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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 빵굽는 여인..
기획

[소설을 읽기] 빵굽는 여인

한애자 기자 입력 2016/06/16 21:23
한애자의 소설 연재 제2회

▲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 다큐미니시리즈 인간극장이 14년간 지켜온 가치이자 프로그램의 정체성입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가진 보통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인 명성을 가진,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 인간극장 무대에선 누구나 그저 자연인 그대로 남자, 여자, 아버지, 어머니, 부모, 자식일 뿐이죠. 인간본연의 五慾七情이 가장 잘 드러난 삶의 무대, 인간극장 그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2회

저 건너편의 창밖은 여전히 자주색 커튼이 내다보였다. 목사인 사십대 남자는 늘 온화한 표정이었다. 그 옆의 여자는 늘 뒷모습만 보아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설교단을 향하여 언제나 등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곁에 있던 세리가 손등을 핥았다. 온몸이 전율하듯 떨렸다.

‘넌, 나의 즐거움이야. 나를 외롭지 않게 하는 유일한 친구!’

세리는 답례하듯 킁킁거렸다. 세리의 등을 애무하듯 쓰다듬으며 탁자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 일면의 오른쪽 기사에는 ‘평생에 모은 생명 같은 돈을 기부한 자랑스러운 어머니’라는 머리기사가 보였고 그 밑에는 부제로 ‘안 먹고 안 쓴 비빔밥 장사의 30년의 세월’이라는 기사가 보였다.

노인숙은 무심코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얼마 전에 자신이 신문사의 광고란에 낸 광고의 내용이 실렸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조금 후에 그녀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여기 있구나!’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광고문을 확인하였다.

‘제 애완견 세리를 돌봐줄 가정부를 구합니다. 친자식처럼 헌신적으로 돌봐줄 천사를 환영합니다.’

돈만 넉넉히 주면 사람 얻기는 금방이었다. 다시 신문을 넘겨 사회면을 펼쳤다. 연세가 칠십이 다 되어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이 넓게 자리 잡고 있어 눈에 들어왔다. 주름이 깊고, 검버섯이 많은 얼굴은 몹시 거칠어 보였다.

노인숙은 자기의 입성을 무시하는 선행을 가소롭게 여겼다. 그녀에겐 인생은 즐기는 것이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는 듯, 선행으로 매스컴에 오르는 그런 부류를 경멸하였다.

다시 자리를 옮겨 소파에 가서 몸을 눕혔다. 그리고 기다란 하품을 하며 텔레비전을 켜기 위해 리모컨 단추를 눌렀다.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사십대 중반의 목사 부부가 입양한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위탁소를 경영하면서 개척교회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들이 입양한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감동한 교인들은 자진하여 ‘전교인 입양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화면 속의 목사의 부인이라는 여자를 보고 노인숙은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얼굴에 깜짝 놀랐다.

홍신애!

자신의 적수였던 여자!

아! 바로 저쪽 건물의 구 목사의 부인? 노인숙은 이마를 찌푸렸다. 기분 좋은 여자가 아니다. 지난날들이 스쳤다.

 

홍신애는 동료 여교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최고였다. 우아함과 지성미를 갖추었고, 예술적 감성을 구비한 팔방미인이었다. 언제나 은근한 예술적 기풍이 흘러나왔다. 걸음걸이나, 목소리, 옷맵시 등이 언제나 돋보였다. 색깔에 대한 심미안이 있어, 자신에게 어울리게 의상 코디를 스스로 연출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홍신애를 ‘베스트 드레서’로 칭송하였다. 그러나 홍신애는 그러한 것들이 자신을 돋보이고자 하는 어떤 자만심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겼다. 노인숙이 최고에 집착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어쨌든 홍신애는 의상패션부터 노인숙보다 잘난 여자였다. 자신을 대적하거나 해코지한 일도 없는데 노인숙은 불타는 증오심으로 홍신애를 대하였다.

‘나보다 잘난 여자는 용서할 수 없어.’

이러한 질투심이 홍신애를 적으로 내몰았다.

