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사회적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사실과 환상 속에 절묘하게 조합시킨 초현실적인 작품, 907의 <너에게>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강렬한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아쉬운 막을 내렸다. <너에게>는 국내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은 ‘유산’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통해 임신, 출산, 낙태, 유산 등 여성만이 겪는 경험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여 주었다.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죽어있다. 이 연극은 아기의 감탄으로 시작한다. 아기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플은 10대 도미나트릭스 돌로레스와 30대 가정조산사 엘레나와 40대 곤충학교수 모건을 만난다. 죽은 아기와 아마 절대 만날 리 없었던, 서로를 만난 세 사람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현재 가장 촉망받는 신진 극작가 젠 실버먼의 첫 작품 <STILL>은 너무 끔찍해서 사람들이 입에 잘 올리지 않는 ‘사산아‘라는 주제를 다소 건조한 투로 풀어내면서도 등장인물 네 명의 감정을 생생히 전달한다. 모든 새로운 말과 경험에 경탄하면서도 혼란스러워하는 사산아 콘스탄티노플, 아이를 잃고 분노에 찬 엄마 모건, 임신했지만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열여덟 살 도미나트릭스(직업적으로 가학적 성행위를 하는 여성) 돌로레스, 자기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자존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조산사 엘레나는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난 관계맺음을 통해 각자의 상실과 결핍에 대한 대처법을 찾는다. 사실과 환상의 절묘한 조합에서 느껴지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는 빠른 전개와 인물들의 적나라한 대사로 증폭되어 작품에 독창성과 매력을 부여하고 있다. <STILL>은 2013 Yale Drama Series 우승작과 2012 National Playwrights Conference의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었고, Lincoln Center, Juilliard School 등에서 상연되었으며, Jane Chambers Award와 David Charles Horn Prize를 수상하였다. Chicago Theater Beat은 <STILL>이 “독특하게도 사산아의 관점에서 유산이라는 주제를 능숙하게 다루며,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감정이 살아 있으면서도, 터부시되는 주제에 대해 생각을 환기하는 이야기”라고 평하며 작품을 극찬한 바 있다. 아시아, 유럽, 스칸디나비아, 미국을 오가며 성장기를 보낸 작가 젠 실버먼은 새로운 환경에 대해 품었던 끊임없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신선한 목소리를 선보이며,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미국의 주류 극작가와는 노선이 다른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장편번역극을 처음 연출한 설유진 연출은 <너에게> 작품에서 엄청난 대사량과 장면전환을 카리스마로 무장한 배우들의 굉장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연기로 관객들을 압도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어냈다. 함유선 번역가의 제안으로 이 작품을 접하게 된 설유진 연출을 <STILL>이 “현실과 환상이 혼존하는, 꽤 혼란스러운 내용의 대본이었지만 많은 것이 오히려 명확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명확한 것 너머에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뭔가가 더 많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서 감각적으로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다가온 대본이었다. (가장 먼저 작품을 읽어 준)황순미 배우의 강력한 권유가 없었다면 포기했을지 모르는 작품이었다.”며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배경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역시나 배우, 제작진들과 함께 대본을 분석하고 다듬으며 연출을 하는 내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에, 소재는 명확했지만 주제를 어떻게 잡아갈 것인지, 감각적으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가 점점 더 좀처럼 잡히지 않게 되었다.”는 작품 진행 중의 어려움도 토로하였다. 하지만 “작업 하는 내내 참여한 모두가 서로서로와 작품을 소중히 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그 덕분에 특히 이번 작업은 고통스러울 법도 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쌓이고 바뀌어 가는 과정(사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연극작업에서 겪는 일일 테지만)들을 동료들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며 함께 한 동료들에게 감사와 애정을 드러냈다. ”(모든 고민 과정들 끝에)처음 대본을 읽자마자 했던 고민인 ’제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제목은 <너에게>로,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내가 너에게‘라는 대사를 넣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며 제목과 마무리에 대한 선택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극단 ‘907’은 주변의 상징과 은유를 찾아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단체로 소중한 만남과 대화의 자리가 그러하듯, ‘당신과 만나는 지금 이 곳’의 이야기를 나눔을 추구하고 있다.
제2회 페미니즘 연극제의 세 번째 작품 <너에게>에 이어, ‘남의 연애(프로젝트그룹 원다원, 7.11~14)’, ‘달랑 한 줄(극단 문, 7.18~21)’이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을 더할 예정이다.