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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써 이방인을 이야기하는 카프카, 연극 <변신>..
문화

이방인으로써 이방인을 이야기하는 카프카, 연극 <변신>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19/07/01 21:39 수정 2019.07.03 21:55
카프카의 '변신' 포스터 /(제공=하형주)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이방인으로써 이방인을 이야기하는 카프카의 소설 <變身>을 극단 이구아구에서 무대로 옮겨 7월 12일부터 28일까지 대학로 후암스테이지 1관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카프카의 <변신>은 익히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작품이지만, 의외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나 아는 작품이지만, 아마도 조금 난해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오르 잠자가 불편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는 걸 발견했다.“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들어봤을, 20세기를 가장 순수하게 표현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변신>의 첫 문장이다. 1916년 발간된 이 소설은 산업화 이후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암울한 서구사회를 배경으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절의 인간적 불안감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유대인으로 지금 체코 프라하에서 1883년에 태어나 독일어를 사용했다. 독일 사회에서도, 유대계 사회에서도 동화되기 힘든 이방인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삶의 기억들은 유쾌하고 능력 있는 법률전문가였다. 이런 그의 삶이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자신에 놀라는 그레고오르를 찾아냈을 것이다.

<변신>은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들의 이른 아침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또다시 출근을 해야 되는 삶.

하루쯤 늦잠도 자고 싶고, 어쩌면 오늘은 그냥 쉬고 싶을지도 모르는 아침.

그는 벌레가 되었다. 흉측한.

그레고오르에게 생계를 의존한 가족들, 사랑하는 가족들은 처음엔 그저 늦잠 정도로 생각하지만, 괴물로 변한 그의 모습에서 기대하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자 스스로 생존 방법을 찾는다.

점점 멀어져가는 관심. 어느 순간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던 그레오고르는 불편하고 혐오스런 존재가 되어버리고, 결국 그는 죽게 된다.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일까? 혐오하던 벌레의 죽음일까?

남은 가족들은 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간다.

연극 '카프카'의 정재호 연출 /(제공=하형주)

극단 이구아구의 대표이자 연극 <변신>을 연출한 정재호 연출은 “얼마 전 삶의 목표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 가족, 편안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었다. 자녀와 가족. 바로 사랑하는 존재. 거창하게 인류의 생존가치를 따지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 인간의 미덕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돈을 벌어오는 기계일 뿐이고, ‘나’는 화목한 놀이에 끼어들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어렵거나, 무언가 힘든 상황에 놓이면 어찌될까하는 두려움들 ‘보고’조의 문체를 사용해서 표현했다고 이야기한다.

연극 '변신' CAST 정보_잠자 씨(손성호), 잠자부인(임은연), 그레타(조지영, 정다은), 그레고오르(이동건), 지배인(이일섭, 원근희) /(사진제공=하형주)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는 아들이 부모를, 손녀가 할머니를, 아내가 남편을, 친구가 친구를 시해하는 끔찍한 사건들을 흔하게 보게 되었다. 무엇이 소중한 것이고, 무엇이 가치 있는지 모호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의 가치가 능력으로 판단되는 세상. 성적이 인생을 가르고, 배경이 삶의 품격이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100년 전의 불안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올바른 세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구든 쉽게 볼 수 있을 공연으로 만들었다는 연극 <변신>에서 인간존재와 실존의 허무에 대해 보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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