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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가 없는 희곡에 유쾌한 발상과 생기를 불어넣은 연극 ..
문화

화자가 없는 희곡에 유쾌한 발상과 생기를 불어넣은 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19/06/01 09:27 수정 2019.06.01 10:07
40th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
'집에사는몬스터' 커튼콜_휴(김은석), 아그네사(남미정), 덕(이지혜), 로렌스(이종민) /ⓒ권애진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화자가 없는 희곡에 유쾌한 발상과 생기를 불어넣은 극단 라마플레이의 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가 제40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으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전회매진의 기록을 세우며 관객들과 다시 만났다.

'집에 사는 몬스터' 공연사진_아그네사(남미정), 덕(이지혜) /ⓒ손길한(제공=라마플레이)

덕 매카타스니는 아버지 휴와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휴는 쓰레기통 같은 거실에서 인스턴트와 게임 속 가상세계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어느 날 덕은 사회복지사 린다 언더힐의 가정 방문을 통보받는다. 자신이 보호시설로 보내지게 될 수도 있음을 걱정한 덕은 가정에 큰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작전을 짠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덕이 짝사랑하는 로렌스가 나타나고 뒤이어 아그네사라는 여인까지 등장하면서 일은 꼬여만 간다.

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는 블랙박스 전 공간이 4면 무대와 4면 객석으로 구성된 이 공연에서, 관객들은 회전의자로 마련된 객석에 앉아 자기 자신이 보고 싶은 방향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무대 위 배우들은 더욱 다이내믹하고 리얼한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아 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관객들은 공연을 관람하면서 육면체, 배우들, 그리고 다른 관객들과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집에 사는 몬스터>의 원작 ‘The Monster in the hall’의 원작자 데이비드 그레이그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젊은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며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에딘버러 페스티벌, 로열코트 극장 등에서도 호평을 얻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담은 창작극의 선두주자인 동시에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과 유머를 동시에 가진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the Monster in the hall’은 의도적으로 화자를 기입해 놓지 않은 희곡으로 대사에 쓰인 텍스트의 힘과 그것을 등장인물들에게 재배치하는 연출의 힘을 재량껏 발휘하도록 오픈된 희곡이다.

'집에사는몬스터' 공연사진_덕(이지혜), 휴(김은석), 로렌스(이종민), 아그네사(남미정) /ⓒ손길한(제공=라마플레이)
'집에사는몬스터' 배우 일러스트_덕(이지혜), 휴(김은석), 로렌스(이종민), 아그네사(남미정)  /ⓒ황유진(제공=라마플레이)

‘덕’이 쓴 이야기라는 설정으로 재탄생된 <집에 사는 몬스터>는 초연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 온 휴 역 김은석 배우, 아그네사/언더힐 역 남미정 배우, 덕 역 이지혜 배우, 로렌스 역 이종민 배우 한 명 한 명이 작품의 분석 뿐 아니라 드라마트루거 재능이 충만한 배우들이기에 연출과 함께 작업하면서 캐릭터를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덕을 맡은 이지혜 배우는 “어떤 양식을 연기하거나 장치에 눌려 가짜 같지 않게, 순간순간 살아있다고 보이도록 이야기와 이야기 안에서 순간순간 느끼고 반응하는데 가장 신경을 썼다”라고 덕을 설명했다. 휴를 맡은 김은석 배우는 “휴라는 캐릭터를 ‘쉴 휴’라는 의미로도 봤다. 그래서 한숨에도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신경 썼다”고 전하며 “덕에게 몬스터 듀카티는 어쩌면 엄마 자체이다”라는 해석도 살짝 전달했다.

평단과 관람객의 많은 호평을 받은 <집에 사는 몬스터>는 연출가 임지민이 인간 관계성에 대한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관점을 새롭게 접목시켜 만든 작품으로, 화자를 기입해놓지 않은 희곡에 명확한 등장인물을 설정하여 각 인물들의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육면체의 세계관과 연결시킴으로써, 화자 없는 텍스트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켰다. 인물 간 만남, 충돌, 갈등 등의 관계가 발생할 때마다 면과 면이 맞닿으면서 주인공 덕과 아버지 휴를 비롯한 인물들의 공간이 끊임없이 교차되고 분리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공연은 프레임들이 서로 만나고 부서지기도 하고 재조합되기도 하면서 한 소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희곡의 이야기는 상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주인공의 세계를 그렸고, 그것이 연출자가 말하는 ‘x축-y축-z축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세계의 정육면체 한 칸‘의 우주관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 한 덕(이지혜), 휴(김은석), 임지민 연출, 이단비 드라마터그 /ⓒ권애진

임지민 연출은 ‘인간은 두 발 혹은 두 바퀴로 지구 표면에 한 몸뚱이를 붙이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변 세상과 만나면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육면체’라 여기며, 주변 대상들의 무쌍한 변화 속에 ‘한 인간’은 ‘혼자, 한 몸뚱아리’로 지구상에 서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 칸을 지켜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참 매력적인 ‘덕’은 어느 새 두 세 칸이 합쳐진 육면체에 살기도 하는데, 극에서 그녀와 만나는 첫 번째 칸은 관객석이라고 특별한 무대를 만든 계기를 설명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비극일 수 있지만 우울하게 진행되지 않고 유쾌하게 풀릴 수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이 공연의 초점이라 강조하며,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이 “자신이 생각한 우주가 세상의 전체가 아니라, 사람들은 ‘저마다의 우주’를 이고 스치며 어우러지며 살아간다”라는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제40회 서울연극제의 공식선정작 10편 중, <집에 사는 몬스터>와 <데모크라시>의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이단비는 외국의 희곡을 관객들이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단비는 “드라마터그는 연출자의 조언자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드라마터그는 독일의 극장 관행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희곡을 쓰거나 번역을 하고, 공연을 중개하며, 프로그램 북에 글을 쓰고, 연극을 안내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왔다. 공연 제작의 문화와 제도에 따라 그 의미가 많이 다르지만, 역할 중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역사적으로 연극 개혁에 앞장서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대 드라마터그는 연극의 빈틈을 발견 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는 것은 물론 시대성을 지닌 연극관을 가지고 연극의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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