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5회
그곳에서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노인숙은 매우 까다롭게 숙희를 대하였다. 세리의 몸단장이 깔끔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월급을 깎아내리겠다고 윽박질렀다. 발악하듯 신경질을 부리던 어느 날 휴대전화가 울렸다.
‘남편 분이 임종하셨습니다.’
남편이 하직하였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어마한 액수의 돈이 입금된 통장을 남편에게 받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지난달에 남편이 재산을 공개하여 준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 사실도 모른 채 재산상속을 못 받을 뻔하지 않았나! 정말 다행이고 남편이 너무나 고마웠다. 어쨌든 남편의 장례는 자신이 맡아서 치뤄야 했다. 자가용은 장 선생이 며칠 전부터 끌고 다니기 시작하여 경황없이, 급하게 장비를 챙기고 서울역으로 향하였다.
“세리가 아프지 않도록 세심하게 잘 돌봐줘야 한다.”
노인숙은 숙희에게 약간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당부하였다.
노인숙이 떠나자 집안은 조용하였다. 숙희는 갑자기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주인의 침대 위에 누워 보았다.
‘왜 남편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난 과부인 줄로만 알았는데…….’
침대 위에서 일어나 화장대로 다가갔다. 거울을 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잘 다듬었다. 화장대는 크고 고급스러웠다. 그 위의 여러 종류의 화장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모두 외국어로 표기되어 있어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국산은 없었다. 숙희는 마치 자신의 물건인 것처럼 화장품의 뚜껑을 하나씩 열어 그 향기를 심호흡을 하듯 깊이 마셨다.
장밋빛 립스틱을 열어 보았다. 남자가 내방할 때, 노인숙의 입술을 유난히 빛나게 했던 것이다. 옆의 립스틱을 돌려 보았다. 보랏빛 립스틱이 불쑥 솟아올랐다. 자신에게 꾸짖고 소리 지를 때 뱀의 혀가 보랏빛 입술 사이로 날렵하게 움직였었다.
밤늦도록 그녀는 화장대 앞에서 이것저것을 열어 발라보고 지웠다 발랐다 하는 행동을 반복하였다. 그것들은 홀로 있는 생활의 권태로움을 덜어주는 유일한 놀이였다. 열흘쯤 지나자 노인숙으로부터 휴대전화를 통해 연락이 왔다.
“아저씨의 장례식과 재산처분 문제로 일 년 정도 대전에 머물 거야. 세리를 주인 섬기듯 잘 돌봐주어야 한다.”
다음 달부터 세리 위탁비와 집안관리비를 함께 입금할 거라는 말과 함께 다시 한 번 세리를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 숙희는 계속 그 집에 머물게 되었다. 집안에 있기 불편하면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배움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 책을 통한 보상심리가 작용된 것이다.
매일 도서관에서 책에 몰두했고, 그 때문에 세리의 점심을 못 챙겨줄 때가 종종 발생했다. 이러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세리의 점심을 아예 큰 그릇에 담아두어 먹고 싶을 때 먹도록 하였다. 그리고 마음껏 외출을 하였다.
재래시장에도 자주 쇼핑을 갔다. 그런 날이면 어렸을 때 먹었던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그리웠다. 열무김치에 비벼 먹었던 옛 음식이 먹고 싶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자 재료를 사들였다. 주인아줌마와 항상 먹던 지겨운 빵을 탈피하고 싶었다. 국물이 있는 음식들이 그리웠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동태찌개, 콩나물국…….
집에 돌아와 시장에서 사온 김치를 썰어 돼지고기를 넣고 찌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맨 마지막에 두부를 썰어 넣고 대파를 얹어 식탁에 내려놓았다.
이때 누군가 대문 밖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보니 웬 젊은 남자였다.
“주인 아들입니다.”
“주인은 상중이시라 대전에 가셨는데요?”
“압니다. 거기에 들렀다 오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일주일 정도 친구들도 만나보고 떠날 예정입니다.”
남자 청년은 조용한 분위기에 우수가 깃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교적 점잖은 인상이었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 좀 없습니까? 빵 말고요.”
지친 듯 집에 들어서더니 식탁 위에 냄비째 놓인 김치찌개를 보았다.
“아, 김치찌개! 집에서 본 지 정말 오랜만이군요!”
그는 서둘러 수저를 들고 밥과 김치찌개뿐인 식탁에 앉아 며칠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끓인 김치찌개를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요.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빵으로만 식사하게 했거든요. 하지만 할머니 댁에 가면 이 맛있는 김치찌개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요!”
