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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 칼럼] 빵과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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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 칼럼] 빵과 장미

한애자 기자 입력 2016/06/10 22:01

해마다 오뉴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장미축제가 한창이다. 담장의 넝쿨장미가 아름답고 풍요롭다. 매번 스쳐 지나다가 문득 되돌아가 장미꽃송이를 다시 한 번 만끽해본다. 장미를 바라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열’이다. 장미꽃을 선사하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의 표시로 깊고 뜨거운 열정을 상징한다. 여고시절 어느 날 수업시간의 국어 선생님 모습이 스친다.

<비오는 날 문득 창가에 섰다. 밤이슬에 젖은 정원의 붉은 장미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장미꽃이 이토록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시인들은 그 아름다움을 저절로 노래하게 되는 듯하다. 장미는 정열이다. 너희들에겐 어떤 정열이 있느냐?>

칠판에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일생을 설명하며 사람이 무엇에 대한 정열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 열심히 하여 높은 사람이 되고 사업가가 되어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사는 게 모두가 아니다, 보람되고 가치있는 일에 기여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한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나아가라 하셨다.

그날 선생님의 그윽하고 정겨운 애국충정의 인생 공부는 우리들의 가슴을 벅차고 뭉클하게 했다. 모두 저마다 총기어린 눈빛으로 장미꽃의 정열을 사모하였다.

언젠가 지인 중에 아들이 미국 유학을 하고 있는데 심히 염려하며 토하던 모습은 이 시대에 내부의 가치관의 상실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들과 함께 하는 유학생들은 대부분 재벌과 상위층의 자제들이다. 그들은 마약과 환락의 파티, 도박에 빠져 심취된 모습이라 한다. 아들이 그러한 문화에 빠져들게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여 그런 젊은이와는 멀리 하라고 하지만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왕따 당하는 심리적 위기의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침울해 하였다.

그 젊은이들의 문제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향한 정열을 잃어버린 내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삶의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는 사람은 그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다소 고난이 오더라도 그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뚜렷한 의미를 상실한 사람은 삶이 무미 건조하고 권태를 느끼며 그 무미건조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쾌락을 탐닉하며 방탕한 삶의 패턴을 겉돌게 된다. 앞서 말한 부유층 젊은이들의 행태들! 그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그저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 그저 출세의 빠른 코스와 화려한 프로필로 장식해야만 인정을 받는 사회적 풍토에 기인된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책과 문화예술과 바른 훈육을 받은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꿈이 생기고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른들은 자라는 세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내적인 가치관과 삶의 이정표를 세우도록 사회 교육적 환경을 조성해주기보다 방치된 채 흘러가고 있다. 특히 인터넷 문화와 스마트폰의 유해한 엄청난 정보와 악성문화 접촉은 더욱 내적인 황폐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 가정과 교육현장의 통제를 벗어나 포플리즘과 함께 혼돈 속에 난무하다. 다양하고 폭넓은 세계를 접촉하게 되었다고 하며 모든 풍요로움을 누리는 듯하지만 무의미한 텅빈 가슴의 허무의 강도는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 이제 그 돌팔구로 보이는 양상은 게임중독, 유흥과 환락의 파티, 도박으로 나타나며 급기야는 마약의 노예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삶의 내적인 동기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며 비틀거리는 젊은이의 모습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다. 이는 단지 젊은 세대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이다. 설상가상으로 신속하게 변모하는 초고속시대는 문화의 홍수를 이루며 이에 휩쓸리는 정신적 공백과 소외감은 더욱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영화감독 켄 로치는 <빵과 장미>라는 영화에서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갖고 싶다 라고 말했다. 당장 달콤하고 맛있고 배부르게 해주는 듯 하는 빵은 언제나 우리에게 배고픔을 느끼게 한다. 그저 생활하는 생존만으론 삶을 지탱할 수 없다. 삶을 생동감 있게 이끌어갈 원동력! 그것이 마음의 장미꽃이다. 내적 가치관 즉 기쁨, 사랑, 열정, 아름다움, 선행, 보람..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의미의 정열을 상실한 텅빈 내부의 빈곤 때문에 날로 포악해지고 흉측하고 삭막하기 이를데 없다. 삶의 이정표가 없이 표류하며 혼란 속에 몸과 마음이 원하는데로 자신을 내맡기며 결국 이성없는 짐승처럼 악행을 자행하게 된다. 그 결국은 흉악한 오늘날의 사회악을 대변하고 있다.

자신을 쳐다보았다고 어르신을 폭행하기, 토막 살인사건,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살인하는 사건, 묻지마 폭행 살인사건들,.... 이제 그런 감정을 컨트롤할 내부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규칙 잘 지키기, 웃어른을 공경하고 예절을 지키기,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기.... 이러한 지극히 기본적이고 작은 질서와 마음가짐의 인성교육이 현실화하며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잘못을 책망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훈육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정서를 순화하기보다 정서가 메마르고 각박해져 가고 있다. 마땅히 존경하고 따라야 할 어른이 없고 제 맘대로 후안무치이며 서로를 경계하고 공포와 두려움 속에 떨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가지고 해결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구성원의 사람들이다.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들의 내적인 요인인 정신이 병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삶의 의미와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마음의 갱생, 만이 역사를 새롭게 창조해갈 수 있다.

필자는 작가로서의 글을 쓴다는 일이 참으로 소중하다. 사회를 위해서 외쳐야 할 소리가 무엇인가를 깊이 탐색하며 작품 활동을 통하여 구현하고자 한다. 이 민족에게 내적 치유를 위한 장미꽃의 정열이 새롭게 피어나기 원한다. 의미있고 아름다운 한 송이 한 송이 장미꽃이 모여 대한민국을 살게 할 <장미동산>도 꿈꾸어 본다. 돌아보면 학창시절의 쟁쟁하게 울렸던 장미의 정열이 나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 스승은 참된 선견자요, 애국자요, 예지가 빛나는 통찰력 있는 지도자였다. 이제 그의 제자도 장미의 정열을 사모하였고 장미의 정열을 꽃피우고자 하는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오르고 있다.

 

<너희들에게 어떤 정열이 있느냐?>

 

시대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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