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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성정체성, 인권, 사랑에 대한 파격적이고 날카로운 연극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19/05/30 22:06 수정 2019.05.31 09:46
40th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
'벤트' 공연사진_맥스(김승기), 울프(조장연) /(제공=극단ETS)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우린 인간들이야.

우린 사랑을 했어.

그리고 그건 진짜였어.

저놈들은 절대 우리를 죽일 수 없어.“

연극 <BENT> 홀스트 대사 中 -

배우로 훈련 받은 연출이 직접 번역하고, 각 인물이 가지는 특성과 극의 질감을 섬세히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 후 그동안의 앙코르 공연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배우들의 앙상블과 강렬하면서도 섬세함이 살이 있는 연출로 원작이 가지는 가치를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극단ETS의 연극 <BENT>가 제40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관객들과 뜨거운 만남을 다시금 가지며 원작과 이전공연보다 더 진해진 감동을 전해주었다.

'BENT' 공연사진_그레타(최우석) /(제공=극단ETS)

연극 <BENT>는 미국 극작가 마틴 셔먼의 1979년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보다 더 혹독한 대우를 받았던 독일의 동성애자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34년, 나치는 나치 반대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살인과 숙청을 자행하고, 히틀러를 절대 권력자로 만든다. 동성애자, 정신병자, 장애인들을 격리, 처단하는 법이 통과되고 동성애자들을 거세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진다. 수용소에 잡혀간 다른 죄수들도, ‘핑크트라이앵글’을 달고 있는 동성애자와 같은 막사를 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거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성소수자로 체포된 남성은 10만 명에 가까웠으며 이 중 5만 명은 공식적인 형을 받았고, ‘뤼디거 라우트만’은 ‘(수용자들 중)동성애자들의 사망률은 60%에 달했다’고 했다. 독일의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처벌법이 없어진 1969년까지 자신이 수용소에 잡혀갔던 사실도 함부로 밝히지 못하고 살았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형사 처분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BENT' 커튼콜사진_맥스(김승기) /ⓒ권애진
'BENT' 커튼콜사진_홀스트(김정훈) /ⓒ권애진
'BENT' 커튼콜사진_그레타(최우석), 울프/장교(조장연), 장교(강인성) /ⓒ권애진
'BENT' 커튼콜사진_프레디(김준삼), 루디(허진) /ⓒ권애진
'BENT' 커튼콜사진_수감자(서동민), 카포/경비병(김정래), 수감자(김태민) /ⓒ권애진
'BENT' 단체사진_맥스(김승기), 루디(허진), 카포/경비병(김정래), 장교(강인성), 홀스트(김정훈), 울프/장교(조장연) /ⓒ권애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통해 성정체성, 인권, 사랑에 대해 파격적이면서도 날카롭게 그리고 있는 연극 <BENT>는 주인공 막스가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 상황을 그린 1막과 수용소에 도착한 후 펼쳐지는 2막이 극적 구조나 형식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1막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작품의 시대 상황이 빠른 전개로 펼쳐진다. 2막으로 넘어가면, 수용소에서의 극한 상황 속에 놓인 맥스와 홀스트, 두 사람만의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연극 <BENT>는 간결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대사와 빠른 극의 전개, 그리고 극적인 반전들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면서도 대담하게 풀어 나간다. 배우들의 섬세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연기와 깊이 있으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작품이 가지는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

극단 ETS의 김혜리 연출은 2막의 시작과 동시에 척박한 환경 속에 놓인 두 주인공에게 공간적 초점을 두면서도, 관객들이 철조망 너머에서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킨다. 그러나 극이 전개될수록 무대와 객석의 심리적 경계가 사라지고, 관객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가노가 공간에서의 차별, 편견, 암묵적 배제의 폭력성과 극 중에서 일어나는 원색적 폭력성의 기본이 크게 다르지 않고 닮아있다는 사실을 극을 통해 마주하게 된다.

연극 <BENT>는 영국 국립극장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연극 100편 가운데 한 작품으로, 1979년 런던 초연에서 영국의 배우 이안 맥컬런이 주연을 맡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1980년에는 미국 극작가협회 희곡상을 받은 바 있으며, 1997년 숀 마티아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배우 이안 맥컬런이 역시 ‘프레디’ 역할로 출연하며 깐느영화제에서 영 시네마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지난 40년 간 40여 개 국가에서 꾸준히 상연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13년 극단 ETS의 공연을 통해 첫 선을 보인 이후 2014년 국립극장 별오름, 2015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뜨거운 호평 속에 상연되었으며, 2관객의 꾸준한 요청에 힘입어 지난 2018년 2월에도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에서 재공연을 올렸다.

연극 <BENT>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 사건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도 생각이 많이 나게 한다. 이 작품을 영화화한 ‘BENT’ 뿐 아니라, 눈물 뿐 아니라 웃음까지 안겨주는 ‘인생은 아름다워’, 깊이 있는 흑백화면으로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진 ‘쉰들러리스트’, 폴란드계 유대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전기를 다룬 ‘피아니스트’,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유대인학살을 다룬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흘러간다.

2017년 ‘동성애자 수용소’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세계를 경악하게 한 러시아 체첸자치공화국은 올해에도 대대적인 성소수자 탄압을 자행하며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당연한 ‘인간적인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올해 20회를 맞는, 차별과 억압에 맞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이렇게 함께 잘 살 수 있다”를 외치는 <2019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시작되어 6월1일 서울광장을 화려하게 물들일 예정이다. 잘못된 편견과 무지로 비판이 아닌 비난과 혐오를 자행하는 불편한 인식이 사회 약자에 대한 이해로 성장하길 바란다.

연출 | 김혜리

출연 | 김승기, 김정훈, 허진, 김준삼, 최우석, 강인성, 조장연, 김정래, 김태민, 서동민

조명 | 신성환, 무대 | 김태민, 허진, 음향 | 이찬용,

홍보디자인 | 김연준, 홍보 | 권재은, 이정엽, 기획 | 오가현, 박지영

그래픽디자인 | 김연준, 팜플렛디자인 | 김만재

무대 위에 있는 배우와 대본이 가지는 힘과 깊이를 살려내는 극단ETS는 오는 6월 국립 하늘극장에서 ‘BIG LOVE’의 재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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