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생긴 평범한 소시민의 빈곤, 상실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가 지난 14일부터 6월 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연이은 매진과 함께 관객들과 ‘욕망의 대상에서 상실과 허무의 존재가 된 아파트’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고 있다.
1992년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한 이창동의 단편소설 <鹿川에는 똥이 많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아파트 건설 공사장 바닥에 질펀하게 깔려 있는 똥처럼 평온한 삶에 감춰져 있는 우리의 민낯을 현실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 연극은 어린 시절 홀로 상경해 갖은 고생을 거쳐 마침내 교사가 된 준식은 아홉 번 만에 당첨된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시작된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그토록 꿈꾸었던 안정된 직장과 집을 얻게 된 그 때, 십여 년간 만나지 못했던 그의 이복동생 민우가 집으로 오며, 준식 가족과 민우의 다소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며 미세한 변화가 시작된다. 준식의 아내 미숙은 민우와 점차 가까워지며 자연스럽게 민우와 준식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준식은 그 동안 힘들게 꾸려왔던 자신의 안정된 삶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진실한 삶? 살아가는데 진실한 것이 따로 있는 건가? 사는 건 다 똑같은 거지.
인생이란 게 소설책에 나오는 것과는 다른 거야. 그냥 주어진 삶에 만족하면서 대충 맞추어가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 아니겠어?“
“세상이 바뀌든 바뀌지 않던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난 그냥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거야. 세상에는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하잖아.”
태어날 때부터 외모부터 달랐던 형제는 생각까지 다르게 자랐다. 녹천 주변에 널린 똥들은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치부어린 민낯일는지도 모른다. ‘누가 이렇게 살고 싶어 했겠는가?’라며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이어지는 삶은 자초한 것일 수도, 주변의 바꿀 수 없는 이유들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준식에게 삶은 무겁기만 하고, 아내와 동생 앞에서 준식에게는 보이지 않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준식에게 행복은 무엇인지, 아내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길게 뻗은 무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미래일 수도, 어쩌면 바꿀 수 있을지 모를 미래일는지도 모른다.
무대디자인을 맡은 박상봉 디자이너는 "벌거벗겨진 아파트가 마치 수족관 같기도 했다. 수족관 안에 물고기와 아파트 속의 사람들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가 모든 흙을 덮을 듯이 땅 위를 채우고 있다. 그 흙을 다시 끌어내 땅 위를 덮고 싶었다." 말하며, 기둥이 박힌 스페이스111의 난해할 수 있는 무대를 독특함으로 이끌어냈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홍준식 역 조형래 배우, 강민우 역 김우진 배우, 정미숙 역 김신록 배우 외에 배우 송희정, 박희은, 이지혜, 우범진, 하준호가 '소리들'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소설의 전지적 시점을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보여주고 싶었던 각색자와 연출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에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에 왠지 마음이 쓰여 그들을 코러스가 아닌 '소리들'이라 명명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들리는 수많은 소음들은 어쩌면 당시에 있었던 크고 작은 상처들로부터 들려오는 파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소리는 그런 약자들의 소리로, 우리는 파묻힌 그 소리에 이제는 온 몸이 귀가 되어 반응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로 이 공연의 여백이 채워지기를 바란다. '소리'의 존재는 단순기능을 넘어서서 준식이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공연의 마지막 순간으로 치닫는 사이, 진짜 자아를 찾아가는 흐름이 소리의 흐름이 될 것이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각색은 연극<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으로 ‘2018 올해의 연극 베스트3’를 수상한 DAC Artist 윤성호가 맡아 원작이 출판된 지 3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질문에 울림이 있다 말하며, “현대사회에서는 모두가 어딘가 끊임없이 달려가야 하고, 달려가고 있다. 그가 달리는 동안 무엇을 놓쳤는지, 우리가 달리는 동안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전했다.
연출을 맡은 신유청은 “가야할 방향도 모른 채 길 위에서 고개를 숙여 한숨을 내쉬던 그들을 떠올린다. 다시 한번 진정으로 그들의 삶에 깊은 연민을 갖는다”며 연민을 느끼게 되는 80년대 말 부모 세대와 새로운 세대인 우리 세대 또한 여전히 불안한 존재라 이르며, “이번 공연이 우리에게 삶을 회복하기 위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관객들에게 바람을 전했다. 영리한 각색과 연출은 원작의 부조리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무대에 담아내어 현재에 사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기획제작 | 두산아트센터
원작 | 이창동 저 『鹿川에는 똥이 많다』
각색 | 윤성호, 연출 | 신유청
무대디자인 | 박상봉, 조명디자인 | 강지혜, 음악/음향디자인 | 지미 세르(Sert Jymmy)
영상디자인 | 박보라, 의상디자인 | 홍문기, 분장/소품디자인 | 장경숙, 움직임 | 이소영
출연 | 송희정, 박희운, 김신록, 이지혜, 조형래, 우범진, 하준호, 김우진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이며, 만 13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두산아트센터가 2013년부터 시작한 두산인문극장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다. 빅 히스토리: 빅뱅에서 빅데이터까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등 매년 다른 주제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해왔다. 2019년에는 ‘아파트’를 주제로 강연 8회, 공연 3편, 전시 1편을 7월 6일까지 3개월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