홍신애의 탁월성은 곧 교장의 눈에도 띄게 되었다. 그녀는 연극공연을 하여 학예행사 때 많은 관객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교장은 학교의 이름을 빛내준 홍신애를 높이 평가하고, 그때부터 총애의 빛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아담하고 복스러운 홍신애는 외모부터 노인숙과 상반적이었다. 팔과 다리가 긴 그녀는 운동선수처럼 건장한 느낌을 주었고,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움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키가 크다는 장점에 도취되어 패션모델 감으로 여겼다. 게다가 직장에서는 인정을 받는 부장교사가 되어서 곧 승진의 기회도 열려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노인숙은 아들과 남편에게 신경을 쓸 에너지가 없었다. 자신에 관련된 일로만 꽉 들어찼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주변 사람들로부터 매력적인 여자라는 찬사를 듣고 싶은 욕망에 목이 말랐다. ‘대덕연구소장’인 남편의 존재는 주위사람들에게 자신의 진가를 높이기 위한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직장 여성들은 가정에 뿌리를 두고 사랑의 자양분을 거기에 두고 있다. 하지만 노인숙는 여느 여자와 달랐다. 사랑의 뿌리와 애착을 직장에 두고 있었다. 일에 충성하는 것보다 치정이나 내연의 관계를 통하여서 애정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결코 누구를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삶의 방식이었다.

노인숙은 전근하여 새로운 학교에 부임할 때마다 그곳에서 새로운 애인을 두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애인이 없는 삶은 황량하였고 활기와 의미를 잃어버렸다. 애인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그녀는 자신이 매력적인 존재이고, 남자들의 관심을 사고 있는 것으로 자신의 진가를 저울질 하였다.

그토록 애증의 갈증에 허덕이는 노인숙에게 자신보다 매력적인 홍신애의 출현은 커다란 심적인 암초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생명과도 같은 사랑의 자양분을 홍신애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노인숙은 은밀한 마음의 파도를 감추고 서서히 홍신애와 대적하기 시작하였다. 동료교사들을 자기편으로 유입하고 홍신애가 꼴불견이라고 소문을 내면서 따돌리는데 열중하였다.

그러던 노인숙은 결국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것은 빵을 굽는 일이었다. 제과제빵 교육을 받고, 집에 빵 굽는 장비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주말이면 배운 대로 실습하여 여러 종류의 빵을 구웠다. 그런 날이면 아파트 한 동 가득 빵 굽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그렇게 하여 만든 빵의 일부는 자신의 일주일치 식량이었다. 나머지는 월요일에 학교로 출근할 때 싸들고 왔다. 그리고 그녀는 따듯한 커피와 함께 빵을 대접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한 대화의 광장을 만들었다.

“아휴, 이렇게 맛있는 호두파이를 부장님께서 직접 만드셨어요?”

“그럼요.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어머, 정말 요리 솜씨가 좋으세요.”

칭찬은 언제나 노인숙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자신은 무엇이든 다른 여자보다 잘하고 앞서서 최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칭찬에 힘을 얻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교사들에게 그 비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호두와 아몬드, 쇼트닝을 준비하고…….”

모여든 여교사들은 그녀의 테이블에 놓인 호두파이와 과자를 먹으며 맛을 품평하였다.

“직접 만든 거라 그런지 역시 제과점 거랑 다르네요!”

“역시 우리 왕언니 최고!”

한마디씩 부추긴다. 곧 수업 종이 울리자 그들은 각자의 교실로 흩어졌다. 그러나 수업이 없는 교사는 그녀의 자리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잡담을 하기도 하고, 액세서리를 서로 만지고 어디서 샀느니, 스카프가 잘 어울린다느니 하며 화제를 펼친다.

그런데 저쪽 중앙의 테이블에 아무 동요 없이 고요함 속에서 자기 일에 묵묵히 열중하는 홍신애가 보였다. 그녀는 다른 교사들과 합류하지 않았다. 그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면 교재연구를 한다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노인숙은 이런 홍신애가 얄미웠다. 주변의 교사들처럼 빵 솜씨를 칭찬하거나 자신에게 살살거리지 않아서 괘씸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칭찬하고 추켜세워 주면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그러나 홍신애는 자신에게 이러한 언행을 보이지 않았다. 홍신애는 자신과 어쩌다 마주치면 최소한의 예를 갖추어 간단히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먼저 말을 거는 일은 드물었다. 그럴 때면 단아한 머리를 틀어 올린 홍신애의 뒷모습을 한동안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다음편에 계속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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