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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의 인생을 잠시 되돌아보는 여유를 안겨주는 연극 "더 드레서"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21/12/28 15:37 수정 2021.12.29 16:11
"이런 게 삶의 멋진 부분이겠죠? 너무 늦은 건 없다는 거. 가끔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
다들 내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삶에 기대하고 살지 않을까요?"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송승환 ‘배우’의 인생과 철학을 담아낸 연극 “더 드레서”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연극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가 로널드 하우드가 작가로 경력을 쌓기 전 실제 Donad Wolfit경의 드레서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희곡을 원작으로 한 국립정동극장 연극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1880년 영국 맨체스터 Royal Exchange Theater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1983년도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으며, 최근 BBC에서 명배우 이안 맥컬런과 안소니 홉킨스 출연의 TV 영화로 제작돼 국내외 마니아 팬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더드레서"프레스콜컷 |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을 바라보도록 막 뒤로 우리의 시선을 옮기고 그들의 삶과 극 중의 공연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게 만들어 주고 있다. 무대 위 멋진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이들의 살아있는 모습을...(사진=Aejin Kwoun)
지난 2020년 코로나19 상황 악화에 따른 국공립문화시설 휴관 조치로 짧은 공연 후 중단되었던 이번 작품은 지난 11월 16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더욱 완성도 높고 맛깔나는 장면들로 관객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올해에도 영화 ‘정직한 후보(2020)’ 등 영화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장유정 연출이 참여하여 초연과 달리 인터미션 없이 100분간 밀도 높은 극 구성으로 추운 겨울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가슴에 따스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더드레서" 프레스콜컷 |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이 난무하던 상황에서 극장 뒤 배우와 스텝들은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을 위해 여느때와 다름없이 공연을 준비 중이다.(사진=Aejin Kwoun)
관객들이 쉽사리 볼 수 없는 무대 뒤편이 주 배경으로 지나간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는 작품 “더 드레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지방 투어 중인 가난한 셰익스피어 극단의 주역 배우이자 제작자인 노배우 그리고 16년간 그를 보살펴 온 드레서 노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자신들을 기억해 주기를 희망하며 공연을 올리는 배우들의 이야기로 수많은 배우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면서 또한 코비드 시국에서 각자의 삶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9년 만에 연극 무대를 밟는 송승환 배우는 현재 의술로는 고치기 힘든 병을 얻어 더 이상 글씨를 보기 어렵게 되었다. '주어진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늘 하루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배우 송승환은 ‘더 드레서’의 선생님(sir)과 퍽 닮아있다'라고 작품의 예술감독 김종헌은 우리에게 말한다. 공습 이후 이전의 트라우마를 자극받은 듯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선생님은 대사를 제대로 기억 못하고 무대에 오르기를 두려워하고 그의 옆에는 어쩌면 그보다 그를 더 잘 아는 듯한 노먼은 16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선생님을 보살피고 보필하며,  227번째 리어왕의 공연이 취소되는 것을 막으려 노력 중이다. 이번 작품은 초연 배우인 배우 송승환, 오만석, 송영재, 이주원, 임영우와 새로운 배우인 배우 김다현, 양소민, 유병훈이 합류하여 각자 색다른 연기 호흡과 매력으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극의 다양한 매력을 전하고 있다.

 

"더드레서" 프레스콜컷 | 이번 작품에 새로이 류한 새로운 노먼 역 김다현 배우는 극 중 노먼이 '덧 없는 희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국립정동극장의 첫번째 연극시리즈로 외국 작품을 선택한 송승환 배우는 "'글로벌'이라는 것은 우리 작품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 뿐 아니라, 해외의 좋은 작품을 우리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라 여긴다."라고 전하며 본인에게 가장 와 닿은 작품으로 오랜만에 무대를 찾아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사진=Aejin Kwoun)

2차 세계 대전 당시 정부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극장 문을 닫는 폐쇄조치를 명령했음에도, 극장들은 포탄에 직격탄을 맞거나 사상자를 내어도 공연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도 극장 외부의 시끄러운 사이렌과 무대 위 쉴 새 없이 번쩍이는 경광등의 경고에도 대부분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러한 분위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끊임없는 무대로 국민들의 삶을 위로했던 그들을 위한 체계적인 복지정책과 지원정책이 마련을 가져왔고 상업적 연극의 쇠퇴와 다양한 연극적 실험과 발전을 이끌었다. 우리 공연계 역시 어려움 속에서도 공연을 계속하고 있고 고단한 삶을 위로하려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코비드 시국이 끝난 후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더드레서" 프레스콜컷 | 200번이 넘는 공연을 했음에도 선생님은 무대에 오르는 것이 두렵고 어렵다. 지금 그의 상황 때문일는지 항상 그래왔는지...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진 듯 하여도 누구에게나 두려운 순간은 있을 것이다. 2020년 공연부터 계속해서 함께 하고 있는 오만석 배우는 '덤덤히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라는 작품 속 메시지가 공연을 하고 있는 배우 본인 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사진=Aejin Kwoun)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의 상황 속에서 인생의 끄트머리에 다다른 배우와 오랜 시간 그와 함께한 드레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국립정동극장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는 작품 "더 드레서"는 무대 위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는 배우들과 그 주변 인물들만의 이야기만은 아니기에 작품 속 그들이 어쩌면 조금은 바보 같고 애틋하고 안쓰럽게 여겨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역시 무수한 사람들과 주변의 환경 속에서 다면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고 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송승환 배우는 "우리는 (평소에)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연극을 보면서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와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라며 공연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항상 멋질 수는 없지만 모두 각자의 삶을 열심히 만들어가고 있기에 모두의 삶은 아름답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드레서" 커튼콜_악기연주(고명진), 제프리(유병훈), 사모님(양소민), 선생님(송승환), 노먼(김다현), 맷지(이주원), 옥슨비(임영우)/(사진=Aejin Kwoun)

국립정동극장은 1월 4일 "虎氣 : 범의 기운"으로 27년 만에 신년음악회를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 전통, 뮤지컬,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 공연으로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단 '포르테 디 콰트로(Forte Di Quattro)',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대표이자 소리꾼인 '정지혜'와 촉망받는 소리꾼 '정보권'과 기타리스트 '백하형기', 세 가지 국악 현악기로 새로운 음악을 선서하는 젊은 청년 국악팀 '줄헤르츠(JUL Hz)'와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타악팀'의 6인의 무대로 용맹한 범의 기운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2022년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맞이하며 호랑이의 기운으로 활력을 되찾는 한 해가 되길 함께 기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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