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태양의 서커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선택한 천재 연출가. 혁신적인 테크놀로지와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현대 연극의 경계를 확장시킨 세계적인 거장, 로베르 르빠주가 자전적인 이야기에 바탕을 둔 새로운 작품 <887>이 오늘 29일부터 6월 2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무대에 직접 출연해 연출가로서 뿐만 아니라 재능과 경륜을 겸비한 배우로서 지난 기억에 얽힌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펼쳐 놓으며 자신의 진면목을 여실히 확인시켜줄 예정이다.
태양의 서커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선택한 천재 연출가이자 혁신적인 테크놀로지와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현대 연극의 경계를 확장시킨 세계적인 거장, 르빠주의 예술적 탁월함은 <달의 저편 (2003년, 2018년 내한)>, <안데르센 프로젝트 (2007년 내한)>, <바늘과 아편 (2015년 내한)>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로베르 르빠주는 연극 연출가, 극작가, 배우, 영화감독으로서 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며 다재다능함을 선보여 왔다. 연극 작품에 있어서의 그의 독창성과 창의력은 일찌감치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줬으며 특히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무대 연출은 연극의 전통을 뒤흔들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동시대성(contemporary history)을 창작의 주원료로 삼아, 현대적이고 독특한(unusual)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 그의 작업은 기존 연극의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2007년을 마지막으로 그 동안 내한에 함께 하지 못했던, 한국 관객들에게는 연출가로서의 모습만이 알려져 있는 르빠르주를 무대에서 직접 만나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는 휴대전화의 번호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 왜 어린 시절의 집 전화번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귀에 익은 소리와 친숙한 냄새들은 어떻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 기억들을 생생하게 불러내는 걸까?
이렇게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졌을 법한 궁금증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착안한 르빠주는 우리 뇌에서 작동하는 기억의 메커니즘, 그렇게 저장된 정보의 완전성에 대한 의문, 그 기억들을 바탕으로 형성된 정체성, 망각과 무의식,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기억, 기억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예술인 ‘연극’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기억(memory)’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옛 시절의 생생한 기억 속으로 관객들을 이끌고 간다.
그 속에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작은 아파트 건물이 퀘벡 시티 머레이가(街) 887번지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으며, 택시를 몰던 아버지, 어머니와 4명의 아이들, 치매를 앓던 할머니,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이 있다. 또한 소중한 삶의 순간들과 함께 그가 자라났던 1960년대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의 물결 속에 정치적, 사회적 변혁을 겪으며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해갔던 퀘벡의 근대사 역시도 담겨있다. 작품의 제목인 <887>은 바로 르빠주 자신이 어릴 때 살았던 그 주소에서 따온 것이다. 동시에 7명의 대가족이 부대끼며 살았던 비좁은 아파트, 같은 건물에 살았던 개성 넘치는 이웃들, 그리고 익숙한 풍경의 동네와 거리, 도시에 얽힌 모든 기억들이 보관된 내면의 상징적 장소(memory palace)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의 내면 깊이 간직해왔던 소중한 추억들을 무대 위로 불러낸 르빠주는 탁월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 풍부한 위트와 유머 감각을 한껏 발휘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점점 잊혀 가는 것과 여전히 밝게 빛나는 것들을 대비시키며 기억의 원리와 본질에 대해 깨닫게 만든다. 무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현재의 집, 어린 시절의 아파트 등 여러 가지 공간으로 변신하는 세트와 기억에서 재현해낸 듯 아기자기 다양한 미니어처 모형들, 낡은 상자 속에 묵혀 있던 옛날 사진과 신문의 이미지들은 마치 우리와 가까운 이의 추억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리고 아웅다웅 더불어 지내온 공동체의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생동감과 친밀감을 선사할 것이다.
두터워지는 나이테처럼 한 층 한 층 쌓여가는 삶의 크고 작은 기억들과 애틋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는 기억의 예술’로서 연극의 가치를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현실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잔잔히 적시며 연극을 통해서 삶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다.
활동 초기부터 세계 연극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천재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의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최고의 무대 <887>의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5시, 일요일 오후 3시이며 영어와 일부 불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이 공연은 8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