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1년에 딱 한 번 무대를 짓고 노를 젓는 선한 사람들만 모인 ‘미지愛시어터’가 김원 작가의 희곡작품 <만선>을 무대로 가져와 지난 4일부터 23일까지 대학로 서완소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연극 <만선>은 매일 지지고 볶고 싸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얼굴을 맞대게 되는 서로 살갑게 안아준 날보다는 박 터지게 싸운 날이 더 많은 가족의 이야기이다.
해 뜨는 동해에 떠 있는 통통배 한 척 위엔 한 가족이 밧줄에 묶여 서로 이어져 있다. 치매로 자주 정신이 자유로워지는 노인, 튼튼한 의족으로 거침없이 발길질하는 아비, 가족보다 하나님 아빠를 더 사랑하는 어미, 가족의 생계를 위해 비리경찰로 거듭난 아들, 방에 처박혀 음악과 책에 빠져 지내던 지체장애자 딸까지 이 수상한 가족은 아들의 비리가 발각되자 죽을 결심을 한다. 드넓은 바다에 몸을 던지고자 배까지 훔쳐 타고 바다로 나오지만, 비장한 각오와는 다르게 유치한 싸움에 총질까지 하며 시간만 보낼 뿐 도무지 죽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 최후의 만찬으로 먹은 회 때문에 단체로 배탈에 시달린다. 크고 작은 소동도 아들의 유서와 함께 막을 내리고, 최후의 순간에 이들은 그 동안의 속내를 서로에게 터놓기 시작한다. 세상이란 망망대해 위에 내던져진, 위태롭게 떠있는 가족이란 이름의 낡은 배 한 척. 그 안에서 오늘도 살기 위해 죽자고 싸우며 만선을 꿈꾸는 그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젊은 극작가 김원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선’, ‘도로시의 귀환’ ‘만리향’ 등 뚝심이 보이는 작품을 써 오며 관객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왔다. 김원 작가는 서로 다른 고양이에게도 식구의 정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하며, 한 핏줄인 가족끼리는 그냥 정이 아니라 오만 정이 고간다고 이야기한다. 이 작품 <만선> 속 진상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지만, 그런 작의까지는 파악할 필요는 없다 강조하며, ‘가족이 정말 무엇이길래’를 묻는다.
희로애락이 물씬 풍기는 또 하나의 가족 연극 시리즈 <만선>은 힘든 현실 속에서 결국 동반자살을 선택한 가족 일행은 통통배를 훔쳐 망망대해로 나섰지만, 최후의 순간에도 사소한 것에 치고 박고 울고 웃는 가족들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이 희극적인 순간에 하나 둘 씩 드러나는 그들의 상처들과 그 상처를 더욱 아프게 만드는 그들의 현실은 비극이다. 이런 ‘희극적인 일상 비극적인 현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다. 이 작품을 마주하는 누군가는 배터지게 웃고, 눈물샘에 홍수가 나고, 답답한 현실에 화도 내고, 먹먹한 마음에 멍을 때릴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연출한 정상훈 배우 겸 연출은 “그 누군가에게 잠시 멈춰서는 시간을 그리고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설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우리네 삶의 답답함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 ‘미지愛시어터’는 미지, 우린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 누군가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미지의 세상에는 사랑이 가득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삶에 그리고 연극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그들이 모인 이유이다.
작 | 김원, 연출 | 정상훈
무대 | 서부시대사람들, 조명 | 김솔잎, 음향 | 이성훈
출연 | 아비역(오세철 최영준) 어미역(지미리 이선) 아들역(안두호 김범 김정환) 딸역(이진주 김영경 김지수 노시아) 노인역(손인찬 정상훈)
휴먼가족극 <만선>의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8시, 주말 및 공휴일 오수 3시와 6시30분이며, 15세 이상 관람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