습니다!”
움푹 꺼진 깊은 눈동자가 웃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삶의 활력이었다.
“몸조심하세요. 항상 아프시잖아요!”
오른쪽 발의 부상에 붕대가 감겨져 있다.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시간 있으면 영화 보러 갈래요?”
“네? 웬일이세요. 이상해요!”
“이상한 짓 좀 하면 안 됩니까!”
“알았어요. 저녁도 사주시는 거죠?”
“그럼요.”
“잠깐 십 분 정도만 기다려주세요. 나갈 채비를 준비해야죠.”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사랑하는 그에게! 애희는 설레는 가슴과 함께 옷장을 열어 보았다. 붉은 장미가 수놓아진 레이스 천으로 된 빨간색 원피스를 입었다. 언젠가 서울에 있는 친구와 명동거리를 쇼핑하다가 너무나 입고 싶어서 고가를 치르고 샀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입기에는 너무 화려하여 입지 못하고 장롱의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것이다. 그 후 그 옷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입게 되었다.
애희 자신에게 특별한 날, 드디어 장밋빛 레이스 무늬의 원피스를 입어보았다. 거울 앞에 선 모습이 곱고 예뻐 보였다. 귀에는 하얀 진주 귀고리를 착용하였다. 그리고 검정색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들었다. 잠시 후, 상현도 양복차림은 아니지만 잠바 안에 넥타이를 하여 남방차림과 청바지차림의 인상은 사라지고 그런대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 모습이다. 상현은 애희에게 그윽한 사랑의 미소를 보냈다.
그들은 읍내의 소극장에 들어섰다. 한창 상영 중인 007 영화 외에는 별로 볼만한 영화는 없었다. 그들은 작품성 있는 영화를 본다는 것보다, 서로 함께 한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두 사람은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정말 저녁 사주시는 거죠!”
“그럼요, 오늘은 이렇게 멋진 애희 씨의 모습에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까!”
“오늘처럼 늘 다정했으면 좋겠어요!”
애희는 얼굴을 붉혔다.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애희에게 집중되었다. 마치 잘생긴 선남선녀를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민상현은 애희가 자신의 애인이라는 확신을 하며 자랑스럽고 흐뭇하게 여겼다.
“쌍화차 친구, 뭘 드시고 싶은지…….”
그는 메뉴판을 훑어보며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매우 활기차고 유쾌하게 보였다.
“쌍화차 친구! 비프스테이크가 어떨까!”
“좋아요!”
왜 멋없이 쌍화차 친구, 쌍화차 친구 하는지 얄미웠다. 좀 분위기 있게 ‘애희 씨!’ 하면 안 될까? ‘쌍화차 친구’로 어색한 분위기를 소화하는 것처럼 여겼다. 그는 ‘쌍화차 친구’를 노래하듯, 말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첫 머리에 붙였다. 그는 웨이터를 부르고 식사를 주문하기 시작하였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그는 애희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애희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아버님께서요. 어디를 가나 사랑 받고 사랑하는 여자가 되라고 그렇게 지었다나요!”
“맞아요. 참, 애희 씨 분위기와 맞는 이름이군요. 잘 지었군요. 애희! 애희! 애희! 참 예쁘고 좋은 이름이군!”
“그런데 그 좋은 이름 놔두고 왜 자꾸 ‘쌍화차 친구’라고 하세요?”
“애희, 애희……, 참 좋다…….”
이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배가 고팠는지 말없이 맛있게 먹었다. 애희는 천천히 씹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그리운 얼굴을 또 언제나 보나? 늘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타나는 사나이! 늘 진리를 찾는 방랑자 같은 저 아름다운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아마 또 서울에 올라가면 그의 온몸이 바스라질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서울에 그렇게 자주 가셔야만 되나요?”
“종철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죠.”
“원래 친구였나요?”
“아뇨. 나와 절친한 친구의 친구였죠. 몇 번 본 적도 있지만 의기가 있고 총명한 학생이었지요. 그는 나의 친구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선량한 아들이잖아요!”
“그래도 여기 학생으로서 충실해야 할 텐데요.”
“이 정치판 속에서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현실은 너무 이지러져 있고 암담합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자! 우리 일어나서 마곡사로 한번 가 볼까요?”
그들은 별다른 대화 없이 가까운 마곡사로 향하려 하였다. 그는 마곡사로 향하는 시외버스터미널의 공중전화부스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서 모이기로 했다고? 명동성당? …… 응, 그래, 지금 곧바로 갈께.”
그는 매우 다급한 표정과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애희 씨, 미안합니다. 저 곧바로 서울로 가야 할 일이 생겨서요!”
그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에게 애희를 하숙집 주소를 알려주고, 잘 부탁한다면서 요금을 지불하였다.
“무슨 일인데요?”
한애자 haj20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