청년은 밥을 더 달라더니 맛있게 먹었다.
그는 아침을 늦게 먹고 11시가 되면 친구를 만나러 외출을 하였다. 그리고 보통 밤 12시가 지나서 술에 취하여 돌아오곤 하였다. 일주일 동안에 숙희는 매일 메뉴를 바꿔가면서 식탁을 차렸다.
“저도 빵만 먹는 식사에 지겨워서 아주머니 안 계실 때 찌개를 끓였지요. 그런데 온 집안에 찌개 냄새가 배서 어쩌죠?”
“괜찮습니다. 정말 그동안 잘 먹었습니다.”
그는 숙희를 가정부로 여기지 않고 누나처럼 정중하게 대하였다.
노인숙의 아들 성석은 외로운 유학생활 이야기를 숙희에게 쏟아놓았다. 그녀는 친절하게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어 기뻤다. 그 누나에게 자신의 말이 흡수되는 것이 무척 위로가 되었다. 어머니에게 하지 못한 숱한 이야기들을 쏟아놓았다. 모두 그녀의 심장에 새겨지는 듯하였다. 성석은 일주일이 지나자 아쉬움을 남기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하였다.
성석이 살고 있는 곳은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성석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안개와 같은 몽롱한 방랑이 계속되고 있었다. 유학생활은 언제나 고적하고 외로웠다. 도대체 자신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란 무엇이었는가! 장례식 때 어머니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슬픔보다 뭔가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보였다. 자신도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 애절한 슬픔이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학비의 지원자 정도였단 말인가!
이곳의 캠퍼스의 강연은 늘 몽롱함 중에 듣게 된다. 난해한 사회학적 용어들, 인간사의 부조리들, 인간의 타락과 종교, 경제적 흥망성쇠, 새 이념과 끊임없는 갈등, 환경오염과 질병, 테러와 유혈폭동, 핵 문제 등…….
그는 한숨을 쉬며 침대 위에 지친 몸을 던졌다. 오월의 신록이 우거진 신선한 바람이 창 밖에서 불어왔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환하게 맑아지는 듯하였다. 하늘은 참으로 신기한 공간이었다. 서울에서나 이곳에서나 다를 바 없었다. 땅 끝까지 가도 어느 곳에서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다행스러웠다.
유학생활 중 성석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허공에 떠있었다. 고국도 발을 딛기가 싫었다. 교육과 정치적인 부패,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국가……. 그곳은 분명 그의 조국이지만 오래 묵은 먼지가 엉켜있는 듯해서 피하고만 싶었다.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문제 덩어리인 그곳이 정말 싫고 낯설게만 여겨졌다. 언젠가 서울의 집에 잠깐 머물고 있을 때 보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서로 환희 웃으며 악수를 나누던 어색한 뉴스 장면이 떠올랐다. 과연 조국은 이제 평화가 지속되는 것일까!
미국의 삶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세월이 가도 도무지 정을 붙이지 못하였다. 언제나 낯설기만 했다. 이곳 생활의 어려움도 만만치가 않았다. 은근히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언행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향하여 조국을 버린 한심한 녀석이라고 비웃는 듯한 분위기다. 그러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고국에서는 그 지겨운 빵 굽는 냄새부터 역겹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갑자기 숙희 누나가 떠올랐다. 얼마나 빵이 지겨웠으면 손수 찌개를 만들어 먹었을까! 고추장에 열무김치를 넣어 비벼먹을 때, 입술 주위에 빨간 고추장이 묻었어도 마냥 정겹게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친밀감이 밀려왔다.
잠깐 흘려들은 그녀의 인생스토리가 애달팠다. 어렸을 때 위탁소에서 자라 구세군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공장생활을 하다가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중, 우연히 신문의 구인광고를 보고 애완견 돌보는 잡부로 이 집에 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가련하고 애달팠다. 그 가냘프고 창백한 얼굴, 왜 자꾸만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존재의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자꾸 곤두박질해져 갔다.
성석은 지치고 머리가 아팠다. 간밤의 술집에서 만난 케리와 키스하면서 쓰러졌던 자리. 노란색 머리카락이 침대 위에 흩어져 있었다. 숙희 누나의 검은색 머리카락도 침대 위에 흩어져 있을까? 누나는 그 자신의 머리카락을 주우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한숨을 쉬면서 겨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